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 속담이 있다.
비록 짐승일지라도 생명을 지속하는데 가장 필수적인 ‘먹을 권리’만큼은 보장해 주는 것이 주인된 도리라는 뜻이다.
지금의 로봇을 생명체에 비유한다면 전기를 먹고 사는 동물, 더 세밀히 분류하면 집에서 키우는 가축에 해당한다.
주인이 밥그릇을 들고 오길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로봇도 먹이(전기공급)를 사람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신세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이 로봇을 통제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전원을 끊어버리는 것이다.
명령을 안듣는 건방진 로봇이 있으면 조용히 전기코드를 뽑아 내면 그만이다.
주인이 로봇 가동에 필요한 유지비(전기료, 배터리값)를 지불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면 아무리 똑똑하고 힘센 로봇도 고철덩어리로 전락한다.
로봇이 혼자서 에너지원을 확보하지 못하고 인간이 전기요금을 지불하는 주체로 남아있는 한 로봇의 반란은 꿈에 불과하다.
그런데 최근 이같은 상식을 뒤엎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람의 도움없이 혼자서 먹이를 찾아 섭취하는 로봇이 등장한 것이다.
최근 영국의 웨스트 잉글랜드대학은 농작물을 갉아먹는 민달팽이를 퇴치하는 슬러그봇(SlugBot)을 선보였다. 이 로봇은 밤마다 농산물 밭을 누비며 시간당 무려 100마리가 넘는 민달팽이를 로봇팔로 잡아서 자체 발효탱크(위장)에 넣는다. 아침이 밝으면 로봇은 작동을 멈추고 밤새 포식한 달팽이더미(음식)에서 바이오가스를 추출해 전기동력원으로 전환한다.
달팽이전기로 배터리를 가득 채운 로봇은 날이 저물자 다시 밭에 들어가 사냥감을 찾는다.
역사상 최초로 고기를 먹는 육식로봇, 인간의 손을 떠나 밝은 햇살 아래서 자급자족하는 야생로봇이 나온 것이다.
지난 수억년간 모든 생명체가 자연에서 먹이를 구해왔듯 로봇도 사람이 통제하는 전기단자를 벗어나 점차 독자적인 에너지 공급원을 확보하는 것이 불가피한 추세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혼자 먹이를 구하는 로봇은 친환경적이고 유지비가 거의 안든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향후 단백질, 탄수화물, 셀룰로오스 등 유기물을 전기로 바꾸는 연료전지가 개발될 경우 논두렁에서 잡초만 골라먹는 초식로봇이나 해충을 먹어치우는 육식성 로봇이 농사현장에 대거 보급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처럼 홀로서기에 성공한 로봇이 나올 경우 언젠가 인간은 생태계 안에서 로봇에게 적당한 먹거리를 정해주고 그들의 ‘먹을 권리’를 인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갈수록 머리가 굵어지는 로봇들이 자신의 밥줄(전기코드)을 언제까지나 인간의 손에 맡기려 하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bail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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