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이 전자금융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해왔던 ‘뱅크@롯데(가칭)’ 설립계획을 17일 전면 백지화했다. 롯데의 사업철회 결정은 그룹 차원에서 신규법인 설립을 기정사실화하고 전담조직까지 구성했다 내려진, 매우 이례적인 조치로 여겨진다.
롯데그룹은 그룹내 유통계열사를 중심으로 금융자동화기기(CD/ATM) 사업추진을 뱅크@롯데 설립을 추진해왔다. 이같은 변화는 당초 웹캐시·하나은행의 ‘매직뱅크’ 사업권 인수를 통한 법인설립에서 ‘인수불가-독자추진’ 입장으로 선회한 뒤, 아예 법인설립 계획까지 철회한 전격적인 조치다. 본지 10월 2일자 9면 참조
이에 따라 그룹은 법인설립을 위해 롯데캐피탈 내에 꾸렸던 전담팀(TFT)도 해체하고 파견직원들을 최근 각 계열사로 원대복귀시켰다.
롯데가 이처럼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의사결정을 내린데는 사업성 타진 과정에서 내부의 의견조율이 정리되지 않았던 이유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모델사례로 삼았던 일본 세븐일레븐의 자동화기기 사업을 국내시장에 그대로 접목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린 데다, 법인설립의 관건이었던 웹캐시·하나은행의 사업권 인수문제도 난항을 겪었기 때문이다.
롯데는 독립법인 설립을 철회한 대신 현재 계열사 가운데 사업주체를 선정, 금융 자동화기기 사업은 변함없이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그룹 관계자는 “사업추진 방식이 달라졌을 뿐 자동화기기 사업은 당초 구상대로 진행할 것”이라며 “조만간 최고 경영진의 의사결정을 통해 전담 계열사를 선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신용카드업에 공식 진출한 롯데가 현금서비스·인출 등 대고객 서비스를 제대로 갖추기 위해서도 자동화기기 사업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주변의 시각이다. 이에 따라 그룹 안팎에서는 계열사간 사업권 경쟁이 가시화하는 가운데, 롯데쇼핑이 백화점·할인점 등을 거느린 전략적 요충지인 만큼 자동화기기 사업의 주체가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뱅크@롯데의 설립작업이 결국 ‘해프닝’으로 끝난데 대해, 롯데그룹의 의사결정 구조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그룹사가 법인설립팀까지 구성했다가 완전 백지화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면서 “의사결정 관행이 그룹의 외형에 걸맞지 않다는 방증이 아니겠느냐”고 꼬집었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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