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벤처의 공식을 다시 만들자
주제발표:문규학 소프트뱅크 벤처스 코리아 사장
IT업계의 불황을 경제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면 IT도 더블딥에 빠져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IT산업은 과거 인더스트리얼 IT와 컨슈머 IT가 상호보완적인 영향을 주면서 성장을 구가해왔다. 그러나 몇년전부터 산업계의 인프라투자가 줄어들고 PC를 비롯한 컨슈머 상품의 판매부진이 거듭되면서 총체적인 불황을 겪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전세계 통신사업의 위기에서 보듯 투자효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 몇년간의 벤처투자 패턴과 전통적인 기업과 첨단 IT기업의 성장패턴을 살펴보면 명확하게 드러난다.
미국의 경우 벤처열풍을 주도했던 인터넷 시대 이전에는 기업이 설립돼서 1∼2차 투자를 받고 정상궤도에 올라 기업공개까지 가는 과정이 평균 7.6년이 걸렸다. 그것이 인터넷과 닷컴기업 열풍 이후에는 4.5년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즉 전통적인 벤처투자 사이클에서는 제품출시와 소비자의 수용단계, 이익창출 이후의 IPO에 이르는 과정이 완만한 직선형태였다면 신경제의 영향을 받은 새로운 사이클에서는 해당기업의 가치와 투자유치 규모가 과포장되고 압축되면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너무 단기간내에 이런 과정이 진행돼다 보니 소비자가 제품의 가치를 판단하기 이전에 IPO가 먼저 이뤄지는 경향도 빈발함은 물론 소비시장에서 그 제품의 구매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결국 IT관련 투자사이클은 투자규모와 해당기업의 가치는 과다하면서도 시간은 단기간내에 이루어져 투자부진과 소매시장의 위축을 촉발하게 한 원인이라는 것이 미국의 예이다.
이런 과정을 그대로 답습한 한국도 미국의 경우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먼저 조급한 투자와 IPO는 시장이 성숙되기도 전에 다수의 플레이어들을 양산했으며 코스닥 시장에서도 등록기업의 대폭적인 증가를 초래했다.
코스닥증권시장에 따르면 지난 99년 12월 코스닥시장에는 455개 기업이 등록되고, 시가총액만도 98조7040억원이었다. 그것이 1년후인 2000년 12월에는 604개 기업에 29조160억원, 2001년 12월에는 721개 기업 51조8180억원, 올 9월에는 832개 기업에 38조1600억원으로 크게 감소하는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즉 등록기업 숫자면에서는 약 2배 가까운 증가가 이루어졌지만 시가총액은 3분의 1 수준으로 감소한 셈이다.
이 같은 등록기업의 증가추이는 투자자원의 한계를 감안하면 물량부담 요소로 작용함은 물론 등록기업에 대한 투자자들의 정보접근성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애널리스트들이 기업으로부터 습득하는 정보와 CEO의 말만 듣고는 투자리포트를 쓴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미국 나스닥시장의 경우 1만개 기업이 등록돼 있지만 애널리스트의 투자리포트가 나오는 기업은 그중 5분의 1 수준인 2000개 기업이다. 나머지 8000여개 기업은 방치 혹은 소외돼 있다고 봐도 될 것이다. 이는 코스닥시장의 경우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챠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투자자들도 많은데 이런 투자형태는 차라리 도박을 하는 것보다도 확률이 낮다고 볼 수 있다. 또 애널리스트라는 감시자의 눈에서 벗어난 기업이 많아질 경우 당연히 주주들의 눈을 속이는 주가조작에 대한 유혹을 받는 기업들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는 잘알려진 바와 같이 기업이 등록하는 과정에서 등록 그 자체에만 사력을 집중한 채 기업공개와 동시에 부과되는 사회적인 책임과 주주에 대한 신뢰를 망각한 일부 기업들이 있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을 무시하는 기업들은 사회의 공익적인 차원에서 퇴출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이 모든 원인은 몰림과 쏠림, 그리고 조급함에서 비롯된 잘못된 공식에서 비롯된다. △빠른 회수를 바라는 조급한 투자자와 △경쟁우위를 갖추지 못한 대다수의 기술 기반기업들이 만들어낸 공급과잉 △제대 된 자본시장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코스닥시장 등이 연출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때문에 벤처자본시장은 선순환 사이클이 파괴된 상태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당분간 인더스트리얼 IT마켓도 투자가 이루어질 것 같지 않으며 컨슈머 IT산업도 핸드폰 등 특수한 아이템을 제외하고는 변수가 없을 것으로 예측된다.
공급과잉의 상태와 다수의 플레이어가 존재하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업종별 통합을 통한 새로운 도약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 국내 기술업계는 업종별 통합을 통해 소규모 개별기업으로서의 경영 및 재무 리스크를 낮추고 기업가치 증대를 도모할 수 있는 기회를 통해 새로운 도약을 모색해야 한다.
<이규태기자 kt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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