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관계관리(CRM) 솔루션이 IT산업의 총아로 떠올랐다. 국내 CRM시장은 지난해 1100억원을 돌파, 2000년보다 100% 이상 성장했고 올해 2000억원 문턱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오는 2004년을 기점으로 기업용 솔루션 수요의 구심점이었던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장이 성숙기에 도달, CRM에 왕관을 내줄 것으로 내다본다.
그래서인지 ‘너도 나도 CRM’이다. 소프트웨어 전문업체는 물론이고 콜센터, e메일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CRM에 관심을 두지 않은 기업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CRM 전문기업인 애드잇의 정해원 사장에게 “국내 CRM기업이 몇 개나 되느냐”고 물었더니 “수백개, 아니 알 수 없다”고 대답했다.
이 같은 업체 난립은 CRM이 비교적 기술장벽이 낮은 데다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는 솔루션이라는 데서 비롯된다. 또 CRM이 축적된 데이터(정보)를 보다 잘 활용해 수익창출로 연계하기 위한 노력에서 출발, 기업용 솔루션을 다루는 기업이라면 웬만큼의 상품을 개발할 수 있다는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연간 2000억원대 시장을 200개 이상의 기업이 나눠갖는 구조라면 그것도 오라클·SAS·SAP·NCR테라데이터 등 굵직한 외국계 IT기업들이 시장의 선두주자로 나선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심지어 다국적 네트워크장비 전문기업인 어바이어까지도 콜센터 기반의 CRM솔루션을 들고 한국시장 진군을 시작했다.
그렇다면 국내 CRM업체들에 시장기회가 남아 있는 것인가. 현재 국내 CRM기업들은 영업자동화(SFA), 지리정보(g)CRM과 같은 변종 제품을 개발해 제약·보험업종을 중심으로 틈새수요를 노리고 있다. 한국의 영업환경에 걸맞은 CRM을 내세워 고객사의 수익을 창출해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틈새수요는 어디까지나 틈새일 뿐이다. 국내 CRM기업들이 대형 통신회사나 은행에 도전장을 내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제약·보험업종의 틈새수요로만 몰리다보니 출혈경쟁을 피할 수 없는 구조를 형성해가고 있다. 외국계 IT기업들에 속을 내준 채 수박 겉만 핥는 국내 CRM기업들의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
<엔터프라이즈부·이은용기자 ey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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