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기식` 평가로 단순관리자만 양산
장롱 속 운전면허와 다를 바 없는 페이퍼 정보기술(IT) 자격증이 넘쳐나고 있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썬마이크로시스템즈·오라클·시스코시스템즈 등 4대 국제공인 IT전문가인증(CP:Certified Professional)을 획득하기 위한 암기식 덤프(기출·예상문제 공부)로 말미암아 실무전문가보다는 단순관리자만 양산되는 추세다.
이에 따라 정보시스템에서 발생하는 각종 장애에 대한 ‘답’을 알고 있을지언정 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능력을 지닌 CP 보유자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93년 국내에 도입되기 시작해 95년부터 활성화된 다국적 IT기업의 CP제도는 국내 IT 연구개발 및 컨설팅 인력채용의 척도로 인식되면서 매년 그 수가 급증, 현재 각 교육센터에서 교육받은 40여만명의 수료생 중 60∼70%가 CP자격증을 획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CP취득자의 실무능력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실제 시스코시스템즈의 네트워킹 전문가 인증(CCNA) 합격률이 80%에 육박하지만 이 중에서 현장에서 시스템장애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CCNA 최고단계인 CCIE의 합격률은 5%로 연간 28명 정도만 배출되고 있다. MS, 오라클, 썬 CP의 경우에도 시스템관리·기술지원·문제해결을 스스로 수행하는 단계의 최고 전문가 자격증 획득비율이 5%를 밑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페이퍼 CP 양산구조는 △정보시스템 발주자(기업체)들이 IT기업들의 입찰참여 조건으로 CP 취득자의 시스템 구축프로젝트 지원을 요구하고 △교육주체인 다국적 IT기업이 최고 전문가가 대량으로 배출될 경우 고부가가치 사업인 시스템 사후관리사업분야에서의 매출하락을 우려하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IT업계의 한 CEO는 “다국적 기업의 CP가 시험과 이론 위주의 평가체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자격증 소지자라고 할지라도 실무에 곧바로 투입하기 힘든 실정”이라며 “CP를 연구인력 채용의 기본요건으로 삼고는 있지만 절대요건은 아니다”고 말했다.
따라서 현재의 CP제도는 각 분야의 최고전문가를 양성한다는 기본 취지와는 달리 연간 40억∼150억원대의 매출과 함께 매년 4000∼1만명에 달하는 제품 전도사(CP취득자)를 배출함으로써 이들 CP센터를 운영하는 다국적 IT기업들의 배만 불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다국적 IT기업의 CP프로그램 담당자는 “페이퍼 CP의 문제점을 알고 있지만 CP 시험문제는 수년간 축적된 시스템 운영경험을 기반으로 삼아 마련한 최적의 능력 테스트”라며 “따라서 페이퍼 CP에 대한 논란은 교육과정이나 제도의 문제라기보다는 출제문제를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고 자격증 획득을 위해 덤프에만 매달리는 일부 교육생들에게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지난 95년 국내에 첫선을 보인 MS 전문가 인증(MCP)은 최근까지 2만2000여명, MS 시스템 및 네트워크 전문가 인증(MCSE)이 1만여명을 돌파했으며 오라클도 지난 93년부터 연평균 1만여명의 데이터베이스 전문가 인증(OCP) 취득자를 배출했다.
또 썬마이크로시스템즈가 지난 95년부터 매주 130여명의 자바·솔라리스·스토리지·아이플래닛 교육수료자 중에서 70%를 CP(SCJP) 취득자로 만들어냈으며 시스코시스템즈도 매년 4000여명에 달하는 네트워킹 아카데미 수료자의 70∼80%가 전문가 인증(CCNA)을 획득한다고 밝혔다.
<이은용기자 ey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