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그룹이 동부화재·동부생명·동부건설 등 주요 계열사를 총동원, 아남반도체 경영권 인수를 통한 메이저급 반도체 파운드리 업체로의 도약을 추진, 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동부그룹은 9일 “아남반도체 경영권 확보를 위한 지분인수를 위해 암코측과 막바지 협상을 진행중이며 조만간 계약이 체결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로선 최종 계약서에 사인한 것은 아니지만 동부측이 이례적으로 공식 발표한 것을 감안할 때 협상불발의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여하튼 동부그룹의 경쟁업체인 아남반도체 인수 추진으로 세계 파운드리 시장의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특히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합종연횡을 계속하고 있는 세계 비메모리 업계간의 짝짓기와 시장재편이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1+1=3?=동부의 아남반도체 인수는 최근 11개 금융기관으로부터 신디케이트론(협조융자) 방식으로 총 5100억원을 확보하며 대대적인 파운드리 설비증설을 추진하고 있는 동부전자와 아남을 연계, 파운드리사업에서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우선 동부그룹은 아남반도체 인수로 파운드리 생산능력면에서 세계적인 수준에 오르게 됐다. 현재 아남반도체의 파운드리 생산능력은 8인치 웨이퍼 기준으로 월 3만장선. 여기에 동부전자가 오는 10월께 월 1만장, 연말이나 내년초 월 2만장 목표로 설비투자를 진행하고 있어 전체 생산능력은 5만장까지 예약돼 있다.
매출면에서도 동부는 세계 10위권 밖에서 일약 ‘빅4’ 대열에 올라설 것이 확실시된다. 올해 동부전자의 매출목표는 5000만달러에 불과하지만 아남 예상 매출액 2억7000만달러가 보태질 경우 파운드리 매출 3억달러(3억2000만달러)대에 진입한다. IC인사이트에 따르면 지난해 주요 파운드리업체의 매출은 TSMC가 37억달러, UMC가 18억9000만달러, CSM이 4억6000만달러로 1∼3위권을 형성하고 있다.
동부그룹은 또 아남 인수로 지역별로 공정을 특화해 마케팅면에서도 큰 효과를 볼 전망이다. 이와 관련, 동부측은 “음성공장(동부)을 0.18∼0.19미크론대의 미세공정 쪽으로, 부천공장(아남)을 0.35∼0.18미크론급 대량 수요의 범용 제품으로 각각 특화한다면 다양한 수요에 탄력적인 대응이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케팅면에서도 적지 않은 상승효과가 기대된다. 현재 동부는 일본 도시바, 이스라엘 타워세미컨덕터 등과 전략적 제휴관계이며 아남은 TI 등 굴지의 반도체업체들과 협력체제를 구축한 상태다. 따라서 양사의 결합은 아남-동부-TI-도시바라는 강력한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밖에 양사가 보유하고 있는 지적재산권(IP)라이브러리 등 부수적인 시너지효과도 클 것으로 보인다.
◇떠오르는 파운드리시장=동부의 이번 아남 인수 추진은 파운드리 부문을 그룹차원에서 차세대 수종사업 중 하나로 육성키 위한 전략을 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동부그룹측은 오래전부터 반도체사업 진출을 추진하면서 매년 조단위의 투자가 반복되는 메모리부문 대신 비메모리, 이중 파운드리사업에 특히 관심을 보여왔다.
그만큼 현재 파운드리 시장 전망은 매우 밝은 편이다. 올초 IC인사이트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세계 파운드리 시장규모는 2002년 109억달러에서 2006년엔 305억달러로 연평균 29%대의 고성장이 예상된다.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올해 7.9% 수준에서 2006년엔 15%로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파운드리 시장의 장밋빛 전망을 가능케 하는 요인도 많다. 무엇보다 파운드리업체의 고객인 웨이퍼가공 시설이 없는 설계전문업체, 이른바 ‘팹리스’(fabless)들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현재 팹리스는 미국(300개), 대만(200개), 한국(100개) 등에 600개에 달한다. 연평균 수요도 20% 이상 증가하고 있다.
종합반도체업체(IDM)들이 아웃소싱을 확대하는 것도 시장전망을 밝게 해주는 부분이다. 이미 모토로라·도시바 등 굴지의 IDM들은 반도체 경기불안으로 전체 생산의 50% 이상을 파운드리업체를 통한 아웃소싱으로 충당하고 있다. 사이프레스·내셔널세미컨덕터 등은 전체 생산의 20∼25%를 아웃소싱으로 커버할 계획이다. IDM업계의 아웃소싱은 앞으로 연평균 40% 이상 증가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시장재편 가능한가=동부의 아남반도체 인수로 국내에서도 대형 파운드리 전문업체 탄생을 예고함에 따라 이제 파운드리, 나아가 비메모리시장 재편의 시기가 앞당겨질 것인가에 관심이 모아진다. 특히 동부그룹이 파운드리사업 육성을 천명, 하이닉스 파운드리 사업부문의 향후 거취도 더욱 주목받게 됐다.
메모리강국 한국의 대형 파운드리업체 출현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파운드리 초강국 대만과의 경쟁도 귀추가 주목된다. 물론 한국은 당장엔 대만의 적수가 못된다. 대만의 세계 양대 파운드리업체인 TSMC와 UMC는 이미 수조원의 매출을 올리며 세계시장의 60% 이상을 석권하고 있다. 최근엔 300㎜ 투자와 90나노미터(㎚) 미세공정 확보 등으로 시장 지배력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동부그룹의 아남반도체 인수는 경쟁관계에 있던 두 회사의 중복투자 방지와 다양한 분야의 협력체제 구축을 통한 시너지 창출로 기대 이상의 상승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파운드리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예상외로 클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동부와 아남은 경쟁업체임에도 생산기술이나 마케팅면에서 중복
보다는 보완되는 부분이 많아 의외로 선전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
★관련 그래프/도표 보기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동부전자·아남반도체 중장기 생산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