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을 통해 문자 메시지를 날리고 인스턴트 메신저로 친구와 대화하는 모습은 이제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이제 우리의 일상생활 문화에서 정보기술(IT)은 더 이상 떼어 놓을래야 떼놓을 수 없는 일부분이 된 것이다. 특히 연령이 낮은 층일수록 IT에 더 익숙한 형편이어서 앞으로 IT에 대한 의존도는 더욱 높아만 갈 것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게 됐다.
그렇다면 IT가 일상생활 문화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이 된 상황에서 세계 최고의 IT 인프라 보급 수준을 자랑하는 우리의 IT문화 수준은 어느 정도나 될까. 게임 중독, 언어 파괴, 스팸메일, 음란채팅 등 언뜻 떠올릴 수 있는 우리의 IT문화 키워드는 대부분 부정적인 것들뿐이다.
최근의 리니지 파동도 우리의 IT문화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리니지가 영상물등급심의위원회로부터 18세 이용가 판정을 받은 것은 선정성이 아닌 PK(Player Killing)의 폭력성이 문제가 됐기 때문. PK는 사용자가 다른 사용자를 게임상에서 공격해 죽이는 행위를 일컫는 말로 리니지의 경우 아이템이 현금처럼 통용돼 이를 얻기 위한 무분별하게 PK가 성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IT에 있어서 기술과 산업적인 측면에서는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한국에 제대로 된 IT문화가 뿌리내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의 근대화 역사가 짧은 점과 IT 보급이 급속히 이뤄진 점 등 여러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빼놓지 않고 꼽는 것이 바로 IT문화를 이끌어 갈만한 축이 될 정부의 전담조직이 없다는 점이다.
실제 IT산업의 경우 정통부가 중추역할을 하고 있는 반면 IT문화는 정부의 어떤 부처에서도 전담하는 조직을 찾아 볼 수 없는 상황이다.
일례로 정통부의 경우 정보화기반과, 정보보호기획과, 정보이용보호과, 정보보호산업과 등에 정보문화, 정보화지원, 보안 등의 일부 문화관련 업무 담당자가 있지만 전반적인 IT문화 업무를 조율할 조직이나 담당자는 없다. 유관 부처인 산업자원부도 역시 행정정보화 기본 계획의 수립과 시행을 맡고 있는 기획관리실 산하 정보화담당관실 등이 IT 관련 업무를 보고 있지만 IT문화 전담조직은 없다. 또 문화관광부도 문화관련 정보화 업무의 기본계획 및 시행계획의 수립 추진 등의 업무를 맡은 기획관리실 산하 정보화담당관실이 있으나 산업자원부와 마찬가지로 IT문화 전담조직을 찾을 수 없다.
IT문화를 이끌어 나갈 정부 전담조직이 없는 상황에서 각 부처간 이기주의와 업무 중복에 따른 혼선은 IT문화를 대표하는 PC방의 사례만 보아도 쉽사리 짐작할 수 있다.
전국의 PC방 업주들이 설립한 한국인터넷PC대여업협회는 지난 98년 설립 초기부터 주무관청 선정 문제를 놓고 잡음이 불거져나오면서 이듬해 4월 문화관광부에 등록한 한국인터넷멀티문화협회와 정보통신부에 등록한 한국인터넷플라자협회로 양분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을 겪은 바 있다. 물론 양 단체는 2000년 7월 전격 통합을 발표하고 이듬해 3월 문화관광부 산하 한국인터넷PC문화협회를 창립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협회는 아직까지도 음비게법, 학교보건법, 소방법, 청소년보호법 등 각종 정부 부처의 관련 법령으로 이중 삼중의 규제를 받고 있는데 따른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이와 관련, 한국인터넷PC문화협회 허명석 회장은 “PC방은 무료 인터넷 교실 운영 등으로 정보격차 해소에 앞장서고 있다”며 “PC방이 유해업소가 아닌데 학교보건법 때문에 학교 근처에는 문을 열 수도 없다”며 정부의 융통성 있는 정책을 호소했다. 허 회장은 또 “10시 이후 미성년자 출입제한 조치로 보충수업 때문에 저녁 늦은 시간대에나 이용 가능한 학생들은 사실상 이용이 가로막혔다”며 “당구장조차도 24시간 영업하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조치”라고 덧붙였다.
IT문화에 대한 인식이 크게 떨어지는 상황에서 그나마 정통부가 지난달말 IT 강국에 걸맞은 정보보호 선도국가로서의 위상을 구축하기 위해 ‘정보보호문화운동’을 본격 추진하겠다고 밝힌 점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정통부는 연말까지 1단계로 ‘내 컴퓨터 내가 지키기’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정보보호문화 확산을 위한 범국민적 홍보와 교육에 들어갔다. 또 내년부터는 2단계로 정보보호문화 정착을 위한 기술적·조직적 기반 조성에 나서고 정보격차 해소를 위한 전문 서비스도 제공할 계획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같은 일회성 행사도 필요하지만 IT를 산업적인 측면이 아닌 문화적인 측면에서 상시적으로 다룰 정부 차원의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통부 등의 유관부처 산하에 국이나 과 단위의 전담조직을 두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한다. 또 유관부처에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는 관계법을 개정해야 하는 부담이 따른다는 점을 들어 국무총리 직속으로 IT문화를 다룰 위원회를 두자는 주장도 주목받고 있다.
어떤 형태든 IT문화를 다룰 조직을 만들기 위한 범정부 차원의 의견 수렴이 시급한 때다.
◆해외 각 국 정부의 IT 관련 조직
IT산업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이제는 IT를 산업뿐 아니라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다뤄야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가운데 국가 CIO제도가 이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국가 CIO는 말 그대로 한국가의 IT와 관련한 모든 제반 문제를 총괄하는 직책으로 산업과 관련한 정책 입안과 시행은 물론 사이버보안을 비롯해 스팸, 음란물 등의 각종 IT와 관련한 사회문화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두루 담당하기 때문이다.
이미 세계 최고의 IT 국가인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국가 CIO를 임명, 발빠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경우 90년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부터 엘 고어 부통령 직속으로 ‘NPR(National Partnership for Reinventing Government)’을 설치해 개혁작업을 추진하면서 정보화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국가 CIO직제를 신설하고 부통령이 이를 맡도록 해 성과를 얻은 바 있다. 또 미국은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한동안 국가 CIO를 임명하지 않아 논란이 됐었으나 미 상원이 지난 7월에 전자정부국(OEG) 신설을 골자로 한 ‘전자정부법(EGA)’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아예 국가 CIO를 임명할 수 있는 근거 조항까지 마련했다.
또 IT 관련 부처간 이기주의로 어려움을 겪어 오던 일본도 이에 대처하기 위해 지난 2000년 내각에 ‘정보통신기술 전략본부’를 신설했으며 지난해에는 첨단기술 시대와 관련된 시책을 신속하게 추진하기 위해 총리를 본부장으로 하는 ‘고도정보통신사회 추진본부’까지 결성하면서 국가 CIO직제를 도입했다. 호주 역시 ‘NOIE(National Office for the Information Economy)’와 ‘OGO(Office for Government Online)’ 등으로 IT 관련 조직을 이원화해 운영해왔으나 지난 2000년 OGO의 기능을 NOIE로 통합하고 이 조직을 정보통신예술부의 책임집행기관으로 전환시키면서 국가 CIO직제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밖에 캐나다·영국·싱가포르 등도 국가 CIO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중이다.
물론 국가 CIO제도가 관심을 끌기 이전에도 주요 국가들은 대부분 IT 전담 책임자를 임명해왔지만 이들은 실질적인 권한과 집행력을 갖고 있는 국가 CIO와는 다른 입장이어서 IT와 관련한 제반문제를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있게 추진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국가 CIO가 모든 IT 업무를 총괄하는 가운데 CIO 직속의 IT 문화 담당자가 IT로 인해 벌어지는 각종 사회문화 현상에 대처하는 구조가 IT조직 모델로 급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지난 8월 이상철 정보통신부 장관이 취임 직후 “정부 IT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국가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라”고 주문하면서 정통부 장관이 ‘정부 CIO’가 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등 국가 CIO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상황이다.
<황도연기자 dyhw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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