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무선 통합 전화번호 체계에 대한 논의가 정부에 의해 제기돼 통신업계가 들썩이고 있다. 유무선 통합 전화번호는 말 그대로 유선전화와 무선전화의 번호체계를 하나로 통합해 국민의 통화주권을 크게 개선시켜 보겠다는 정부의 입장이 반영돼 있는 듯하다.
통합 전화번호가 도입되면 이용자들도 전화번호가 짧아지기 때문에 기억하기에 편리하고 사업자들도 전화번호의 브랜드 파워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운 경쟁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처럼 ‘좋은’ 제도를 계획중인 정통부가 일관적이지 못한 태도를 보인 점을 놓고 보면 과연 실행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따름이다.
정통부 주무과장은 이와 관련, 11일 오전에는 전혀 검토한 바가 없다고 하다가 나중에 계획중인 사안이라고 말을 바꿨다. 나아가 통합번호가 시행되면 이러이러한 장점이 있다는 말까지 친절하게 덧붙였다. 남북통일 이후에도 국번호를 다섯자리로 늘리면 8억개의 전화번호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은 통신업계의 이같은 중차대한 사안이 왜 갑자가 튀어나왔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정통부 관료나 업계 관계자들이 인정하는 것처럼 당장 현실성도 없는 데다 앞으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논의해야 할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왜 갑자기 내놓았냐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KTF와 LG텔레콤의 건의서 제출 계획을 미리 알고 선수치는 것이 아니냐는 반응이다. 나아가 특정 지배적사업자를 겨냥한 발언이 아니냐는 입소문도 들린다. ‘치고 빠지기’식 정치적인 수법을 동원해 업계의 반응을 떠보려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오간다. 처음에 완강하게 부인하다 슬그머니 검토하고 있다고 말을 바꾼 정통부에 무슨 사연이 있는 것 아니냐는 보다 ‘애정’ 어린 반응도 나왔다.
그러나 유무선 통합 번호체계가 통신역무와 접속제도·요금제도 등 통신현안이 모조리 바뀌는 것을 의미하는 중차대한 문제를 놓고 개방된 논의는 고사하고 주무부처의 관료라는 사람이 불과 몇시간 사이에 말을 바꾼다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 통신정책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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