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OA업계의 거인

 ◆금기현 논설위원 khkum@etnews.co.kr

 

 신도리코 창업주인 우상기 회장이 8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인명은 재천이라지만 ‘사무자동화(OA)업계의 전설’로 통하는 우 회장의 서거는 우리 업계에 진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는 개성 출신 상인이다. 요즘 TV 드라마로 인기를 끄는 송상(松商)의 후예라고 할 수 있다. 우 회장은 OA기기 생산과 판매가 어렵던 시기에 맨주먹으로 신도리코를 일궈온 주역이다.

 그는 1939년 개성공립상업학교를 졸업한 뒤 ‘신도교역’을 설립하고 복사기사업을 처음으로 시작했다. 70년에는 그 어려운 일본 리코사와 기술 제휴를 맺고 회사명을 ‘신도리코’로 바꾸면서 발군의 사업 능력을 발휘했다.

 그는 38년 전에 국내에 처음으로 복사기를 선보인 것을 계기로 계속해서 팩시밀리·프린터 등 각종 OA기기들을 내놓고 사무기기 종합업체로서 명성을 높여 갔다.

 당시 비슷한 사업으로 선두경쟁을 벌여오던 많은 업체들이 문을 닫거나 업종을 전환했지만 그는 외길만 달렸다. 신도리코의 성공에는 그의 남다른 경영철학이 내재돼 있다.

 우선 한 우물만 파며 미래를 준비하는 경영전략을 구사해 왔다는 점이다. 당시만 해도 많은 경쟁기업이 컴퓨터·네트워크·LAN 등 IT 분야로 사업을 다양화했지만 우 회장은 오로지 자체기술로 경험이 풍부한 사업 분야에 경영력을 집중했다. 자신있는 사업에서 승산을 가려 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다음은 ‘무차입 경영’과 ‘정도경영’이다. 우 회장은 평소 “남의 돈을 빌려 사업을 키우겠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남의 돈을 빌려 사업 키워선 내실있는 경영이 어려울 뿐 아니라 사업 확대가 곤란하다는 것이다. 우 회장은 현금 2000억원으로 모든 사업을 추진했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다. ‘3·3·3·1’이라는 경영캠페인을 도입, 기업이 한해 동안 올린 이윤 가운데 주주·사원·사내유보·재투자를 위해 일정 비율씩 분배하고 있다.

 특히 노사협의회를 통해 원만한 경영을 추진함으로써 진정한 기업인의 길이 무엇인지를 보여줬다. 지난 97년 IMF 위기 때에도 인원감축을 하지 않았고 단 한번의 노사분규가 발생하지 않았다.

 현재 신도리코의 경영지표는 양호하다. 지난해 매출이 3000억원을 넘었고 부채비율은 30%대다. 금융비용 부담률도 1%대에 불과하고 출액대비 당기순이익도 10%대가 넘는다. 올해는 그 이상이 될 것이란 게 업계의 관측이다. 지난해 미국 프린터시장의 2위 업체인 레막스사와 4억달러 규모의 수출계약을 맺은 데 이어 지난 1월에는 디지털복사기 1위 업체인 제록스 영국 현지법인과도 손을 잡았기 때문이다.

 또 그동안 기술적 우수성을 인정받아 2년 후부터는 일본 리코사에서 디지털복사기를 개발, 생산하게 될 것이란 전망이다.

 물론 이러한 성장이 지속될지는 아직 예단하기 이르다. 후임 최고 경영자가 어떤 경영방식으로 회사를 운영할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 회장이 그동안 아들인 우석형 사장에게 경영자문을 아끼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이후 신도리코의 경영이념이나 방식이 크게 달라 질 것이라고 보는 이는 거의 없다. 우 회장의 독특한 경영이념이 많은 기업인들한테 교훈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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