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적 특성을 통신에 활용해 발명된 전신과 전화는 인류 발전에 획기적으로 기여한 발명품들이다. 그 발명품은 통신을 위한 거리적 제한과 시간을 극복했지만, 공간적 제한을 극복할 수는 없었다. 바로 선(線) 때문이다. 그 한계는 1887년 독일의 물리학자 헤르츠가 발견한 전자기파가 단초가 되어 극복되기 시작했다.
이론에서 실체로 확인된 전파의 존재를 무선통신에 이용하기 위한 노력은 마르코니로 이어졌다. 마르코니는 1895년 2.4㎞ 떨어진 거리 사이에서 전파로 전신신호를 보내는 데 성공했고, 1899년에는 영국에서 프랑스까지 50㎞ 거리에서 무선전파를 수신하는 데 성공했다. 1901년에는 영국의 폴두에서 보낸 신호를 3380㎞ 떨어진 미국의 뉴펀들랜드에서 수신, 최초로 대서양을 횡단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이때 활용된 것이 연(鳶) 안테나였다.
1901년 12월 12일. 영국 그리니치 표준시각 정오. 약속된 시간이다.
연 안테나를 띄운 지 30분 가까이 지나고 있었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숨막히는 긴장이 흘렀다. 12시 30분. 기계에 반응이 왔다. ‘톡톡톡.’ 수초도 걸리지 않은 짤막한 신호였고, 2∼3m 떨어진 곳에서도 들을 수 없는 작은 소리였다. 하지만, 마르코니에게는 지축을 흔드는 굉음으로 들렸다. 그곳에서, 2575㎞ 떨어진 대서양 건너 영국에서 보낸 전파였기 때문이었다.
전파가 대서양을 횡단할 수 있다는 것은 당시 이론으로는 불가능했다. 전파를 반사하는 전리층의 존재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딘가에서 반사되지 않으면 이뤄질 수 없는 전파의 특성과 지형적 요인으로 볼 때 대서양 횡단 무선통신의 시험은 황당무계한 시도였다. 실제로 전리층의 존재가 확인된 것은 한참의 세월이 지난 후였다.
마르코니가 그처럼 무모한 도박을 벌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시 마르코니가 설립한 무선전신회사가 어려움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다. 육지의 전신사업은 영국 체신부가 독점하고 있어 무선전신의 확산이 벽에 부딪혀 있었다. 대륙과 대륙을 잇는 해저 케이블이 깔려 있었고, 한편으로는 1876년 개발된 전화가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었다. 때문에 마르코니의 무선회사는 심각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르코니는 1899년, 미국에서 시행된 요트 경주의 무선중계를 생각하며 대서양을 건너갔다. 그러나 그의 예상과는 달리 경기중계는 탐탁하게 받아들여지지 못했고 주목을 끌 만한 것이 되지 못했다. 그 후 해군의 함선을 찾아가 58㎞ 거리의 무선통신 공개실험을 해보였지만 역시 상용화 단계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마르코니는 이러한 절박한 상황에서 그의 무선통신체계가 독자적인 장거리 통신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키는 일을 추진했다. 사업의 독점과 무선전신의 확대를 방해하는 영국 체신부를 상대로 한 도전이 필요했고, 그 결과에 따라 마르코니 회사의 사활이 걸려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를 위해 무선신호를 대서양 건너 미 대륙으로 보낸다는 황당한 모험을 시도했던 것이다.
먼저 마르코니는 대용량의 출력장치를 영국 웨일스의 폴두에 설치했다. 25㎾ 발전기의 전원으로 두단계의 불꽃(스파크) 송신기를 작동시키도록 했다. 이 송신기는 50m 높이의 원기둥 지지대 스무개로 떠받치는 400가닥의 안테나선과 연결되도록 했다. 수신기도 종전처럼 벨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수화기로 듣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1901년 초 그 송신기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완성되었을 때 그 신호는 아일랜드에서도 수신할 수 있었다. 그해 3월, 마르코니는 수신기를 설치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매사추세츠주 케이프코드의 동쪽 해변에 있는 작은 마을 사우스웰플리트에 수신기를 세우기로 하고, 주임기술자를 그곳에 남겨둔 채 다시 영국으로 되돌아왔다.
그러나 9월 들어 웨일스 지방의 해안으로 밀어닥친 해일이 안테나 지지선을 덮쳐버렸다. 스무개의 안테나 지지대 모두가 무너져 통나무와 전선이 뒤얽혀 나뒹굴었다. 또, 한달 뒤에는 미국의 수신기가 설치되어 있던 사우스웰플리트의 안테나도 폭풍에 의해 쓰러져 버렸다.
마르코니 회사의 간부들은 겁이 났다. 거금 25만달러 이상을 자연재해로 날려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르코니는 헝클어진 잔해를 추스려 임시 안테나를 세우고 열하루 뒤에 다시 송신 전파를 발사할 수 있었다. 수신기의 형편은 더 어려웠다. 다시 수신장치를 설치하기에는 돈과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수신장치의 규모를 크게 줄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안테나도 별도의 안테나를 생각했다. 바로 연과 풍선을 이용한 안테나였다.
추운 날씨에 커다란 연 6개와 2개의 풍선이 든 짐을 배에 싣고 다시 미국에 도착한 마르코니는 1901년 12월 9일에 실험을 시작했다.
수신지점은 시그널힐. 버려진 군병원 자리에서 장비를 조립했다. 접지판을 땅에 묻었다. 이미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신호를 반복해서 보내도록 약속이 되어 있었다. 모스 부호 S(· · ·)자였다. 단점 3개로 된 S자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송신기가 너무 취약해 장점을 계속 누르면 변압기와 키에 무리가 생겨 파손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르코니는 먼저 180m 높이로 연을 띄웠다. 바람에 날리는 연에 전선을 매단 안테나 연이었다. 하지만 안테나 연은 바람에 날려 금방 바다로 떨어져 버렸다. 12월 10일. 그날은 날씨가 좋았다. 마르코니는 풍선에 안테나를 매달아 하늘로 띄웠다. 풍선 안테나였다. 그러나 신호는 도착하지 않았다. 대신 몰아치는 바람에 풍선은 공중으로 날아가 버렸고, 안테나는 땅으로 떨어져 버렸다.
12월 12일. 이번에는 연 안테나의 높이를 조금 낮춰 시도했다. 150m 높이의 연이었다. 바람에 연 안테나가 심하게 떨렸다. 그 진동이 수신기에 전해져 새로운 수신기를 동조상태로 유지하기 힘들었다. 시간이 지루하게 흘렀다.
오후 12시 30분, 마르코니는 수화기를 조수 조지 캠프에게 넘겨주면서 나직이 물었다. ‘캠프씨 뭐가 들려요?’ 수화기를 넘겨받은 캠프는 부서지는 잡음 속에서 주기적으로 수화기를 두드리는 세개의 단점을 들을 수 있었다. 약속한 ‘S’자였다. 가냘픈 그 점들은 잠시 쉬었다가 다시 들렸고, 공전 속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마르코니는 자신의 실험 노트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신호 12시 30분, 1시 10분, 2시 20분에 수신.’
12월 14일 마르코니는 실험결과를 영국에 있는 자신의 회사로 타전했고, 12월 16일 세상 사람들은 연 안테나를 통한 무선통신이 대서양 횡단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최초의 반응은 환영 메시지가 아니라 뉴펀들랜드내의 통신을 독점하고 있던 영미전보회사의 변호사에게서 온 경고 메시지였다. 자신들이 해당지역의 전신사업을 독점하고 있으므로, 무선통신은 장차 중대한 법적인 문제를 야기시킬 것임을 통보하는 내용이었다.
마르코니의 연 안테나를 통한 무선실험에 대해 일반인들은 대단한 관심을 보였으나 전문가들은 반신반의했다. 마르코니는 그의 주장을 실증해줄 수 있는 아무런 증거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재실험을 해보일 수도 없었다. 이미 해당지역의 전보회사에서 이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가/한국통신문화재단(KT과학관장)
많이 본 뉴스
-
1
SK온, 3사 합병 완료…“글로벌 배터리·트레이딩 회사 도약”
-
2
“너무 거절했나”... 알박기 실패한 中 할아버지의 후회
-
3
이재명 “AI 투자 위한 추경 편성하자…민주당도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
-
4
美 필리델피아서 의료수송기 번화가 추락...사상자 다수
-
5
수출 16개월 만에 꺾였다…조업일 감소로 1월 10.3%↓
-
6
유출된 아이폰17 에어 후면 패널 보니… “카메라홀은 하나”
-
7
美, 中 딥시크 'AI 개발에 수출 금지 반도체 활용' 확인한다
-
8
한파 예보된 한국…111년만에 가장 따뜻한 러시아
-
9
적대적 M&A' 무력화한 고려아연 상호주…법조계 “묘수 가능성 커”
-
10
오픈AI, 추론 소형 모델 'o3 미니' 출시… AI 경쟁 가열
브랜드 뉴스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