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20주년특집>새로운 20년(3)-30대 IT인의 24시

 ■어느 30대 IT 직장인의 하루 ■

30대 IT 직장인. 보통 92학번부터 83학번까지 해당된다. 이들 세대는 현재 IT산업의 몸통이라고 할 수 있다. 부장급에서 2∼3년차 대리급까지 직급도 다양하게 존재한다. 이 중엔 벤처 창업을 통해 어엿한 CEO와 CTO도 다수 있다. 우선 30대 IT인들의 생활 특징은 다른 세대에 비해 비교적 육아에 대한 책임감이 매우 무겁게 느껴지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대부분 미혼인 20대나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자식을 둔 40대 IT세대와 달리 30대 직장인들은 육아문제가 제일 심각하다는 데 이견을 달지 않는다.

 여성의 사회 활동이 활발해진 측면도 있지만 그보단 맞벌이를 하지 않고선 일정한 경제 수준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인식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수시로 오르는 물가와 천정부지로 뛰는 교육비는 혼자 힘으로 감당하기가 힘든 상황이다.

 의료정보업체 유비케어 소프트웨어개발 프로젝트매니저 A씨(31). 직장생활 6년차인 그는 아내, 3살난 딸과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매일 아침 딸과의 전쟁을 치르느라 비지땀을 흘리곤 한다.

 그는 “처가 근처에 집을 얻어 우리 부부가 출근하고 나면 장모님께서 아이를 키워주신다”며 “떨어지지 않으려고 팔을 잡는 딸을 뿌리치고 오는 것은 비슷한 환경의 30대 부부들만이 느끼는 우리들만의 전쟁이자 고통일 듯 싶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자식에 대한 정은 애틋할 정도로 남다르다. A씨는 퇴근 후의 일상생활을 거의 딸을 위해 할애한다고 한다. 부부가 단 둘이 퇴근 후 밖에서 만나 영화를 보러 갔다가도 ‘괜히 볼 게 없다’거나 ‘시간이 안 맞는다’는 핑계를 대며 서로 눈치를 보다가 결국 딸아이가 좋아하는 강아지 인형을 사서 집으로 달려간다.

 그는 “딸은 엄마를 더 좋아한다. 나를 좋아할 때는 하루에 한번이다. 보통 밤 12시가 넘어 퇴근하는데 피곤한 아내가 잠들면 놀 사람을 찾아 내게로 온다. 새벽까지 놀아주는데 다음날 아침 아기는 오전내내 자고 나는 눈을 부비며 출근준비를 한다”며 웃음을 지어보였다.

 전자부품연구원 연구원 B씨(37)도 아침에 전쟁은 치르지 않지만 육아문제로 고민이 무척 많다. 그는 “26개월된 아들과 4개월 된 딸아이가 있다. 그러나 아내가 교사여서 직장 때문에 고향에 계신 장모님과 같은 아파트에 사시는 아주머니가 번갈아가며 키워주고 계신다. 본의 아니게 이산가족이 된 셈이죠. 문득 자식이 보고 싶을 때가 많다”며 육아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또 IT분야에 종사하는 30대는 과거 40대가 겪던 후배에 대한 불안감을 훨씬 더 일찍 느낀다. IT가 하루가 멀다하고 빠르게 발전하는 탓에 잠시라도 게으름을 피우면 혈기왕성하고 신기술을 스폰지처럼 빨아들이는 20대에게 뒷덜미를 잡히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보안업체 인프니스의 마케팅 과장인 C씨(34). 그가 IT업계에 몸 담은 지 벌써 5년이 훌쩍 넘었지만 자고 나면 바뀌는 IT업계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끝없이 공부하고 있다. 특히 그의 업무 특성상 전체 시장상황이나 경쟁사, 외산 제품의 구체적 동향 파악은 필수적이다.

 그는 “오늘 고객사를 방문하기 위해 새벽까지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했다. 프레젠테이션을 작성하기 위해 벌써 이틀을 꼬박 샜다. 후배들에게 실력면에서 뒤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고 말했다.

 시스템통합업체 비트컴퓨터의 프로그래머이자 과장인 D씨(36)도 사정은 비슷하다. 그는 고객과 최근 계약된 프로그램에 관해 업무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기존 개발된 프로그램과 테이블 디자인을 가지고 협상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머릿속으로는 프로그램을 짠다. 그러다가 로직이 막히거나 머릿속의 프로그램이 에러가 나면 잠시 휴식을 제안, 해결방안을 찾느라 골머리를 앓는다.

 그는 “늘 해오던 일이지만 할 때마다 참으로 힘든 일”이라며 “특히 나이를 먹고 경력이 쌓일수록 프로그래밍 능력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협상력·프레젠테이션 능력·대인관계 등 20대 때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이 30대에 너무 일찍 닥치고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정규근무 시간의 업무를 마무리한 후에도 짬짬이 신기술을 익히고 새로운 정보를 얻는 것에도 게을리할 수 없다. 특히 “IT분야라는 것이 나이를 먹어도 끊임없이 자기 계발을 게을리하는 순간에 도태되는 분야이다 보니 항상 긴장을 늦출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가끔은 한번 자격증을 따면 평생 먹고 살 수 있는(예를 들면 공인중개사·회계사·건축사 등) 직업을 가진 사람이 부러울 때도 있다고 푸념 아닌 푸념을 늘어놓았다.

 이와 함께 대기업과 달리 중견 IT업체에서 30대 중반은 대부분 사업부내 팀장급에 속한다. 사업부 미팅에 참석, 영업팀·개발팀·고객지원팀 간의 업무 조율을 마친 후 본격적인 업무에 돌입한다. 개발팀장이면 개발도 개발이지만 팀원간의 조화도 무시할 수 없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팀원들에게 팀장으로서 그들을 리드하는 것과 서로 힘들고 어려울 때 이겨 나갈 수 있는 여러 방안·대안을 제시해줘야 하는 부담감에 늘 시달리고 있다. 물론 술값도 많이 나가고 시간 투자도 많이 필요한 것은 불문가지다.

 그러나 30대 IT인들은 하루 24시간이 어떻게 지나가야 할지 모를 정도로 바쁘게 지내지만 40대에서 인간미를 배운다. 또 20대 젊은 사람들과 만나 그들의 활기찬 모습을 통해 반복되는 직장생활에서 업무 추진의 원동력을 찾곤 한다.

 30대 IT인들은 결국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남모를 작은 선을 베풀줄 아는 여유를 갖고 싶어한다. 그 모습이 30대 IT인의 자화상이라고 할수 있다. 그 점이 30대의 장점이기도 하다.

 <안수민기자 smahn@etnews.co.kr>

■인터뷰: 신진국 전자부품연구원 센터장 ■

우리나라 IT발전을 위해 묵묵히 애쓰는 30대 연구원들은 많다. 전자부품연구원의 신진국 나노정보에너지연구센터장(37)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30대 중반 IT 인물로서 그의 하루 일과를 일일이 쫓아가면서 일상생활과 애로점 그리고 꿈을 읽어본다.

 ―하루 일과는.

 ▲오전 6시 30분에 기상, 된장찌개 등을 곁들여 아침밥을 먹고 7시 10분에 집을 나섭니다. 부족한 운동량을 채우기 위해 15분간 집근처 지하철역까지 빠르게 걷기를 즐기고 연구원 출퇴근 버스에 탑승합니다.

 8시 35분 연구원에 도착해 전자우편과 전자결재, 오늘의 일정 등을 PDA로 체크해 일의 우선 순위를 정합니다. 점심식사가 끝나면 오후 1시부터 업무를 다시 시작하죠. 밤 7시부터 9시까지 업무를 본 후 출퇴근 버스에 탑니다. 10시 40분쯤에 집에 도착, 가족과 대화를 합니다.

 특히 늦게까지 잠도 안자고 아빠를 기다리는 3살짜리 아들을 위해 만화영화 DVD를 같이 보거나 그림책을 보거나 칼싸움을 하면서 아들을 재우기 위한 일종의 ‘아들 힘 빼기’를 한 후 윈도XP의 원격 데스크톱 기능을 이용해 밀린 결재와 전자우편 체크를 한 후 12시 30분쯤 잠자리에 듭니다.

 ―나노정보에너지연구센터가 하는 일은.

 ▲미래 산업의 핵심기술로 예측되는 나노기술과 융합기술의 중요성을 인식, 나노기술 기반의 정보 저장 및 에너지 관련 핵심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지난 7월 설립된 전문조직입니다. 나노에너지연구센터는 나노기술을 기반으로 전자부품연구원의 강점 분야인 IT를 융합시켜 나노기술을 조기 산업화하는 데 노력할 것입니다.

 ―취미생활은.

 ▲여가가 없어 특별히 하는 취미생활은 없습니다. 다만 팀워크 강화 또는 대외 네트워크 강화 등을 위해 2∼3개월에 한번 정도 동료들과 바다낚시를 갑니다. 하루종일 넓은 바다를 보고 오면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나 직업적 특성상 가질 수밖에 없는 집착, 고민들을 가볍게 할 수 있어 좋습니다.

 또 아들을 위해 아동용 만화영화 DVD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출시된 대부분의 아동용 DVD를 거의 보유하고 있죠. 그리고 한달에 한번 정도는 동료들과 ‘스타크래프트’ 단체대항전을 하면서 그 후담을 안주삼아 술을 마십니다.

 또 다른 연구자들이 수행중인 기술들에 대한 간단한 보고서나 보도자료 읽기를 좋아합니다. ‘세상에 이런 기술도 있구나’ ‘앞으로 내가 할 일도 이렇게 다양하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현재의 직업에 대한 지루함을 잊을 수 있어 좋습니다.

 ―30년 후의 모습은.

 ▲계속 IT연구인력으로 남아 주변에서 좋은 평을 받고, 가족과 즐겁고 화목하게 살며,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소박하지만 제대로 이루기가 어려운 부분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20여년간은 연구개발에 종사하면서 후배들에게 뒤지지 않는 경쟁력을 계속 갖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평생 연구개발에 종사하고 싶지만 정년퇴임 등 사회 여건상 불가능한 경우가 있기 때문에 그동안의 연구개발 경험을 땅속에 묻어버리지 않고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을 것입니다.

 ―끝으로 IT분야 종사에 대한 소감은.

 ▲요즘 대덕밸리에서 유행하는 말 중 고등학생 자녀가 부모를 협박하는 가장 심한 말이 “엄마! 자꾸 이러면 나 이공계 가버린다”고 하면 부모가 겁을 먹는다는 ‘반 농담 반 진담’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엔 요즘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는 이공계 기피 현상과 관련이 있습니다.

 정부에서 내놓은 IT를 포함한 이공계 육성 정책도 공허합니다. 정부 정책을 볼 때마다 IT연구인력으로 산다는 데 회의를 느끼곤 합니다.

 그러나 국가장래를 위해선 누군가 IT연구분야에 종사해야 하고 그만한 값어치가 있는 직업입니다. IT연구인력은 어떤 측면에서 경제적인 부보다 명예와 기술적 긍지로 살아야 합니다. 특히 빠르게 변화되는 기술에 적응해야 하는 직업적 특성상, IT연구인력은 끊임없이 공부하고 변모해야 합니다. 어떤 면에선 다른 어떤 직업보다도 고단한 직업이지만 만족도는 높습니다.

 <안수민기자 smah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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