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P·컴팩 합병]국내시장 부문별 전망

‘합병HP·한국IBM·한국썬마이크로시스템즈’

 국내 IT시장이 바야흐로 삼국시대 개막을 앞두고 있다.

 두 회사 모두 PC에서 서버·스토리지·소프트웨어·IT·컨설팅에 이르는 ‘토털 IT솔루션’ 사업자로 전방위적 IT사업을 추구해왔기 때문에 양사의 합병은 양적인 규모 외에도 사업군별 시너지 효과가 충분하다는 의미고, 이는 국내 IT시장의 엄청난 지각변동을 예견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무엇보다 한국HP-컴팩코리아와 한국IBM간 선두다툼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그 뒤를 한국썬마이크로시스템즈가 뒤쫓는 ‘2강 1중’ 체제가 형성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합병 조직은 매출규모만으로도 1조9000억원에 이르러 한국IBM의 7000억원(LGIBM 포함 1조2000억원 가량) 매출을 훨씬 상회한다. 이에 비해 인력은 총 1550여명으로 한국IBM의 2200명에 못미치는 좀더 가벼운 조직으로 경쟁하게 됐다.

 한국HP가 그동안 한국IBM을 따라잡기 위해 전분야에 걸쳐 사업강화 노력을 진행해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합병조직과 한국IBM의 1위 자리를 둘러싼 경쟁은 보다 치열하게 벌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일부에서는 PDA를 비롯해 PC·노트북PC·데스크톱PC·PC서버·유닉스 등 프린터 사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업부문이 겹치는 데다 한국HP의 1위 품목이 적다는 측면에서 조직통합 후 사업 구조조정까지 좀더 지켜봐야 한다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이 틈을 타 경쟁사들의 반사이익도 점치고 있다.

  

 ◇중대형시스템사업=한국HP와 컴팩코리아는 모두 워크스테이션, 인텔기반(IA)서버, 유닉스서버와 스토리지 분야에서 활발한 영업을 펼쳐왔기 때문에 이로 인한 시너지효과는 막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한국HP는 슈퍼돔을 앞세운 고성능 유닉스서버에서, 컴팩코리아는 프로라이언트시리즈로 불리는 IA서버에서 각각 선두자리를 지켜왔기 때문에 두 회사의 합병사는 서버제품 전라인에서 강한 경쟁력을 지니게 된다. 표참조

 무엇보다 유닉스서버 시장의 판도 변화가 불가피할 듯하다. IDC가 조사한 지난해 시장규모를 기준으로 할 때 양사의 매출을 합치면 총 161.8M달러로 한국썬마이크로시스템즈(152.4M달러)를 제치고 국내 유닉스 시장의 최강자가 된다. 한국썬 외에도 한국IBM은 지난해 98.7M달러의 매출을 기록, 통합조직과 한국썬이 수성하고 있는 유닉스 시장을 공략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PC서버 역시 합병조직의 위력이 그대로 나타난다. 지난해 8404대를 판매, 1위를 차지한 컴팩 실적에 4위에 머물러 있는 한국HP의 실적을 합하면 총 1만1314대. 2위를 점하고 있는 한국IBM(4104대)을 무려 3배 가까운 차이로 따돌리게 된 셈이다. 특히 HP 측에서 인텔과 공조체제를 강화, IA의 64비트 서버 사업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어 한국HP의 국내 PC서버 시장 주도는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스토리지부문에서는 두 회사 모두 한국EMC와 한국IBM에 밀려 있지만 이번 합병을 통해 이들에 맞설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될 것이란 전망이다. 상대적으로 컴팩코리아의 스토리지제품이 약세를 보이고 있지만 두 회사가 합칠 경우 서버판매를 동반한 스토리지영업에 더 힘이 붙게 되기 때문이다.

 

 ◇PDA 및 노트북PC=지난해 4분기 HP와 컴팩의 PC수량을 합쳤을 경우에 산술적으로 데스크톱PC는 3만4000대, 노트북PC는 1만7000대 수준이다. 노트북PC는 2위에 해당하며 데스크톱PC는 7위 수준이다.

 IDC코리아의 오현녕 연구원은 “데스크톱PC 판매량이 분기당 3만대를 넘어서면 규모의 경제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다”며 “물류비 절감, 구매비용 감소 등 분명히 시너지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트북PC는 이미 컴팩이 길을 닦아놓은 데 이어 양사의 합병이 데스크톱PC에서도 시너지를 발휘, 국내시장 진입에 가속이 붙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그동안 해외 업체들의 국내시장 진입을 가로막았던 유통망 문제가 홈쇼핑·양판점·온라인쇼핑몰 등 신유통 채널의 부상으로 보완되는 추세라는 점도 새로운 합병회사에는 기회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HP의 디지털카메라·프린터·스캐너 등 컨슈머 제품과의 연계를 통한 PC판매 확대부문도 이번 합병으로 얻을 수 있는 전과물로 받아들여진다.

 PDA의 경우 조나다로 대표되는 HP의 제품군과 국내 2위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했던 아이팩이 합쳐지면 라인업상으로는 더욱 풍부해진다. 특히 HP가 최근 출시한 조나다 560시리즈와 컴팩의 3800시리즈는 각자 특성이 뚜렷해 시너지효과가 예상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런 외견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합병의 파급효과를 미리 점쳐볼 수 있는 관전 포인트는 PC사업을 포함한 컨슈머사업부문을 어떤 채널·마케팅 정책으로 진행하느냐를 지켜보면 된다. 실제로 PC업계에서는 그동안 두 업체의 행보를 비교, ‘컴팩은 두렵다, 그러나 HP는 해볼 만하다’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로컬화와 시장 점유율을 중요시하는 컴팩전략의 특성, 수익성과 본사지침을 중시하는 HP전략의 특성을 감안하면 어느 회사 정책을 따라가느냐에 따라 국내 PC시장에서의 파급효과 또한 커다란 차이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IT컨설팅사업=양사의 합병 시너지효과 중 하나가 IT컨설팅 분야라는 점은 익히 알려진 사실. 이미 칼리피오리나 회장이 취임하면서 가장 먼저 단행한 것이 각 지사의 컨설팅 조직을 지사장 직속 체제로 바꿨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컨설팅 조직에서 기대되는 시너지효과 중 하나는 한국HP가 취약한 제조부문의 관리 컨설턴트와 엔지니어를 컴팩코리아가 갖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컴팩의 이런 노하우는 디지털 조직을 인수한 결과다.

 한국HP 컨설팅사업본부 관계자는 “컴팩 컨설팅 조직의 프로페셔널조직(PO)과 특히 제조부문 컨설턴트 인력의 흡수는 HP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현재 한국HP의 컨설팅 인력은 200여명으로 컴팩코리아의 350여명의 인력과 합칠 경우 550여명에 이르게 된다. 합병조직이 컨설팅 조직을 정비한 후 한국IBM과 경쟁을 본격 벌이게 될 경우 이는 IT컨설팅 및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는 국내 SI사업자에도 영향을 미치는 만큼 국내 IT서비스 시장의 치열한 접전도 예상된다.

 이에 대해 한국IBM의 반응은 두고봐야 한다는 분위기다. 한국IBM 신재철 사장은 “전산업부문에서 경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두 기업이 합병된다 해도 시장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본다”며 “특히 우리는 IT컨설팅을 중심으로 한 서비스 사업을 강화하고 매출이나 이익 비중이 높아지고 있어 합병조직이 우리를 따라오기는 힘들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 법인의 표정 및 앞으로의 과제

 주총 결과를 접하는 양사의 공식 입장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한국HP 측은 20일 오전까지 “본사에서 아무런 공식 입장을 전달받은 게 없다”며 여전히 합병 결과에 대해 ‘노코멘트’였다. 반면 컴팩코리아는 “외신을 통해 알려진 HP의 공식 입장, 즉 ‘합병을 추진하는 데 충분한 지지표를 획득했다고 생각한다’는 발표를 기쁘게 생각한다는 것이 본사로부터 전달받았다”며 “우리 역시 합병의 시너지를 기대하기 때문에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컴팩코리아는 “직원 중 30% 정도가 구 디지털에서 근무한 이들로 ‘피인수 유경험자’이기 때문에 별 동요가 없다”고 전했다.

 그렇지만 양측 사령탑의 입장은 다르다.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조직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주총 전날인 어제부터 오늘까지 두 조직의 대표 모두 일상적인 조직 운영에 힘을 쏟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HP 주총 이후에도 주총 결과가 정확하게 집계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두 대표 모두 말을 아끼는 모습이다. 특히 한국HP 최준근 사장은 20일 합병여부와 소감을 묻는 전화인터뷰에서 “공식적으로 집계가 안됐고 본사로부터 명확한 지침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할 말이 없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했다.

 최 사장은 “오늘 아침에도 고객지원본부장과 회의를 열어 마케팅을 논의했다”며 “합병에 관한 지침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일상적인 마케팅 활동에 전념할 것”이라고 밝혔다.

 컴팩 강성욱 사장 역시 주총 전날인 어제도 장시간 임원회의를 소집, 1분기 결산과 2분기 사업방향을 논의했다. 강 사장은 합병에 대한 전략회의를 했느냐는 질문에 “만일의 경우 합병이 안되면 다시 시장에서 경쟁자로 만나야하니 손놓고 있을 순 없지 않느냐”는 우스갯소리를 했다.

 강 사장은 “합병으로 인한 시너지를 기대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도 주총 결과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오길 기대한다”며 직위에 관계 없이 합병조직에서 일을 할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 없다”는 말로 답했다. 또 본사 차원의 1만5000명 감원 방침에 따라 돌고 있는 국내 조직 3분의 1 구조조정설에 대해 “인력축소가 합병 목적은 아니다”며 “중복사업과 관리조직의 효율성을 고려한 구조정은 불가피하겠지만 경쟁하게 될 한국IBM 조직과 비교해도 그렇게 무리해서 구조조정을 할 필요는 없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최종결과가 4주 후에나 나온다는 점에서 이후부터는 조직정비가 최고의 이슈가 될 전망이다. 우선 통합조직의 지사장 선임건. 컴팩코리아 강성욱 사장은 “국내 상황이 워낙 급격하고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지사장 선임은 타지사와 비교해 빨리 진행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두번째는 ‘스피드’. 컴팩의 한 관계자는 “컴팩이 디지털을 합병할 당시 본사 방침이 확정된 후 국내지사 통합은 단 2주 만에 끝났다”며 “이번에도 이런 신속한 조직정비가 최우선 과제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HP의 한 관계자는 “합병이 공식 발표난 지난해 9월 이후 특별히 본사로부터 주문받은 리포터가 없었으나 주총을 앞둔 얼마전부터 사업군별 시장상황이나 6개월 후의 전망에 대한 보고서 요청이 부쩍 늘어 정신이 없었다”며 “한국컴팩코리아 조직에 대해 공식적으로 검토한 바 없지만 사업군별로는 아마 파악하고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한국HP와 컴팩코리아의 기업 문화가 너무나 이질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조직통합의 속도와 그 과정에서 불협화음을 최소화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신혜선기자 shinhs@etnews.co.kr

  유형준기자 hjyo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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