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장비산업 변해야 산다>(2)출신성분이 기술력인가

 ‘우리가 남이가?’

 반도체업계와 장비업계 사이에서도 전관예우 관행이 존재한다. 좁은 땅덩이 안에서 이뤄지는 산업이다보니 소자업체에서 반도체 제조를 담당했던 기술임원이 장비업체 간부로 자리를 옮기거나 아예 장비업체를 차리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친정’인 반도체업체에서 특혜를 받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의미다.  

 물론 소자업체 출신의 장비업체 관계자들은 그동안 보고 배웠던 기술수준이 워낙 높았던 탓인지 그렇지 않은 장비업체에 비해 비교적 빨리 자리를 잡는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처럼 소자업체에 근무하면서 봐왔던 발주 메커니즘을 남들보다 잘 알고 있어서인지 출신업체를 대상으로 한 수주실력도 탁월하다.

 이는 남들보다 더 많은 현장경험이 있기 때문에 성능좋은 장비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연간 매출의 절대부분이 출신 소자업체에 치중, 탁월한 ‘수주실력=기술력’이라는 등식이 성립된다면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최근 2∼3년 사이에 해외시장 개척의 중요성이 대두된데다 지난해 급격한 국내시장 규모 축소로 수요업체 다변화가 요구되면서 우리나라 장비업체들의 고객이 다양화되기는 했지만 수년 전만 하더라도 업체의 연간 수주실적이 특정 소자업체에 집중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심지어 연간 매출의 90% 가량이 국내의 한 소자업체에 편중되는 일도 적지 않다. 그 배경에는 장비업체 경영자 또는 핵심 임원의 출신성분에 따른 전관예우가 작용한 경우가 많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출신, 이른 사연(社緣)에 따라 파벌이 형성되기도 한다. 때문에 출신 소자업체로부터는 날로 입지가 강화되지만 이 소자업체와 경쟁적인 타 소자업체에는 명함도 내밀 수 없는 웃지못할 현상도 빚어진다.

 지난해 하반기 국내 장비업계에는 살생부가 만들어졌다는 소문이 돌았다. 과거 A 소자업체의 고위 간부를 배경으로 끈끈한 인맥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그 고위간부가 A 소자업체로부터 지배력을 상실하자 척결대상이 됐고 덩달아 관계된 장비업체들까지 배척대상에 올랐다는 내용이었다.

 이 소문이 사실이라면 인맥 때문에 장비업체들을 손보겠다는 소자업체도 문제지만 인맥으로 오해를 사는 장비업체에도 문제가 있는 셈이다.

 장비업체의 한 관계자는 “장비업체 사장들의 상당수는 과거 소자업체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고 이들 회사의 대부분은 특정 소자업체에 매출이 편중돼왔던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며 “기술력도 기술력이지만 수요가 한정된 국내 장비시장에서 고만고만한 업체들끼리 경쟁하려다 보면 무엇보다도 인맥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물론 한국적 정서에서 출신성분, 인맥을 우선시하는 현상을 결코 나쁘다고만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실력이 수반되지 않은 무조건적인 전관예우는 반도체장비산업 발전에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한다. 특히 무한경쟁시대로 접어드는 글로벌 경제환경에서 이같은 맹목적인 전관예우는 반드시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 묵묵히 기술로 승부하는 다수의 중소 장비업체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최정훈기자 jhchoi@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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