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엔터테인]케이블TV가 `아이`를 키운다

 “혼자 외롭게 사는 할머니에게 어느날 요정이 꽃씨 하나를 선물했어요. 할머니가 그 꽃씨를 정성껏 보살폈더니 거기에서 엄지공주가 태어났지요….”

 엄지손가락 만한 공주가 동화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이들은 눈을 반짝인다. 게다가 실감나는 음향과 재미있는 성우의 목소리가 곁들여진다면 어떨까.

 ‘사악사악’ 물고기떼가 은빛 물살을 가르는 소리나 ‘퐁당퐁당’ 동심원을 그리며 호수에 던져지는 돌멩이 소리가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TV와 PC에 익숙해진 요즘 아이들에게 한 장 한 장 손으로 넘기며 보는 동화책은 덜 매력적이다. 케이블TV 재능스스로방송이 ‘이야기별 잼잼기차’(월·화 오전 10시 50분)를 선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야기별 잼잼기차’는 시중에 나와있는 국내외 동화 중 특별히 일러스트레이션과 내용이 뛰어난 작품을 선정해 영상에 담는다. 파스텔톤의 고운 화면부터 톡톡튀는 음향효과 등 ‘질감’부터 다르다.

 케이블TV의 교육프로그램이 이처럼 요즘 아이들의 눈높이를 맞추기 시작했다.

 30대 초반의 어른에게도 ‘뽀뽀뽀’ ‘TV유치원’을 보기 위해 졸린 눈을 부비며 TV앞에 앉았던 기억은 생생하다.

 하지만 그 때에 비하면 놀거리·볼거리가 넘쳐나는 요즘 어린이들에게는 뭔가 색다른 게 필요하다. 이런 바람을 누구보다도 빨리 파악한 케이블TV의 어린이 및 교육 전문채널들은 지상파방송사들이 시도한 적 없는 상큼한 프로그램들을 속속 편성하고 있다.

 특히 조기 영어교육 열풍을 입증해주듯 다양한 어린이 영어 프로그램이 풍성하다. 물론 단순히 앵무새처럼 알파벳을 암기시키는 기존 영어교육물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어떤 프로그램이든 재미와 교육효과는 물론 감성지수(EQ)를 높이기 위한 정서교육까지 병행한다는 것.

 재능스스로방송이 최근 가을개편에서 신설한 ‘매직 라이브러리’(월·화 오전 10시 10분)는 영어동화를 노래로 만들어 들려준다. 아이들은 쉬운 멜로디에 담긴 영어 가사를 따라부르면서 ‘마술처럼’ 쉽게 영어와 친해진다.

 ‘BBC 키즈 잉글리시 존’(월∼토 낮 12시 50분)의 ‘코믹 스케치’ 코너에는 코미디언 2명이 출연해 팬터마임 형식으로 재미있게 영어 단어를 설명한다.

 애니메이션 채널인 투니버스는 아예 영어교육을 위한 전용 블록인 ‘투니스쿨’(오전 9시)을 매일 2시간씩 방영하고 있다.

 투니스쿨에 편성된 교육 프로그램은 모두 주변에서 흔히 겪게 되는 잔잔한 일상을 서사적 구조로 풀어나간다. 현재 투니스쿨에서 가장 인기있는 ‘까이유의 이야기 나라’는 미국 PBS의 간판 프로그램으로, 어른에게는 하찮을지라도 어린 아이들에게는 소중한 모험이 될 만한 일상사들을 다룬다.

 애니메이션과 인형극이 결합된 포근한 이미지뿐만 아니라 경쾌한 율동과 노래를 곁들여 아이들의 시선을 고정시킨다.

 목수 아저씨가 건물의 구조와 설비를 쉽게 알려주는 ‘뚝딱마을 통통 아저씨’나 어린 소녀 루시가 밤마다 창문을 타고 빠져나와 동물원에서 벌이는 해프닝을 다룬 ‘루시와 동물 친구들’은 영어교육은 물론 아이들이 꼭 알아야 할 교훈까지 자연스럽게 전달한다.

 독특한 형식을 채택한 교육 프로그램도 눈에 띈다. 재능스스로방송의 ‘배틀퍼즐’(월·화 밤 9시 30분)은 낱말 맞추기 게임을 통해 음악·국어·과학상식 등을 익히는 방식이다.

 투니스쿨의 생활교육 프로그램인 ‘붐이 담이 부릉부릉’이나 대교방송의 ‘송이야 놀자’ 등도 제목처럼 평범하지 않은 방법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기도 한다.

 이처럼 ‘튀는’ 케이블TV 교육 프로그램들의 인기는 상상보다 훨씬 폭발적이다. 초등학생의 TV 시청시간이 길어지는 방학에는 전체 시청률이 언제나 상위 5위 안에 들 정도다.

 이들의 인기 비결은 비단 어린이뿐만 아니라 엄마들까지 감탄시켰다는 데 있다. 사교육비 걱정이 끊일 날 없는 부모들로서는 제대로 된 TV프로그램 한 편이 열 가정교사 안부럽다는 것.

 JEI스스로방송에서 ‘매직 라이브러리’를 연출하는 송미정 PD는 “시청자가 재미있어 하는 게 뭔지, 정말 교육적인 효과가 있을지에 중점을 두고 프로그램을 만든다”며 “까다롭고 꼼꼼한 요즘 부모들과 아이들의 입맛에 맞춰 제작한 것이 인기 비결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렇게 쏟아지는 세련된 어린이 프로그램의 대부분이 외국물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아쉬움도 남는다.

 투니스쿨을 즐겨 시청한다는 주부 장모씨는 “교육효과를 노려 정통 외국 프로그램을 편성하는 것은 좋지만 아이들이 너무 어릴 때부터 외국 문화에 길들여지는 것 같다”면서 “참신한 기획력을 지닌 국내 프로그램이 더 많이 나타나길 기대해 본다”고 말했다.

 <김유경기자 yuky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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