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전하진 사장이 전격 사임함에 따라 그 배경과 한컴의 향후 행보에 대해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전하진 사장은 98년 8월 한컴 매각사태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이찬진 사장의 후임으로 한컴 사장직을 맡았다. 공개모집이라는 특단의 조치를 통해 영입된 만큼 전하진 사장은 업계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전 사장은 대표이사 취임 이후 무리한 인터넷사업 추진 등 중요한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꾸준한 매출증가를 이뤄 회사를 안정적으로 이끌어왔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왜 사임하나=전하진 사장의 퇴임은 그동안 철저하게 보안이 지켜진 채 전격적으로 이뤄졌지만 한컴 내부에서는 상당 기간 동안 준비된 것으로 보인다. 한컴은 올초부터 6월까지 전사적인 컨설팅을 받았다.
아직 컨설팅 결과가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한컴 관계자에 따르면 ‘과감한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제기됐다고 한다.
한컴은 89년 창립 후 아래아한글이 국산 소프트웨어의 대명사로 자리잡으며 성장했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의 파상공세로 실적 부진을 겪어 97년 아래아한글을 마이크로소프트에 매각한다는 발표를 내기에 이르렀다.
그후 국민주 모집으로 위기를 넘긴 한컴은 전하진 사장의 취임을 계기로 인터넷 사업을 공격적으로 추진했지만 닷컴기업의 몰락과 만성적자를 내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그동안의 실적을 보더라도 98년 162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한 후 99년 소프트웨어 불법복제 단속의 계기로 105억원의 흑자를 냈지만 다시 작년 순이익이 마이너스203억원으로 급락한 후 올해도 상반기에만 102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전하진 사장은 사임 후 “실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지고 네띠앙에 전념해 상황을 호전시키는 계기를 마련하겠다”고 밝혀 이번 사임이 경영부진의 책임을 진 사임이라는 것을 시인했다.
◇한컴의 행보는=업계에서는 전 사장의 퇴진이 한컴의 근본적인 전략 변화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한컴은 이달초 CEO를 비롯해 CTO·COO·CFO의 역할을 명확히 구분하는 인사를 통해 조직강화를 도모했기 때문에 전하진 사장의 퇴진이 한컴 경영에 누수가 일어나지는 않을 전망이다.
한컴은 전 사장의 퇴임발표 이후 곧바로 이사회를 소집해 최승돈 상무를 임시 대표이사로 선임하고 CEO 영입위원회를 구성하는 기민함을 보였다. 특히 오는 10월 9일 한컴의 대표 상품인 한글2002 출시를 앞두고 CTO가 임시 대표이사를 맡은 것은 소프트웨어 개발에 주력하겠다는 한컴의 의지를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더불어 한컴의 인터넷 사업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네띠앙, 예카스테이션 등 인터넷 관계사들이 만성적자에 시달리고 있지만 시장이 얼어붙은 상태에서 마땅히 매각할 대상을 찾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청산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는 의견이다.
◇한컴에 미래는 있나=26일 한컴의 주가는 30원 오른 3020원으로 마감됐다. 하지만 이를 통해 시장의 반응을 평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전 사장 퇴임발표가 코스닥 장이 끝나는 3시께 발표됐기 때문에 주가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27일 주가변화를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업계에서는 한컴의 미래는 단기간의 주가변화나 임시 조직정비가 아닌 장기적인 비전과 전략에 달려있다고 본다. 지난 2년간의 불법복제 단속으로 잠재 수요가 상당히 충족됐고 막강한 자금을 등에 업은 마이크로소프트의 공세가 더욱 강해질 전망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컴이 생존 해법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업계에서는 지난 해 초부터 ‘3년 후 한컴이 지금의 위치를 지킬 수 있을까’라는 설이 나돌았다. 한컴이 전하진 사장 퇴임에 발빠른 대응을 한 것처럼 장기적인 비전과 전략을 밝히지 못하면 한국 소프트웨어의 자존심은 냉혹한 시장의 논리에 침몰할지도 모른다.
<>전하진 사장 일문일답
―일부에서는 문책성 사임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한컴 자체의 경영 실적인 호전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전체 실적이 나쁘기 때문에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 원래는 내년초쯤에 물러날 계획이었는데 관계사의 사정이 너무 악화돼서 더이상 자리를 지키는 것이 무의미해졌다.
―올해초 주주총회에서 3년간 재신임을 받았는데 너무 갑작스러운 사임이 아닌가.
▲한컴이 개인회사도 아니고 전체 주주와 직원의 이익을 지킬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전체적인 손실에 대한 책임은 분명히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향후 계획은 무엇인가.
▲일단 며칠간 쉬면서 네띠앙의 정상화 방안을 강구할 계획이다. 네띠앙은 이미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한 상태로 현재 가장 부족한 것은 자금이다. 사업 모델은 유효하다고 판단한다. 투자심리가 위축돼 있지만 자금확보는 어렵지 않다고 본다.
<장동준기자 djj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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