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하루종일 요환이 형이랑 같이 있었어요. 서로 눈치보느라 연습도 못했는데, 내일 경기가 걱정되요.”
한 프로게이머의 고백이다. 이처럼 프로게이머들의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어디서 들을 수 있을까.
무섭도록 빠른 마우스 놀림, 차가운 인상, 긴장을 늦추지 않는 우승 소감 인터뷰 등이 프로게이머의 전부는 아니다. 회원수 1만명 이상을 자랑하는 프로게이머들의 팬클럽 카페에서는 경기장에서 볼 수 없는 프로게이머들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프로게이머 팬클럽은 프로게이머들이 하나둘씩 뜨면서 2000년 하반기에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났다. 임요환 팬클럽도 마찬가지다. 임요환이 화려한 전술로 명성을 날리기 시작하자 100명도 안되던 회원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 현재 회원수가 12만명에 달한다. 2개월에 3만명씩 늘었다는 게 운영진의 말이다.
‘성춘 오빠’의 카리스마 넘치는 대전을 보고 카페를 개설했다는 임성춘 팬클럽 카페의 운영진 문진선 양. 포털 사이트 ‘다음’에서 사람찾기를 통해 임성춘의 e메일 주소를 알아내고 자신이 만든 팬클럽 카페에 가입도 시켰을 때의 감격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시작은 미비했지만 이 카페 회원수도 1만6000여명에 달한다.
홍진호, 강도경 등 스타 게이머들은 대개 1만∼2만여명의 팬클럽 군단을 가지고 있다. 프로게이머들도 자신의 카페 회원수를 유심히 살펴본다. 게이머들이 카페에 직접 남긴 말 중에는 ‘회원 몇명 돌파에 감사드린다’는 말이 자주 눈에 띈다.
프로게이머 팬들은 저마다 좋아하는 스타일이 있다. 임요환 팬클럽에는 화려한 컨트롤과 특이한 발상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고 수려한 외모 때문에 여자 회원들의 활동이 왕성하다. 박정석 팬클럽에는 정석을 밟아가는 게임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고 공격적인 전술을 펼치는 김정민 팬클럽과 물량 공격을 즐기는 이윤열 팬클럽에는 힘싸움을 좋아하는 남자팬들이 많다. 99년 코리안 오픈 대회부터 활동했던 최인규 팬클럽에는 ‘노땅’ 팬들이 많다보니 평균 연령이 조금 높다.
좋아하는 프로게이머는 달라도 어느 팬이나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프로게이머들의 인간적인 면모가 좋다”는 것. 엄지발가락만 유달리 큰 프로게이머, 주종목이 아닌 테란으로 경기를 했다가 배틀넷에서 내리 패한 프로게이머, 노래방에서 마이크가 아닌 ‘마우스’ 달라고 했다는 프로게이머 등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팬클럽 회원들만이 누릴 수 있는 작은 특권이다.
프로게이머 팬클럽과 연예인 팬클럽은 어떻게 다를까.
프로게이머 팬클럽 회원들은 사이버 공간을 통해 스타를 자주 접할 수 있다는 것이 우선 가수나 탤런트 등의 연예인 팬클럽과 차별되는 점이라고 말한다. 게이머나 팬들 모두 인터넷에 익숙하기 때문에 한달에 한번 정도 온라인에서 정팅도 가지고 같이 게임도 즐긴다.
또 팬픽(스타를 소재로 팬들이 쓰는 소설)은 여느 팬클럽에서도 유행하고 있지만 프로게이머 팬클럽에는 게임을 소재로 한 소설을 볼 수 있다는 점이 이채롭다. ‘마린 병사의 일기’ ’퇴저록(저그를 물리치는 이야기)’ ’미네랄 광산에서’ 등은 모두 스타크래프트를 배경으로 팬들이 엮어가는 소설 제목이다.
프로게이머 팬클럽 회원들의 뒷풀이마다 게임 대전이 빠질 수 없는 코스라는 점도 연예인 팬클럽과 다른 점이다. 1, 2차 저녁식사와 노래방 순례가 끝나면 어김없이 PC방으로 몰려가서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들을 겨루는 재미는 또다른 카타르시스를 맛보게 한다. 팬클럽 회원들끼리 길드를 결성하는 것은 기본이다.
프로게이머들에게 팬카페가 있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의 생일에 축하 메세지가 너무 많이 올라와서 눈빠지게 확인하고 있다는 행복의 비명을 지르기도 하고, 경기장에 응원 온 팬들에게 감사의 메시지도 전한다. 또 팬카페는 프로게이머들에게 주요한 ‘싱크탱크’의 역할도 한다. 경기가 끝나고 나면 게시판에는 격려의 메시지뿐만 아니라 ‘연습을 더하라’ ’전략구사가 잘못됐다’는 충고와 조언을 아끼지 않는 사람도 많고 게이머들의 전략과 전술도 자세히 분석해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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