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이국에 뿌린 감동의 씨앗

 ◆서병문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장

 

 올해 초 중국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있은 일이다. 비행기를 탈 때까지 여유가 있어 공항 길목에 있는 우리나라 가수 HOT와 NRG를 중국 현지에 소개하는 업체 사무실에 들렀다.

 그곳의 좁은 공간에서는 엄청난 일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우선 사무실 구석에 잔뜩 쌓여 있는 라면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게 모두 우리 가수들에게 보내는 팬레터란다. 베이징과 상하이는 물론이고 황하 중류에 위치한 산시성에 이르기까지 중국 전역에서 날아든 편지들이었다.

 호기심에 상자 중 하나를 뜯어보기로 했다. 상당수가 HOT와 NRG가 아닌 그곳 사무실을 지키는 김 사장 앞으로 온 것들이었다. 가수들에게 직접 팬레터를 보낼 방법이 없어서 김 사장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낸 것이었다.

 “김 선생님께 감사드려요. 중국 팬들은 김 선생님의 노력을 통해 한국의 가수를 알게 됐고, 한국 가수를 통해 한국 음악을 알게 됐으며, 한국 음악을 통해 한국이라는 나라를 알게 됐으니까요.”

 “김 선생님의 부단한 노력으로 현재 중국의 허한주(哈韓族:한국 팬을 일컫는 말)은 갈수록 많아지고 있어요. 그들은 HOT와 NRG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그들의 의상과 화장 등 모든 것을 따라하고 있습니다.”

 이런 편지에 가슴이 뭉클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김 사장은 중국 현지에서 발행되는 대중음악 전문잡지인 ‘당대가단’을 몇 개 보여줬다. 그 잡지의 표지 뒷면에는 매주 홍콩 출신, 중국 본토 출신, 그리고 외국인 가수들에 대한 인기 순위가 소개되고 있는데 거기에 우리나라의 HOT·NRG·베이비복스·신화·안재욱·김희선 등이 꾸준하게 10위권에 머물고 있었다. 특히 놀라운 사실은 HOT가 2001년 5월 국내에서 해체됐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현지에서는 12월 말까지 1위를 놓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귀국 후 계속 들려오는 소식은 중국에 대한 나의 놀라움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 매일 오후 6시 FM 라디오 프로그램 중 마지막 10분은 ‘한국어 배우기 코너’로 구성돼 중국 전역 126개 도시에서 방송되고 있는가 하면, 중국 중앙인민방송국이 매달 발행하는 ‘Radio’라는 잡지에도 ‘한국어를 배운다’는 코너가 마련돼 주별 기초회화와 한글 획순 따라하기가 소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소개한 한 중국 소녀의 편지처럼 우리 스타를 사랑하게 된 팬은 단순히 공연장을 찾고, 그의 음반만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패션을 따라하고, 그가 새겨진 캐릭터상품을 구입하며, 한발 더 나아가 한국산 휴대폰을 갖고 싶어하고, 한글을 배우며, 마침내는 우리나라를 직접 찾아오고 싶어한다.

 한편 지난 봄 일본 출장 길에는 또 다른 충격에 휩싸였다. 호텔에 머물면서 NHK가 방영하는 다큐멘터리를 시청하게 됐는데 내용은 일본 축구 스타를 흠모하는 한국 소녀 얘기였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소녀는 그 스타를 만나기 위해 일본 프로팀이 전지훈련 차 들른 제주도까지 찾아갔다. 물론 청소년 시절의 열정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 싶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소녀는 그때부터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몇 년 후 마침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현재 일본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것이다.

 위의 두 사례는 훌륭한 가수 하나 혹은 스포츠 스타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그 스타를 통해 한 사람이 감동받는다면 그는 단순히 문화상품 하나만 소비하는 게 아니라 감동을 준 나라를 사랑하게 되고, 그 나라의 문화와 산업 모두를 아끼게 되는 것이다. 훌륭한 문화 소재 하나가 국가 전체의 이미지를 바꿀 뿐만 아니라 그 나라의 경제발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물론 일부 비판론자들의 주장처럼 소위 ‘한류’가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수 있다. 과거 우리를 그토록 열광시킨 홍콩영화가 지금은 맥없이 주춤거리는 것만 봐도 그렇다. 그러나 이런 비판은 결과만을 두고 ‘그것 보라’는 식의 무책임한 태도다. 이제 공은 우리에게 넘어왔다. 우리의 가수와 탤런트들이 중국 현지에 심어놓은 감동의 씨앗을 어떻게 싹 틔울지 함께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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