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통신장비업계가 해외에서 부진한 것과 달리 이동통신단말기업계는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단말기사업만큼은 세계 3강 자리를 확실히 굳혔으며 LG전자도 5위권 진입을 앞두고 있다.
과거 국산 CDMA장비가 공급된 곳을 중심으로 이뤄졌던 해외수출도 이제는 국산 장비 구축 여부에 관계없이 전방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뿐 아니라 팬택&큐리텔, 세원텔레콤 같은 중견·중소업체도 해외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다.
이러한 단말기산업의 호황은 내수시장에서 철저히 최종 소비자의 선택에 입각한 경쟁이 이뤄졌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90년대 중반에는 외산업체의 점유율이 50%를 웃돌았으나 최근 국산업체 점유율이 90%를 넘을 정도로 상황이 반전되는 과정에서 국산업체들이 자연스레 경쟁력을 확보하게 됐다는 것이다.
국산 단말기업체들은 이처럼 내수시장에서 치열한 생존경쟁을 거쳐 확보한 경쟁력을 바탕으로 해외시장에서도 세계 주요 단말기업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반면 장비산업은 시장원리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 자국업체 보호의 테두리안에서 성장해왔다.
초기 CDMA시장에서 트로이카 체제의 한 축을 구성했던 현대전자(구 현대시스콤)가 M&A 열풍속에 주춤거리는 사이 양강으로 자리잡은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국내 시장을 사이좋게 양분해왔다.
이동통신사업자들도 CDMA장비 입찰에서 이들 업체에 우호적인 입장을 견지함으로써 국내시장은 한때 루슨트테크놀로지스와 모토로라가 소량의 장비를 공급한 것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외산업체의 진입이 차단돼왔다.
이에 따라 국내업체는 일단 어느 정도의 내수부문에서 실적확보가 가능했다. LG텔레콤이라는 든든한 후원자를 갖고 있는 LG전자는 물론 삼성전자도 LG텔레콤을 제외한 KTF, SK텔레콤을 대상으로 한 사업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반사이익을 거둬왔다.
CDMA에서만큼은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빠른 서비스 상용화가 진행되는 국내 시장에서 일단 장비를 적기에만 개발하면 매출을 올리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던 셈이다.
외산업체 A사 관계자는 “외산업체들은 국내 이동통신장비 입찰에는 수주 가능성이 희박해 입찰참여조차 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며 “간혹 참여하더라도 한국업체가 주 공급자로 채택되고 제2공급자로는 ‘들러리’로 외산업체가 선정될 것이라는 예상시나리오가 항상 나돌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안정적인 내수기반은 국내 장비산업을 어느 정보 발전시킨 게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단순히 내수규모가 많고 적음을 떠나 내수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통해 경쟁력을 갖추고 이를 기반으로 해외시장을 공략하는 것이 원칙인데 국내 장비산업의 경우 이러한 과정이 생략됐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몇몇 업체가 ‘우물안 개구리’식 경쟁을 통해 국내시장을 나눠갖다보니 정작 해외시장에서 다국적 통신장비업체들과 맞설 수 있는 경쟁력을 확보하지는 못했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초기 CDMA시장에서는 종주국임을 앞세운 국내업체의 시장진출이 용이했지만 해외 유명 업체들이 앞다퉈 사업을 강화하고 있는 3세대 CDMA시장에서는 대형 글로벌기업의 공세를 이겨내기가 결코 쉽지 않은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이다.
우선 국내업체가 해외업체에 가장 뒤지는 부분은 가격경쟁력이다. 해외업체들은 전세계적인 매출 기반을 바탕으로 국내업체에 비해 많게는 30∼40% 가량 낮은 가격을 이동통신사업자에게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상반기 삼성전자가 인도네시아에서 초기 예상보다 적은 물량을 수주하게 된 것도 경쟁사가 입찰 막바지에 파격적인 가격을 제안했기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국내업체의 약점은 영업능력에서도 지적되고 있다. 최근 차이나유니콤의 2차 입찰과정에서 북미 업체들이 자국 정부의 로비를 등에 업고 차이나유니콤과 전격적인 계약을 체결한 것처럼 사회인프라인 통신망의 핵심장비는 단순히 개별업체의 능력만으로는 좋은 결과를 거두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결국 기업들이 경쟁력 제고와 맞물려 정부의 외교력으로 풀어야 할 과제인 셈이다. 최근 나타난 북미 업체의 발빠른 행보는 공급지역 확대 및 신규진입을 노리는 국내업체가 반드시 배워야 할 점으로 꼽히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코리아의 송석헌 부장은 “최근 전세계적으로 대규모 이동통신장비 발주가 줄어들면서 해외 장비업체들의 파상공세가 이어지고 있다”며 “국내업체들도 하루빨리 해외 다국적 통신장비업체의 공세에 맞설 수 있는 실질적인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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