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향 국회도서관 연구관 kyooh@yahoo.com
김정일 위원장의 구상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놀라움과 기대의 눈으로 지켜봤던 우리는 이후 교류협력의 증대와 중국과 러시아 방문 등 북한의 전략을 읽을 수 있는 수많은 신호에도 불구하고 부시 정권의 등장과 서해교전을 거치며 다시 남북관계의 일상적 패턴이 반복되는 지루함에 빠졌던 것도 사실이다. 2000년과 2001년의 중국 방문과 남북정상회담, 2002년의 러시아 방문, 7·1 경제관리개선조치, 북일정상회담, 그리고 신의주 경제특구 지정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이 의미하는 것은 북한의 구상이 장기적 차원에서 국제적 프로젝트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신의주 특구는 양빈 특구장관이 홍콩식 자본주의를 거론한 데서 드러나듯이 완전개방형의 자유무역단지가 될 전망이다. 신의주 특구 지정을 통해 북한의 국제적·국내적 움직임이 하나의 완결된 구조로 이해될 수 있다. 먼저 러시아·중국과의 관계 회복은 크게 북방 3각동맹의 협력을 공고히 하여 대서방 전선을 명료히 하는 한편, 러시아와는 동해선을 통한 교류선의 확보, 그리고 중국과는 신의주 특구를 통해 경제모델뿐만 아니라 실질적 도움을 얻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신의주 특구 지정 직전에 진행된 북일정상회담을 통해서는 두 가지 목표를 실현하고자 했다고 할 수 있다. 첫째는 북미관계의 경색국면을 해결해 미국의 무력공격위협을 완화시키며, 둘째는 신의주 특구 개발을 위한 자금조달이다. 여기에 7·1 경제관리개선조치는 국정가격 및 급료 현실화를 통해 와해된 노동자의 노동의욕을 고취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런 변화에 대해 현재 우리의 일반적 분위기는 북한이 던진 새로운 신호를 적극 받아들여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고자 하는 감성적 차원의 대응이 주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그 근저에는 북한의 정책이 변하면 우리가 이를 원하는 방향으로 통제할 수 있으리라는 판단이 깔려 있다.
그러나 북한의 정책변화와 프로젝트의 성사여부는 별개의 문제다. 북한이 홍콩식이든 마카오식이든 완전개방형의 자유시장전략을 채택하고자 한 이상 성사 여부의 결정권은 북한에도 남한에도 있지 않다. 결국 이 프로젝트의 성사 여부를 결정짓는 협상력은 북한이 유치하고자 하는 다국적기업의 손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이들 기업을 정확히 모른다는 데 문제가 있다. 북한의 당국자들은 정치외교적으로 노련한 협상가임에 틀림없지만 경제적으로는 초보인 것이다.
세계적으로 자본은 한정돼 있는 데 비해 자본을 유치하고자 하는 시장은 무수히 많다. 이제 북한은 혼자하는 게임이 아닌 이 국제적으로 치열한 경쟁의 한가운데에 던져진 것이다. 이 시장에서는 자본은 끌어들일 수 있는 유인 지정학적 조건, 시장의 크기, 높은 기술력과 낮은 임금 등이다. 그러나 북한이 이중 무엇을 충족시킬 수 있는지는 불명확하며 따라서 북한의 정치경제적 미래는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북한이 수세국면에서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북한의 선택지를 더욱 좁게 만든다. 물론 북일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은 미국의 무력적 위협을 막는 목적은 달성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의 대북투자는 그리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공적자금협력이다. 그러나 공적자금의 규모에 대해 북한과 일본의 인식차이가 크게 나타나고 있어 이 또한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외교정책자문그룹 위원장인 오카모토 유키오가 9월 16일 국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액수는 불과 20억달러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면 왜 북한은 가장 중요한 보상에 대한 합의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성급히 북일정상회담을 진행시킨 것일까. 북한으로서는 미국의 무력위협과 남한의 정치적 조건의 악화, 그리고 북한 내부의 어려움 등 막다른 조건속에서 선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북한이 진행한 북한·중국·러시아의 북방 3각동맹의 회복은 그 의의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제어할 수 있는 부분이 현재 북한이 처한 국제적 조건속에서 지극히 적다는 데 신의주를 통해 국제무대에 등장하고 있는 현재 북한지도부의 고민이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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