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정보통신학계를 움직이는 사람들>(39)바이오학계

 “하늘에는 정보기술(IT), 땅에는 생명공학(BT).”

 바이오업계 사람들이 어느자리에서든 하는 말이다. 바로 BT가 향후 펼쳐질 시대의 모태기술이 되고 그 위에 IT가 융합돼 발전한다는 뜻이다.

 20세기가 IT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바이오의 시대로 일컬어진다.

 BT는 IT와 달리 연구개발에 오랜 시간과 투자가 소요되는 학문으로 생물학과 생화학·의학·유전공학·정보통신학·반도체공학 등 다양한 학문과 연계돼 발전하고 있다.

 유전공학과 생명공학만으로 생각되던 바이오학계는 최근 다양한 학문과의 연계를 통해 최첨단 바이오공학을 탄생시키며 급속히 발전하고 있다.

 바이오학계는 지난 80년대 유전공학 붐을 타고 1차 전성기를 누렸고 2000년에 들어와 인간게놈프로젝트 수행으로 또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바이오학계 인물들은 대부분 초창기 생물학·화학 등 순수 학문에서 과학자를 꿈꾸고 실험실에서 암세포를 죽이는 연구에 몰두하면서 학계를 이끌어왔다.

 식물과 동물, 그리고 인간의 각종 대사활동과 불치병의 치료 등 자연현상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과 연구·도전이 바로 바이오학계를 이끄는 사람들의 공통점이다.

 바이오학계의 중심 인물들은 대부분 해외 유학파다.

 순수학문 계통 생물학에서 시작한 바이오학계는 국내보다는 미국·영국 등 순수학문 선진국에서 석박사를 취득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른 정보통신관련 학계와 다르게 바이오학계는 오랜 전통을 이어오면서 최근 유전체학으로 대표되는 지노믹스, 단백질을 연구하는 프로테오믹스, 생물의 정보를 분석하고 축적하는 바이오인포매틱스 등 최첨단 학문으로 발전했다.

 이런 급속한 발전을 이끌어온 사람들이 포항공대의 남홍길 교수, 서울대 서정선교수, 연세대 백융기 교수, 숭실대 노경태 교수, 캘리포니아주립대 김성호 교수 등이다.

 국내 생물학계에서 노벨상 후보자로 꼽히는 미국 버클리 소재 캘리포니아주립대 화학과 김성호 교수(62)는 구조 유전체학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김성호 교수는 99년 사람 등 여러 가지 생물체 안에서 이뤄지는 분자수준의 정보전달과정에 대한 비밀을 밝혀내 전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김 교수는 생체 내에서 유전자에 암호화돼 있는 정보를 번역해 단백질을 합성할 때 아미노산을 운반하는 전달 RNA(t-RNA)의 3차원 구조를 규명해 의문에 쌓여 있던 t-RNA의 운반기작에 대해 설명했다.

 또 최근에는 X선 결정구조 분석법을 이용해 정상세포와 암세포에서 RAS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구명함으로써 RAS 단백질이 암을 일으키는 원인임을 밝혀냈다.

 RAS 단백질이 콜레스테롤 생합성과 연결됐음을 발견함으로써 RAS에 의한 암치료 연구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김 교수의 연구는 뉴욕타임스가 1면에 소개했을 정도로 세계적인 시선이 집중됐다.

 김 교수는 해외에서 활동하며 한국 바이오학계와 업계의 글로벌화를 위한 노력

은 물론 조언과 협조에도 주력하는 인물이다.

 포항공대 생명공학과 남홍길 교수(44)는 식물분야 유전자 메커니즘 분석에 주력해온 인물로 포항공대 생명공학과의 간판 교수다.

 남 교수는 99년 9월 미국 ‘사이언스’에 식물의 개화시기를 조절하는 새로운 유전자를 찾아내 전세계 연구자의 관심을 끌었다.

 이 유전자는 남부지역에서 서식하고 있는 ‘애기장대’라는 식물에서 생체시계와 광(光) 주기성을 조절하는 유전자인 ‘자이갠티아’였다.

 남홍길 교수는 식물 노화에 대한 연구를 활발하게 진행중이며 이런 식물의 노화연구를 기초로 동물 노화까지 연구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 소장직도 겸하고 있는 남 교수는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각종 바이오관련 정보와 학계에 강력한 커뮤니티를 구축한 인물로도 꼽힌다.

 바이오벤처 마크로젠 사장 겸 서울대 암연구소 분자생물학실 실장, 서울대 의과대학 서정선 교수(47)는 한국의 크레이 벤터로 불릴 정도로 생명과학 속도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였다.

 서 교수는 지난 6월 셀렐라지노믹스의 크레이 벤터 박사가 사용한 무작위적 숏건(random shotgun)법을 사용해 한국인 인간게놈프로젝트를 완성하는 성과를 거뒀다.

 그는 특히 개인별 염기 차이로 사람간 유전적 차이를 비교해 개인별 차이를 밝힐 수 있는 단일염기변이(SNP)를 파악한 개인별 맞춤의학시대를 주장하고 나서 주목받고 있다.

 서정선 교수가 밝혀낸 한국인 백(BAC) 클론을 이용해 SNP를 파악하게 되며 기존에 SNP를 분석하는 데 1억원 이상의 비용이 소모된 것을 앞으로 3∼4년 후 100만원대로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서 교수가 유전자 연구의 선구자라면 연세대 생화학과 백융기 교수(48)는 유전자를 이루는 단백질(프로테옴) 연구로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연세대 내 프로테옴연구센터를 운영중인 백융기 교수는 지난 7월 국내 프로테오믹스 관련 인물들과 함께 한국인간프로테옴기구(KHUPO)를 창립했으며 미국·유럽·호주 등이 참가하는 인간프로테옴기구(HUPO)의 한국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백 교수는 얼굴기형과 중추신경계 장애를 유발하는 데 관여하는 주요 메카니즘인 ‘라노스테롤로부터 콜레스테롤 생합성’이라는 제목으로 생명분야의 유명 저널인 미국 ‘생화학지(JBC)’ 에 게재하는 등 활발한 연구 활동을 벌이고 있다.

 구조유전체학이나 지노믹스, 프로테오믹스와 함께 최근 가장 주목받는 바이오학문은 바이오인포매틱스다.

 바이오인포매틱스는 IT와 BT가 결합해 생물의 유전정보나 단백질 정보를 고부가가치 데이터로 축적해 신약개발과 질병진단을 보다 효과적으로 할 수 있게 돕는 학문이다.

 숭실대 생명정보학과 노경태 교수(45)는 소프트웨어 바이오인포매틱스 기술 보급의 선구자다.

 노 교수는 숭실대 학부에 국내 처음으로 바이오인포매틱스 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 생명정보학과를 올초 신설했으며 분자설계연구센터도 설립해 실습 위주의 바이오인포매틱스 인력 수급에 앞장서고 있다.

 그는 또 정보통신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생명공학(BT)·환경기술(ET)·나노기술(NT) 등 미래형 고부가가치 도전 과제를 중심으로 산업체의 기술 개발과 연계하는 그리드포럼코리아의 BT분야를 대표해 참석하고 있다.

 97년에는 숭실대 내에 신약개발의 프로세스를 앞당기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하는 분자설계연구센터를 설립해 컴팩 등 IT메이저로부터 장비를 기증받아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노 교수가 소프트웨어 부문 바이오인포매틱스라면 한양대 분자생물학과 황승용 교수(36)는 하드웨어 바이오인포매틱스인 바이오칩 개발에 주력한 인물이다.

 DNA칩 제작 시행착오를 가장 많이 겪었을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한양대 생화학과 황승용 교수는 97년 유전자를 단 한번에 검색할 수 있는 ‘DNA칩 이론’을 미국 관련학계에 발표하고 DNA칩 제작에 뛰어들었다.

 황 교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형질에 맞는 DNA 진단칩을 국내 자체기술로 개발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흔한 질환을 손쉽게 진단, 치료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향후 예상되는 선진국의 국내시장 침투를 막는 데 앞장서고 있는 개척자다.

 황 교수는 DNA칩 전문업체인 지노첵을 설립하고 DNA칩 연구개발은 물론 상용화와 DNA칩을 읽어 정보를 축적하는 데 사용하는 기기 제작에 나섰다.

 DNA칩과 함께 바이오학계의 또 다른 융합기술 분야인 나노바이오 부문은 서울대학교 전기전자공학부 김성준 교수(46)가 기틀을 마련했다.

 바이오일렉트로닉스 분야를 개척해온 김성준 교수는 99년 서울대 내 초미세생체전자시스템연구센터를 설립하고 생명기술과 초미세전자시스템(MEMS)를 결합해 신경세포칩과 초소형 유세포분석기 등을 개발하고 있다.

 김 교수는 미국 뉴욕 코넬대에서 석박사를 거친 것을 인연으로 지난 8월 나노바이오 선진대학인 코넬대 내에 초미세생체전자시스템 현지 연구실을 개소하는 등 선진 나노바이오기술 도입에 앞장선 인물이다.

 그는 나노바이오 분야의 글로벌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매년 2회 국제 나노바이오 심포지엄을 개최해 나노바이오인력 양성과 저편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각종 조직으로 분화되는 줄기세포 분야에서는 한양대 생명과학과 김철근 교수(43)의 활약상이 눈에 띈다.

 김철근 교수는 서울대에서 세포생물학 이학석사를 마치고 워싱턴주립대 세포유전학 박사, 코넬대 분자 유전학 박사를 거쳐 미국 프레드허친슨 암연구소 연수를 거쳤다.

 난치병을 해결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으로 알려진 줄기세포의 발생분화와 분자 조절기전 연구를 지속해온 김 교수는 지난달 줄기세포를 공식적으로 관리하는 줄기세포주은행 설립으로 세포분화 부문에서 입지를 확고히 했다.

 서울대 유전공학연구소의 김선영 교수(45)는 97년 서울대 내에 최초의 벤처회사를 세우고 국제통화기금(IMF)체제의 위기에서도 영국에 기술을 수출했으며 지난 3월에는 일본으로부터 대규모 자금을 유치한 주인공이다.

 그는 지난해 말 VEGF 혈관신생인자를 이용한 유전자치료제를 발표하고 자체 독성 및 효능검사 등 전 임상시험 결과를 마치고 식의약청에 임상시험 허가원을 제출하는 성과를 올렸다.

 김 교수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발효공학 석사학위를 마친 뒤 당시 유전학을 가르치던 저명한 과학자들의 학문에 대한 열정과 분자생물학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에 매료돼 귀국을 미루고 하버드대에서 또다시 분자유전학 분야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외에도 그는 DNA칩 개발업체인 다이아칩의 설립자로 바이오인포매틱스 분야로 연구 영역을 확장하며 바이오벤처 붐을 조성하는 데 앞장섰다.

<김인순기자 insoon@etnews.co.kr>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