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칼럼>빠른 통일보다 바른 통일

 ◆변정용 동국대 컴퓨터학과 교수 byunjy@mail.dongguk.ac.kr

 

 언어는 인간의 가장 지적인 산물이라 하며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고 이것으로 말미암아 문화를 계승, 발전시켜 왔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 말과 글은 우리 민족의 문화 전승 그릇으로 정보시대에 주요 도구인 컴퓨터를 이용하면서 새로운 기회와 도전에 직면해 있다. 나라를 잃고 민족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노력으로 한글을 재발견하고 민족교육 수단으로 활용하였던 역사가 있고 광복 후에는 반세기 동안 분단으로 남과 북이 민족문화의 이질화 길을 걸어왔다. 이제 개방의 시대를 맞이하면서 남북이 상호 협력하고 다방면의 교류가 불가피한 시점인 만큼 우리의 말과 글의 동질성 회복은 지리적 통일에 앞서 쟁취해야 할 으뜸가는 일이라 생각된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 10월 동국대 경주캠퍼스에서 제13회 한글 및 한국어정보처리 학술대회와 함께 ‘남북의 언어정보처리’라는 주제로 워크숍이 개최됐다. 여기에는 이제까지 컴퓨터를 이용한 언어처리에 있어서 남북 학술교류와 관련되어 일해온 전국의 학자 및 관계자들이 함께 모여 그동안 결실을 정리하고 향후 발전적인 방향을 모색하는 토론회를 가졌다. 자모순서, 컴퓨터 자판배열, 한글코드, 용어, 언어처리 등의 분야에 대해 토론하였는데 문제점으로 다음 몇 가지가 지적되었다.

 첫째, 행사 참석자가 북한은 모두 정부 관계자들이고 남한은 민간단체 대표였지만 남한에서는 공무원들이 함께 참관, 마치 정부간 회담 성격을 짙게 함으로써 북한 대표들로 하여금 높은 기대감을 갖게 하는 오해를 불러일으켰다는 점이다.

 둘째, 논의된 내용이 남한에서는 의견수렴이나 전문가들이 참여하도록 열려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이뤄졌다는 점이다. 그래서 남한 참석자들 간에도 이견이 분분하였다. 물론 학술대회일 경우 문제가 없지만 북한이 정부간 협의와 같은 느낌을 가지고 있는 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셋째, 학술대회 결과를 마치 국가 입장에서 결정된 것으로 오해할 소지를 남긴 점 등이다. 특히 특정 학술단체가 이러한 행사를 독점하면서 마치 남쪽을 대표하는 듯이 합의문을 만들고 정부의 입장인 듯 오해를 일으키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 북한 대표들은 체제의 특수성 때문에 정부 차원의 특수 목적을 띠고 참석하게 되어 있다. 특히 북한이 최근 높은 관심을 가지는 것은 국제표준기구에 등록된 한글 코드다. 한글과 조선글은 자모순서가 서로 다르며 국제표준기구에는 남한 규격 일변도로 채택되어 있다. 이것은 북한의 입장에서 정보화 과정에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북한은 ISO 10646의 기본다국어판에 대한 개선을 위하여 몇 년 전부터 국제회의에 참석해 왔다.

 앞으로 남북간의 언어정보처리 문제는 이같은 문제점을 전제한 상황에서 접근해야 한다. 행사가 끝난 후 많은 관계자들은 북한과의 대화시 남한의 공식적 입장을 강화할 필요가 있음을 인식하게 됐다. 그래서 이러한 내용을 논의할 수 있는 포럼 또는 위원회도 구성하자는 결론을 얻기에 이르렀다. 앞으로 이 기구를 통하여 전문가들이 힘을 모아서 분야별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생산성이 높은 정보교환이나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또한 통일 이후에도 변함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남북간의 학술교류를 통하여 최적한 안을 내놓자는 것이다.

 이러한 일을 성공적으로 이룩하려면 북한에도 민간성격의 언어정보처리 관련 학술단체, 이를테면 ‘조선정보처리학회’와 같은 단체를 만들어서 남북이 상호 번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 지리적 통일에 앞서 언어의 동질성 회복을 이룩함으로써 성숙된 정보화 사회에서 우리말과 글을 바탕으로 하는 진정한 통일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모두 조급하게 통일을 원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빠른 통일’을 지향하기보다 ‘바른 통일’을 이룩할 수 있도록 다방면에서 노력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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