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드로공항에 도착하자 가늘고 축축한 빗줄기가 얼굴을 적신다. 이곳 영국에선 워낙 자주 비가 내리다 보니 우산을 쓰지 않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곧바로 공항버스를 타고 영국 나노기술연구의 중심지인 케임브리지로 향했다.
케임브리지는 캠강을 중심으로 고풍스러운 대학건물이 모여 도시 자체가 하나의 대학촌을 구성하고 있다. 옥스퍼드와 함께 영국을 대표하는 교육기관으로 전통을 자랑하는 케임브리지 대학은 특히 과학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곳이다.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튼과 진화론의 다윈, 전자를 처음 발견한 러더포드, 스티븐 호킹까지 학창시절에 배웠던 그 많은 현대과학이론과 지식체계들이 대부분 케임브리지 출신 과학자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고풍스러운 케임브리지의 과학연구실을 방문하면서 왠지 주눅이 드는 느낌을 피할 수 없었다. 우선 케임브리지 대학의 마크 웰런드 교수를 방문했다.
그는 영국 나노연구의 핵심축인 케임브리지의 나노연구그룹을 이끄는 총책임을 맡고 있다. 마크 웰런드 교수에겐 기술적인 방향보다 나노연구에 대한 포괄적인 질문을 많이 던졌다.
―현재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에 영국을 대표하는 나노연구센터가 있는데 두 센터의 차이점은.
▲두 대학이 추구하는 나노연구분야가 다릅니다. 옥스퍼드는 주로 바이올로지 쪽이고 이곳은 물리·화학·공학분야가 주를 이룹니다. 따라서 케임브리지가 새로운 나노디바이스 개발에 가까운 셈입니다. 우리는 위험도는 높지만 파급효과가 큰 나노분야를 집중연구할 계획입니다. 하지만 나노로봇을 혈관에 주입해 환부를 찾고 수술도 하는 그런 황당무계한 연구는 아닙니다.
―나노연구에 있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어려움은 없는지.
▲케임브리지는 이미 나노기술 연구에 필요한 인프라가 충분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어요. 본 센터에서 개발한 기초기술로 향후 10년 안에 2억달러 정도의 나노전문회사를 설립할 예정입니다.
―향후 나노기술이 산업에 미칠 영향을 예측한다면.
▲나노전자소자의 경우 스핀과 전자소자가 결합한 스핀트로닉스 분야와 분자전자소자 분야가 5년 이후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많이 연구되고 있는 단전자 트랜지스터는 실용화가 가능하지 않을 것 같고 나노바이오기술 분야에는 많은 영향을 줄 겁니다.
그러나 이미 나노기술은 광범위하게 그리고 우리가 예상치 못한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어요. 한 예로 탄소나노튜브는 일본에서 이미 한달에 10톤씩 생산하며 또 여성용 화장품에도 나노기술은 활발히 응용되고 있습니다. 나노관련 특허를 화장품 회사에서 가졌다면 다소 의아스럽겠지만 실제로 유명화장품회사인 로레알은 NEC·히타치 다음으로 세계 3번째로 나노특허를 많이 출원한 회사입니다. 흔히 사용하는 주름방지용 화장품도 나노분말기술과 광학기술을 절묘하게 이용한 것이지요.(웃음)
―한국과 영국의 나노기술연구에 접근방식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영국은 한국과 달리 전자산업이 없기 때문에 나노전자소자보다는 나노바이오기술에 많은 관심이 많습니다. 그리고 한국기업들은 단기적인 수익성을 중시하는 것 같은데 나노연구에선 좀더 느긋해질 필요가 있어요.
―어떤 사람은 나노기술의 궁극적인 목표는 물을 우유로 만드는 식으로 필요한 모든 물질을 손쉽게 분자단위에서 복제해서 만드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같은 일이 언제쯤 기술적으로 가능할까요.
▲나노기술을 이용한 물질복사기는 공상소설에 불과합니다. 절대 가능하지도 않고, 뭐랄까 비도덕적인 일입니다. 인간이 필요한 재화를 뭐든지 손쉽게 복사한다면 그것이 천국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아직 그런 형태의 기술을 가질 준비가 안돼 있어요. 나노기술연구에서 그런 형태의 거품은 일찍부터 걷어내야 합니다.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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