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타워]붉은 악마의 교훈

 화려했던 2002 한일 월드컵의 막이 서서히 내려가고 있다.

 아쉽게도 오늘 저녁 한국대 터키의 3·4위전과 내일 있을 브라질과 독일의 결승전만 남았다. 이번 월드컵만큼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킨 적은 없었다. 아시아에서 처음 열리는 월드컵이자 사상 처음 한국과 일본 양국이 공동으로 개최한 대회였다. 대회수식어가 이채로웠던 만큼 이변도 속출했으며 그 이변의 한가운데는 공동개최국의 하나인 한국이 서 있었다. 프랑스를 비롯해 유력한 우승후보들이 줄줄이 탈락하고 한국이 아시아 국가로는 처음으로 4강 신화를 일궈내며 아시아의 자존심을 지켰다.

 무엇보다 열정적이고 질서정연한 붉은 악마와 길거리 응원단은 이번 월드컵의 가장 큰 이변이자 스타였다. 군중이 모이면 데모로 이어지고 최루탄으로 얼룩진 과거의 모습만 기억하던 외국인들에게는 평화와 화합의 상징이 된 붉은 악마와 길거리응원단이 경이의 대상이 되었다. 우리 스스로도 평화와 화합을 실현해내는 잠재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정도다.

 그러나 이제는 월드컵의 감동과 열정, 붉은 악마의 자긍심에만 취해 있을 때가 아니다. 세계 경제가 심상치 않다. 그 뜨거운 감동의 물결 속에서도 엔론과 월드콤의 회계조작 파문으로 세계 금융시장이 흔들거리고 주가는 곤두박질치고 있다. 7월부터는 제조물책임법이 시행돼 업계를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차분히 우리를 되돌아보고 월드컵에서 보여준 우리 국민의 강한 응집력을 경제회복을 위해 다시 부활시켜야 할 때다.

 붉은 악마와 길거리응원단이 보여준 질서정연한 열정과 화합은 과연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무엇보다 히딩크의 리더십과 한국팀의 선전, 그리고 붉은 악마의 모범적인 응원문화가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된다. 폴란드전부터 시작된 길거리응원은 한국팀의 선전이 거듭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준결승전에서는 700만명이라는 천문학적인 인구가 길거리응원에 나섰다. 붉은 악마의 ‘대∼한민국’ ‘오 필승 코리아’는 온국민의 구호로 승화되었다. 응원이 끝난 뒤 붉은 악마들이 쓰레기를 치우는 모습은 길거리응원단의 본보기가 되었다.

 이번 월드컵은 장차 한국 경제를 짊어지고 갈 IT한국의 면모를 세계 만방에 떨치는 계기로 삼자는 뜻에서 IT월드컵을 테마로 삼았다. 개막전에서 시연된 3세대 이동전화서비스를 비롯해 한국은 이번 월드컵 기간에 IT의 우수성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붉은 악마와 길거리응원단까지도 인터넷이나 이동전화 등 한국의 우수한 IT 인프라를 십분활용해 응원의 열기를 이어갈 수 있었다.

 이제 한국팀의 선전을 21세기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진 IT업계가 이어받을 때다.

 IT업계가 선전해야 붉은 악마의 혼이 되살아날 수 있고 온국민의 힘을 결집할 수 있다. 한국의 IT업계는 기술 면에서는 세계적으로도 손색이 없지만 불굴의 투지와 상대방을 압박해들어가는 질긴 조직력과 협공이 부족하다. 히딩크의 리더십과 한국 선수들의 투지·조직력·협동심을 다시 한번 실현해 월드컵 4강 신화를 IT 4강 신화로 이어가야 한다.

  <정보가전부 유성호 차장 shyu@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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