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이슈 IMT2000 실종>(7·끝)에필로그

 IT산업 육성의 일등공신이 체신부(정보통신부의 전신)라는 사실에 이론을 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국내 IT산업이 세계 최고의 반열에 오르게 된 데 있어 체신부의 비전과 노력, 도전정신은 그 첫째로 꼽기에 충분하다.

 어떤 원로는 체신부야말로 한국 최초의, 그것도 세계 최고의 대박을 터뜨린 벤처라고 평가한다. 중화학공업 육성이 정부 산업정책의 주를 이루던 80년대 초, 체신부는 통신현대화의 이정표로 평가되는 국산전전자교환기(TDX)의 개발에 나서게 된다.

 당시 산업전자 육성의 키는 통신부문의 기술자립화였으나 우리의 기술수준은 사실상 불모지였다. TDX 자체개발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었던 게 당시 상황이었다. 체신부는 그때로서는 천문학적인 돈인 240억원을 투자해 우여곡절 끝에 우리 기술로 TDX의 개발에 성공하고 한국통신으로 하여금 무조건적으로 이를 수용하게끔 만든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는 전화망의 현대화가 완성되며 국내기업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첨단기술을 축적하게 된다.

 당시 TDX 개발 및 상용화 주역인 오명, 최순달, 경상현, 윤동윤, 서정욱, 양승택씨 등은 그 성과로 대한민국 장관직에 오르게 된다.

 여하튼 TDX 개발의 성공은 곧바로 국가기간전산망용 주전산기 개발, 4MD램 개발이란 굵직한 프로젝트로 이어졌으며 그 역시 성공을 거두었다.

 TDX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10년 후인 92년 CDMA 신화로 상징되는 국산 디지털 이동통신시스템 개발프로젝트는 체신부의 역작이었다. TDX와 달리 CDMA프로젝트의 추진은 TDX 상용화에 자신감을 얻은 엔지니어, 통신장비업체, 체신관료들의 작품이었다.

 국산 이동통신장비를 90년대 중반의 수출주력상품으로 육성하겠다는 체신부의 방침에 연구개발자들은 힘을 얻었고 결국 퀄컴의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이제 개발에 착수해야 하는 CDMA를 표준으로 채택하는 모험을 감행한다.

 TDX에 이어 CDMA에서도 한국통신(SK텔레콤의 전신인 KMT의 대주주)은 리스크 부담을 최소화하자는 차원에서 CDMA가 아닌, 미국에서 개발완료한 TDMA 채택을 내세웠다.

 모험적인 선택을 한 체신부의 CDMA기술은 KMT, 신세기통신, PCS 3사의 상용화를 바탕으로 내수시장에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2001년 수출 100억달러의 이동통신산업이라는 금자탑을 내놓는다.

 국내 통신산업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킨 모험찬 정책결정은 체신부의 후신인 정보통신부 시절에도 있었다. 94년말 체신부에서 개명한 정보통신부는 99년 남궁석 장관 취임과 함께 초고속인터넷을 축으로 한 통신망 현대화에 대한 구상을 그리게 된다.

 다행히 이용태 삼보컴퓨터 회장이 이끄는 두루넷의 케이블TV망을 이용한 초고속인터넷(98년 7월 상용화)과 제2시내전화사업자로 허가받은 신윤식 사장의 하나로통신(99년 4월)이 ADSL을 상용화하면서 초고속인터넷 시대는 도래하는 듯했다.

 그러나 정작 시내전화가입자망을 독점한 한국통신은 ADSL 등 초고속인터넷을 무모한 투자라며 냉소적 반응을 나타냈고 중급속도인 ISDN마케팅에 전력을 기울였다.

 결국 정통부의 회유반 협박반 정책에 밀려 한국통신은 99년 가을께 ISDN을 접고 ADSL을 상용화했으며 그로부터 2년 뒤, 한국은 전국 가구의 60% 이상(800만가입자)이 초고속인터넷을 사용하는 초유의 국가로 자리매김했다.

 한때 ADSL 도입에 강력 저항했던 KT는 현재 IT관련 국제회의에서 ‘한국의 초고속인터넷’이란 키노트를 전담하는 ADSL 관련 최대의 수혜자로 활동하고 있다.

 국내 정보통신산업 발달사를 상징하고 벤처정신이 만개한 TDX, CDMA, ADSL의 도입과정과 성공사례는 세계 최고의 IT기술을 자랑하는 지금의 상황에도 벤치마킹의 대상이 된다. 무모하다 싶은 TDX, CDMA, ADSL의 도입은 5년 뒤, 10년 뒤를 고려한 산업정책의 대표적인 프로젝트였고 이는 해외로부터의 벤치마킹 대상이다.

 연초 서울을 방문했던 휴이트 영국 통상산업부 장관은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영국은 BT 등 통신사업자의 시장자율에 맞겨 초고속인터넷 대중화에 실패한 데 반해 한국은 정부 주도의 초고속인터넷정책이 빛을 봄으로써 800만 가입자 시대를 열었다”고 한국정부의 성공에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평가를 받고 있는 한국의 IT현실에서도 5년 또는 10년 뒤의 새로운 가능성을 위한 정책은 절실하다. IMT2000 정책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정부는 세계 일류 수준인 우리 CDMA와 ADSL의 세계화를 위해 분주한 IT외교를 수행하고 있다. 문제는 몇년 뒤 세계 각국에서 본격적인 투자에 나설 3G시장에 대한 우리의 비전이다. 특히 사업자들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투자를 연기하고 싶고 조기합병하고자 하는 3G는 미래의 수출주력산업이다. 서비스 사업자들의 희생이 있겠지만 만약 내수에서 터를 닦지 못하면 3G산업은 험난한 길을 걸어야 한다.

 더욱이 IMT2000 실종의 중심축에 놓여 있는 WCDMA는 세계시장의 60∼80%를 차지할 거대시장이다. 정부는 지난 2000년 내놓은 IMT2000 정책을 다시금 재조명해야 한다. 만약 당시 정책이 잘못됐다고 판단한다면 해결책과 함께 새로운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조시룡기자 srcho@etnews.co.kr>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