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은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 불안정하게 만든다. 혁명의 역동적인 기운이 제도화될 때 비로소 혁명은 완성되고 사회 전반에 뿌리내린다. 기술 혁신이 유비쿼터스 혁명의 방아쇠를 당겼다면 그 혁신으로 인해 태동되는 제3공간을 정착시키고 질서화시키는 것은 법제와 조직이다. 유비쿼터스 혁명의 막대한 에너지를 국가발전의 동력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이에 대응한 법제화가 요구된다.
유비쿼터스 혁명과 제3공간의 등장은 개별망과 미디어간의 상호접속과 이동성 확보, 전자계약의 유효성과 인증, 프라이버시와 소비자 보호, 안전신뢰성과 조세, 지적재산권과 신도메인 등의 영역에서 기존의 IT법제로는 감당할 수 없는 법제도적인 문제들을 불러올 것이다. 그러나 유비쿼터스 시대의 가장 근본적인 법제적 과제는 제3공간을 지향한 서비스와 사업자들의 활동에 어떤 권리와 의무를 부여할 것인지, 제3공간 그 자체에는 어떤 법률적 지위를 부여할 것인지, 제3공간의 소유와 이용에 대한 법리적 개념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 등의 문제로 요약할 수 있다.
특히 칩과 센서를 공간에 심을 때 여러 가지 예상치 못한 문제점들이 발생할 수 있다. 칩과 센서로 구성된 공간서비스를 중지할 경우 심어진 칩과 센서를 원상 회복시키는데 소요되는 비용은 누가 부담할 것인가의 문제다. 칩과 센서를 철거하지 않은 채 서비스를 중단할 경우 그 칩과 센서의 소유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칩과 센서를 물리공간과 분리해 매매할 수 있는가 등의 복잡한 문제가 발생한다.
유비쿼터스 혁명을 통해 등장하는 제3공간은 사회간접자본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는 공공재로서의 위상과 공간 재화(space goods)로서 거래의 대상이 되는 경제재로서의 위상을 동시에 지닌다. 또한 제3공간은 주변공간과 어떻게 연결돼야 하는가라는 문제도 안고 있다. 주변공간은 단순한 물리공간일 수도 있으며 또 다른 사업자에 의해 제공되는 제3공간일 수도 있다. 제3공간과 물리공간의 경계선상에서 더이상의 공간 서비스가 단절될 수 있으며 물리공간에서 제3공간으로 진입하는 것을 제한당할 수도 있다. 또 사적인 제3공간과 공공의 제3공간이 서로 어떻게 연결돼야 하는가에 대한 강제적인 규율도 필요하다.
새로운 혁명적 개념의 법제화는 촉진과 억제라는 모순된 논리를 동시에 함축한다. 법제화는 혁명의 제도화와 지속화를 통한 확산과 촉진을 위한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혁명의 부정적 효과에 대한 규제와 억제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유비쿼터스 혁명의 법제화 역시 제3공간의 확산을 지향하는 촉진 정책이 강조돼야 하는 동시에 유비쿼터스화로 인한 역기능을 예방하기 위한 규제도 고려해야 한다.
지난 20여년간 정부는 정보화시대를 앞당기기 위해 다양한 법제도를 마련해 왔다. 지난 86년에 제정된 전산망보급확장과이용촉진에관한법률과 95년에 제정된 정보화촉진기본법은 정보화 텃밭을 일궈 한국적 IT묘목을 착근시킨 가장 대표적인 법제다. 이들 법률들은 정보화를 촉진하기 위해 기존의 규제들을 완화시키면서 정보기술의 개발과 확산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유비쿼터스 법제 역시 제3공간의 창조와 공급을 촉진하기 위한 선도적이고 다양한 조치들을 포함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특정 지역에서 유비쿼터스 기술을 선도적으로 적용해 u학교·u캠퍼스·u병원·u정부 등과 같은 신공간 시스템을 구현함으로써 관련 시스템의 구조개혁과 연동시키는 법제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 혁신적 유비쿼터스 기술을 채택하는 공간 개발 사업자들에게 금융과 세제상의 특별 지원이 가능한 ‘제3공간 설치 및 지원에 관한 특구설치 등을 위한 특별법(가칭)’ 등이 요구된다.
이같은 차원의 법률적 지원을 위해 유비쿼터스 법제는 ‘u사업’ 및 ‘u사업자’에 대한 분명한 개념 정의부터 수립해야 한다. 그러나 유비쿼터스 사업자의 범위를 명확히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유비쿼터스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는 의료 사업자 또는 정보통신 사업자로 분류할 수 있다. 그러나 유비쿼터스 법제를 마련해 유비쿼터스 기술개발과 응용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이들 사업자를 ‘u사업자’로 별도 분류해 집중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u사업 및 u사업자에 대한 법제화는 융합화에 따른 법제간의 충돌 문제를 불러온다. u사업자는 물리공간과 전자공간이 융합된 제3공간을 지향하며 활동한다. 제3공간이 융합 공간인 만큼 제3 공간에 적용할 물리공간과 전자공간의 법규는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결국 유비쿼터스 법제는 물리공간과 전자공간에 적용되던 각종 법규들을 어떻게 조절해 나갈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조화를 지향하는 융합이 오히려 법률적 갈등을 불러오는 역설적인 현상은 정보화시대를 경험한 우리들에게 익숙한 현상이다. 70년대 들어 통신과 컴퓨팅의 융합 영역을 어떻게 법률적으로 수용할 것인가의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됐으며, 90년대 이후에는 통신과 방송의 융합이 새로운 법률적 쟁점으로 부각됐다.
등장 초기에 컴퓨터는 통신 네트워크와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규제차원에서 보면 통신에 대해서는 엄격한 법적 규제가 가해졌으나 컴퓨팅의 영역은 비규제 영역으로 취급돼 왔다. 그러나 70년대 후반부터 대형 컴퓨터에 의한 온라인 시스템이 금융·운수 등에서 눈부신 성과를 발휘하면서 통신과 컴퓨팅의 융합에 대한 법적 수용이 쟁점화됐다. 통신 네트워크를 통해 컴퓨터간에 정보를 송수신하는 데이터 통신은 법적 규제논쟁을 거치면서 결국 ‘비규제 공간화’됐으며 이를 통해 고도 정보처리서비스의 눈부신 발전도 가능했다.
통신과 방송의 융합 역시 비대칭적인 규제의 갈등 양상을 보여준다. 방송에 비해 통신은 상대적으로 약한 규제 공간으로 취급돼 왔다. 예를 들어 인터넷방송이라는 형태로 융합이 진행되자 여기에 방송과 같은 강력한 규제를 적용할 것인지 아니면 통신과 같은 유연한 수준의 규제를 적용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다. 약한 규제는 곧 인터넷방송 등의 확산과 촉진을 의미하지만 강한 규제는 억제를 의미한다.
제3공간을 지향한 유비쿼터스 법제는 새로운 비대칭적 규제의 갈등을 예고한다. 즉 제3공간에 대해 물리공간과 같은 수준의 강한 규제를 적용할 것인지 아니면 전자공간과 같은 수준의 약한 규제를 적용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건물의 벽 속에 식재되는 칩과 센서에 대해 노트북이나 PDA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규제가 부과되지 않을 수 있지만 건축이나 전기설비처럼 엄격한 규제가 적용될 수도 있다.
정보화시대를 거치며 우리가 얻은 소중한 교훈은 융합 공간에 약한 규제를 적용함으로써 새로운 산업의 성장을 촉진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유비쿼터스 법제에도 마찬가지의 교훈을 적용할 수 있다. 제3공간에 강한 규제를 적용함으로써 새로운 기술적인 실험을 억제하고 모험적인 서비스를 원천적으로 봉쇄해서는 안된다. 정부는 제 3공간의 역동적 진화를 억제하기보다는 중장기적 청사진을 제시하고 표준화 등으로 대표되는 최소한의 사회적 규제와 공정경쟁 규범만을 남김으로써 민간기업의 활력과 창의력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공동집필>
하원규 ETRI 정보화기술연구소 IT정보센터장 wgha@etri.re.kr
김동환 중앙대 공공정책학부 교수 sddhkim@cau.ac.kr
최남희 국립청주과학대 행정전산학과 교수 drnhchoi@cjnc.ac.kr
<박스>u코리아 전략 추진체제
‘u코리아 추진전략회의’를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해야.
법제도의 정비가 유비쿼터스 혁명이 국가사회 발전의 원동력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환경과 토대를 마련하는 작업이라면 추진체제의 조직화는 분산돼 있는 힘을 결집해 세력화시키는 일이다. 한정된 자원을 부여받은 우리는 u코리아 구축이라는 새로운 지식정보국가의 실험적 모델을 위해 소모적인 실험을 반복하거나 시장이 저절로 형성되기를 기다릴 여유가 없다. 유비쿼터스를 지향한 국내외의 기술적 자원과 인재와 기업가적 모험을 총동원해 u코리아 구축이라는 국가적 프로젝트를 최소의 비용으로 최단기간 내에 끝내야 한다. 이를 위해 요구되는 것이 그림에서 보여주는 ‘u코리아 추진체제’다.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설계도가 필요하고 설계도에 따라 시공할 일꾼도 있어야 한다. u코리아 건설을 위해 가장 시급한 일은 유비쿼터스 혁명 구상을 국가적 경영 비전으로 승화시킨 u코리아 건설 설계도를 도출하는 일이다. 이와 동시에 u코리아 기본구상을 실천할 수 있는 추진체제도 정비해야 한다.
u코리아는 국가사회의 전 부문에 걸쳐 추진되는 21세기 국가 프로젝트다. 따라서 u코리아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정보통신뿐 아니라 산업·건설·도로·교육·과학·보건·의료·국방·치안 등 사회의 모든 부문들이 연관된다. 하지만 유비쿼터스 혁명에 대해 사회 각 부문들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보폭을 취한다. 그러므로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보폭을 조율하기 위해 대통령 직속의 범부처적인 조직이 요구된다. ‘u코리아 추진전략회의(가칭)’를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해 범부처적인 의견 조율과 u코리아 비전에 대한 범국가적인 합의를 이끌내야 한다.
아울러 u코리아전략회의의 결의를 구체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실무 부처로서 ‘u코리아 추진전담사무국’ 체제도 필요하다. u코리아 추진전담사무국은 유비쿼터스 혁명의 에너지를 국가사회 전반에 확산시키기 위한 기본계획과 액션플랜을 수립하고 사회 각 부문의 u코리아 기본계획의 성취도를 매년 측정·평가함으로써 성공적인 u코리아 건설의 행동체 역할을 맡게 된다.
결국 u코리아 전략을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견인하는 법제도적 장치는 유비쿼터스 햇빛을 하나의 초점으로 모아 불을 붙이는 렌즈와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다가오는 유비쿼터스 혁명시대에 우리나라가 세계중심국가로 발전할 수 있느냐도 u코리아 전략 전담 사무국이라는 렌즈를 어떻게 갈고 닦느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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