[e월드]미국-`인터넷시장 독점 규제하라`

 잘못된 은유는 결국 잘못된 정책이 되게 마련이다.

 모두가 ‘정보고속도로’라고 빗대지만 경제적 용어로 비유하자면 통신 네트워크는 고속도로라기보다는 트럭이 등장하기 이전의 철도산업과 비슷하다. 철도산업은 엄청난 시장지배력으로 시장을 악용한 결과 정부의 강력한 규제를 받았다.

 하지만 미 연방통신위원회(FCC) 위원장 마이클 파월 등 인터넷의 미래를 결정하는 권한을 가진 이들은 철도의 역사를 모르는 것 같다. 이들은 규제완화의 환상에 빠져 인터넷 시장지배 우려를 일축한다. 그러는 동안 악덕 자본가는 자신의 성곽을 더욱 더 튼튼하게 구축해가고 있다.

 인터넷은 최근까지만 해도 자유시장체제의 이상을 구현, 수많은 인터넷서비스 제공회사가 경쟁하고 누구라도 어떤 사이트이건 방문할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기술부문은 자유의지론적 이데올로기의 비옥한 사육지로 부상하면서 많은 기술인은 워싱턴의 도움이나 규제 따위를 필요없다고 단언할 정도였다.

 하지만 전화모뎀 인터넷의 폭넓은 경쟁세계는 그토록 많은 인터넷 열성 옹호론자들이 비난했던 바로 그 정부규제에 의존하고 있다. 시내전화서비스는 자연스러운 독점체제이기 때문에 규제 없는 세상에 놓인 시내전화 독점업체들은 소비자에게 아마도 자사 전화모뎀 접속서비스를 사용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릴지 모른다.

 이같은 시내전화 독점체제에서 소비자에게 선택권이 주어질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시내전화 독점회사가 독립 인터넷서비스제공회사(ISP)에 자사 시내전화망 사용을 개방하도록 의무화한 데 따른 것이다.

 모두들 몇년 전만 해도 광대역 인터넷 부문이 시내전화 부문과 똑같은 모습으로 발전할 것으로 믿고 있었다. 96년 미 통신법은 고도로 경쟁적인 광대역 산업을 창출해낼 것으로 기대됐지만 당초 약속했던 경쟁체제는 전혀 실현되지 않았다.

 이용자에게 선택권이 없다고 가정해 보자. 이 경우 이용자가 광대역을 원한다면 소재지 케이블회사가 제공하는 인터넷서비스만을 구매해야 한다. 이는 곡물을 유니온퍼시픽에만 판매해야 했던 19세기 농부나 다름없다.

 만약 이용자가 전화교환실 근처에 산다거나 하늘이 잘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산다면 다른 대안을 갖게 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국에서 광대역의 효과적인 경쟁이 이뤄지는 곳은 극소수 지역에 불과할 뿐이다.

 광대역의 미래는 인터넷 사용자가 당연시하는 자유로운 경쟁환경을 광대역 시장에 조성하고 96년 통신법을 개정하려는 정치적 의지조차 약화되면서 경쟁없는 체제로 굳어질 전망이다.

 FCC는 케이블회사의 케이블 개방의무를 면제해주기 위해 지난 3월 케이블 인터넷 접속이란 개념을 통신이 아닌 ‘정보서비스’로 규정하는 뛰어난 말솜씨를 보여주었다. FCC는 시내전화회사 소유의 전화선을 통해 인터넷 접속을 제공하는 디지털가입자회선(DSL) 제공회사에 대해서도 비슷한 결정을 내릴지 모른다. 그런 결정이 내려진다면 가정과 기업은 19세기 농부와 마찬가지로 사이버공간 접속방법을 선택할 여지가 없는 제도에 묶이게 될 것이다.

 문제해결에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광대역 산업을 분할하고 시내전화와 케이블회사에 독립 ISP에 대한 자사회선 판매만 하도록 제약하면 경쟁을 회복시킬 수 있다. 아니면 제한적인 경쟁을 받아들이거나 예전의 AT&T 규제방식과 비슷하게 ISP를 직접 규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효과적인 경쟁이나 규제 모두가 작동되지 않는 제도를 향해 나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설상가상으로 FCC는 미디어회사와 통신회사의 상호지배구조에 대한 제약마저 서서히 풀어주고 있다. 1개 대그룹이 지방신문과 지방TV채널 몇개를 소유하게 되는 날 케이블회사와 전화회사는 소비자에게 유일무이한 인터넷 접속방법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이는 터무니없이 비싼 접속료로 이어질 공산이 적지 않다. 불행하게도 비싼 접속료는 문제의 시작일 뿐이다. 효과적인 경쟁이나 규제가 없는 광대역 독점회사가 만약 자사가 정한 사이트 이외의 사이트에 접속하는 것조차 어렵게 만든다면 자유로운 인터넷은 종말을 고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일부 사이트 접속차단은 정치적 차원에서 악용될 소지마저 있다. 일부 극소수 미디어 대기업이 소비자들이 시청할 수 있는 내용뿐만 아니라 다운로드할 수 있는 내용도 통제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FCC가 정책을 재고할 시간이 아직은 남아있다. 양당의 상당수 의원들도 파월 FCC 위원장의 현 정책방향에 우려를 표명해 왔다. 남은 시간은 갈수록 줄고 있다.

 <제이안기자 jayahn@ibiz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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