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본 벤처2001>(2)벤처 더이상 물러설 수 없다

 올해는 벤처기업들에 악재가 많은 한해였지만 한편으론 자성과 성숙의 계기를 제공한 해이기도 했다.

 지난 3월 이후 ‘벤처거품론’ ‘무늬벤처론’ 대두와 지속적 코스닥 하락세 이후 벤처들은 자성과 고강도 구조조정의 모습을 보였다. 이는 철저한 수익 중심의 사업모델(BM)정비, 글로벌화, 인수합병(M&A), 기업간 전략적 제휴 등으로 나타났다.

 물론 도덕적해이(모럴 해저드)의 극한을 보인 일부 벤처인들의 추태가 사회에 경종을 울린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대부분 벤처에서 더이상 과거처럼 본업보다 자금줄에 기대는 안이한 모습은 찾기 힘들어졌다.

 벤처의 변화 모색은 우선 수익창출을 위한 고강도 구조조정 작업으로 시작됐다. 고정비 절감을 위해 임대료가 비싼 테헤란밸리를 벗어나 서울 외곽 및 수도권 일대로 떠나기 시작한 것.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기 위한 고육책이기도 했지만 테헤란밸리 위주의 벤처 중심을 다극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기업들의 자구책은 또한 시장조사 기반의 BM 수정, 수익성 없는 사업부 해체, 감원·아웃소싱 등을 통한 조직 슬림화 등으로도 나타났다. 철저한 수익모델론이 벤처생태계에서 힘을 얻기 시작한 것이 가장 큰 변화라면 변화였다.

 그동안 빛을 내지 못했던 기술력·수익성·시장성 위주의 기업들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벤처거품’의 주범이란 지적까지 받아온 닷컴기업들도 유료화와 오프라인 연계 등을 통해 잇따라 수익을 내는 등 명예 회복에 나섰다.

 또 다른 화두는 단연 ‘글로벌시장 공략’이었다. ‘내수만으로는 안된다’는 벤처들의 자각은 글로벌 시장 진출 노력으로 나타났다.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중국시장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져 통신·보안·계측장비 중심의 ‘만리장성 넘기’ 열풍은 유행처럼 번지면서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올해 벤처기업은 이같은 전자·정보기술(IT)벤처의 호조를 반영, 총체적 수출위기 속에서도 지난해 동기 대비 10.6% 이상 증가한 50억달러 수출을 예고하고 있다. 중기청의 조사에 따르면 전체 벤처의 26%가 해외시장에 진출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무선통신기기 등 전자정보통신업종이 올해 3분기 수출액 중 51.5%를 차지할 만큼 해외시장 공략을 주도하면서 수출전선의 해넘이에 힘을 실었다.

 오랜 기술개발 경험과 마케팅 노하우, 폭넓은 글로벌 네트워크를 보유한 대기업과 벤처간 협력도 주목을 끌었다. IT·바이오 분야를 중심으로 기술 및 상품개발 단계에서부터 결합하는 적극적 협력모델을 만들면서 단순한 투자·판로지원 협력차원에서 한단계 도약했다.

 벤처의 사고방식 변화는 올해 가장 커다란 수확이다. 동종 벤처간에도 기업간 전략적 제휴가 시너지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면 개발·마케팅·해외시장 진출 등에서 전반적으로 협력하는 성숙된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는 벤처생태계 변화에 따른 자구책으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일년 전에 비해 엄청난 변화로 평가받고 있다. 

 벤처기업간 M&A에 대한 부정적 시각 또한 서서히 걷히면서 한계기업을 흡수하거나 사업다각화 등을 통한 경쟁력 확보에 나선 것이 올해 벤처업계의 또다른 자구노력의 성과이자 수확이다.

 벤처 전문가들도 “벤처생태계 환경의 악화가 우리 벤처기업들을 한단계 성숙시키기 위한 쓴약이 된 한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정환기자 victo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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