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미디어 환경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문은 방송과 거대 통신사의 융합이다.
방송과 통신의 융합은 영화·음악·뉴스 등 콘텐츠사업자로부터 지상파·위성방송·케이블 네트워크 등 서비스제공업자, 그리고 TV와 VCR 등 기기제조업자에 이르는 일련의 가치사슬이 완전히 재편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지난 90년대까지 방송과 통신사는 각각 어느 정도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며 성장·발전해왔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한 인터넷은 미디어 환경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디지털기술의 발전으로 인터넷을 통해 음악과 영상신호를 송수신할 수 있게 되면서 지금까지 TV 중심의 영상미디어부문과 컴퓨터를 중심으로 하던 정보미디어부문의 경계가 서로 모호해진 것이다.
TV의 경우 수년 전까지만 해도 인터넷이 광대역 네트워크로 확대되면서 ‘이제 TV는 없다’고 전망됐으나 21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오히려 디지털기술을 등에 업고 미디어의 중심으로 진군하고 있다. 인터넷이 멀티미디어 위주로 전환되면 컴퓨터보다 조작이 쉽고 간편한 TV가 인터넷 접속기기로서 더 각광받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더구나 PC용 애플리케이션 소프트웨어와 콘텐츠를 디지털TV에서도 그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되면 TV는 컴퓨터를 대체할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각국에서 경쟁적으로 개발 중인 양방향TV의 경우 개인별 주문형비디오(VOD)·디지털방송·인터넷TV·t커머스 등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며 TV의 위상을 바보상자가 아닌 ‘정보상자’로 격상시킬 전망이다. 양방향TV를 구현해주는 개인용비디오녹화기(PVR)가 2002년 상반기에 미국에서 160만대나 팔린 것만 봐도 이런 전망은 단시간에 현실화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이동전화도 멀티미디어 처리 기능을 수용할 수 있게 되면서 차세대 미디어로 각광을 얻고 있다. 지금도 인터넷에 접속해서 VOD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으나 머지않아 셀룰러폰 한 대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시기가 올 것이다.
이렇게 미래의 미디어는 예전의 ‘통합’과 달리 ‘융합’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 때문에 전통의 미디어와 통신 등 신흥 미디어와의 주도권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질 전망이다. 미디어시장을 장악할 경우 파급효과가 엄청나고 신규사업으로의 진출이 용이하다는 이유에서다. 주도권 경쟁은 대개 지상파·위성방송·케이블TV를 대표하는 미디어 전송부문, 홈엔터테인먼트 기기부문, 디지털가전부문 등으로 나뉘어 전개되고 있다.
특히 관련 업계의 경쟁은 두 개의 큰 축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양상이다. 하나는 지상파방송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미디어와 케이블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한 뉴미디어의 경쟁이고, 다른 하나는 소비자 인터페이스 기기를 둘러싼 컴퓨터업계와 가전업계간 경쟁이다.
기존 미디어와 뉴미디어의 경쟁은 일견 인터넷을 장악한 뉴미디어사업자의 우세로 기우는 듯하다. 이 예가 AOL과 타임워너의 합병이다. 지역장거리전화·케이블·인터넷접속서비스를 갖추고 있는 AT&T가 AOL에 자사의 네트워크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자 AOL이 타임워너와 합병하면서 인터넷이 미디어업계의 주류 비즈니스로 자리잡았음을 보여준 것이다.
소비자 인터페이스 기기를 둘러싼 컴퓨터업계와 가전업계의 경쟁은 훨씬 격렬하다. 소니가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2’를 앞세워 단순한 게임기를 넘어 본격적인 정보가전시장을 두드리고 있는가 하면, 마이크로소프트는 ‘X박스’를 앞세워 PC를 정보가전 및 미디어 통합시대의 주도세력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는 케이블 네트워크에 대한 공략에도 나서 AT&T에 지분참여하는 한편 AT&T 산하 CATV에 윈도CE를 내장한 셋톱박스가 장착되도록 제휴관계를 맺기도 했다.
가전사들도 미디어시장의 가능성을 보고 디지털TV 개발에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그간 컴퓨터와 통신산업의 전유물로만 여겨지던 인터넷이 디지털TV와 셋톱박스를 통해서도 접속할 수 있게 됨에 따라 가전산업이 전자상거래나 홈뱅킹·원격진료·원격교육 등 e비즈니스의 주역으로 활약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LG경제연구소 윤윤중 연구원은 “미디어 융합시대에는 기기·서비스·콘텐츠를 동시에 제공하지 않고서는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강조한다. PC업계와 가전업계 사이에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플랫폼 경쟁이 결국 소비자들의 선택에 의해 결정되고, 소비자들이 구입하는 것은 기기가 아니라 기기를 통해 제공받을 수 있는 콘텐츠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토털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한 경쟁요소로 대두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정은아기자 eajung@etnews.co.kr>
■미디어 융합 앞당기는 매체들: 스마TV ■
스마TV(SMAR TV:Super intelligent Multimedia Anytime anywhere Realistic TV)는 말 그대로 언제 어디서나 이용자의 취향과 요구에 따라 맞춤형 방송서비스가 가능하도록 해주는 ‘차세대 지능형 방송’이다. 고도화된 방송망과 방송·통신 연동망이 필수임은 물론이다.
보통 스마TV는 방송 전송기술, 방송·통신망 연동기술, 지능형 방송 전송 및 서비스 시스템을 포괄한다. 여기서 스마TV 서비스라고 하면 지능형 방송시스템에서 제공하는 전송 프로토콜·미들웨어·콘텐츠 표현기술·리턴채널 연동기술까지를 포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스마TV로 제공되는 서비스는 다양하다.
이용자는 방송프로그램이나 정보를 원하는 형태에 맞게 맞춤형으로 제공받을 수 있다. 방송을 보다가 추가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또 콘텐츠에서 관심이 있는 부분을 취향에 맞게 변형해서 볼 수 있는 등 양방향서비스도 가능하다.
온라인 퀴즈나 선호도 조사 등 시청자 반응이 프로그램에 반영되는 시청자 참여형 서비스와 음악·뮤직비디오 등 멀티미디어 콘텐츠나 상품 구매가 가능한 콘텐츠 유통서비스, 생동감 있는 실감방송서비스도 제공할 수 있다.
특히 스마TV는 PC나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주부와 중장년층을 첨단 정보세계로 끌어들임으로써 정보격차 해소 및 가정정보화를 촉진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산업적으로도 스마TV는 모든 방송이 디지털방송으로 전환하는 것을 유도, 디지털콘텐츠와 정보기기산업을 활성화하고 t커머스 같은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는 등 긍정적인 여파를 미칠 것으로 예측된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도 2002년부터 2006년까지 1차 중단기적 목표로 지능형 방송시스템 및 단말 실용시제품을 개발하는 등 발빠르게 대처하고 있다. 이 목표에 따르면 2004년 이전에는 HDTV와 멀티미디어 데이터방송이 결합된 정보선택형 방송서비스를 제공하고, 2006년 이후에는 개인정보 맞춤형 방송과 이동 멀티미디어 DAB방송을 제공하게 된다.
이미 HDTV수신기, MPEG 같은 스마TV를 구성하는 일부 기술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어 디지털방송 강국의 실현 가능성은 매우 밝다는 것이 업계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미디어 융합 앞당기는 매체들: 전자종이 ■
‘종이 없는 사회’는 정말 구현될 것인가.
과거의 미래학자들은 기술이 발전하면서 기존 종이매체는 사라지고 새로운 전자매체가 등장할 것으로 내다봤으나 시장규모는 여전히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시장조사기관인 IDC도 2004년 전자매체시장을 5억달러 규모에 불과할 것으로 예측, 실현 가능성을 낮게 점치고 있다. 더구나 종이는 인간의 4대 발명품 중 하나고, 여기에는 몇천년간의 인간 습성이 배어있다는 것도 이런 전망에 설득력을 더한다.
그러나 최근 전자종이 개발기술이 고도화되고 있고 핸드헬드장비시장 같은 틈새분야에 접목되면서 전자종이(electronic paper)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전자종이란 보통 종이처럼 접거나 둘둘 말 정도로 부드러우면서도 액정화면에서처럼 자유롭게 쓰고 지울 수 있는 0.3㎜ 두께의 종이로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매체를 말한다. 기본적으로 수천 번을 재생해서 쓸 수 있고, 인쇄는 프린터나 컴퓨터 자체 모듈을 통해 가능하다. 즉 컴퓨터 스크린을 종이처럼 들고 다니면서 내용을 업데이트하는 것으로 종이에 매일 다른 뉴스를 프린트해서 보면 매일 다른 신문을 구독해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전자종이는 종이만큼 다루기 쉽고 해상도도 인쇄 수준에 가깝다. 특이한 것은 전자종이는 스위치를 꺼도 콘텐츠를 보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텍스트 1쪽을 읽는 동안 전자책을 꺼놓을 수 있어서 LCD보다 전력소모가 적은 편이다.
현재 E잉크와 제록스가 전자종이 프로토타입을 개발했으며 일본 돗판인쇄는 내년 봄까지 전자종이를 양산할 계획으로 관련 회사들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E잉크가 내놓은 것은 현재의 액티브 매트릭스 LCD보다 두께가 얇고 내구성이 뛰어난 것이 특징이다. 기술적으로는 흑색 연료와 전기적으로 민감한 흰색 반도체로 채운 마이크로 캡슐을 철 조각과 투명한 플라스틱 사이에 끼워넣는 전자잉크기술을 이용했다. 프로토타입의 두께는 0.3㎜로 신용카드의 절반에 불과하다.
제록스가 개발 중인 전자종이기술은 플라스틱 판에 수백만 개의 구슬이 기름 구멍 안에 뿌려져 있어서 특정 전기신호를 받으면 회전하면서 일련의 색깔을 표시하는 원리를 응용했다.
돗판인쇄의 경우 E잉크로부터 전자잉크를 공급받아 이를 플라스틱 필름에 코팅해 전자종이 프런트 패널을 만들 계획이다. 연말까지 생산라인을 갖춰 내년 봄부터 양산을 시작, 2005년께는 월 150만장(8인치 환산)을 생산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이제까지 경험에 비춰볼 때 올드미디어는 뉴미디어가 과잉공급될 때 비로소 사라지겠지만 전자종이는 이보다 훨씬 빠른 시간에 종이를 대체하며 콘텐츠 유통시장에 새로운 물결을 일으킬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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