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IT비전>그리드 프로젝트-WWW시대 저물고 `그리더`가 떠오른다

 ‘월드와이드웹(WWW)’ 시대가 저물고 있다. 인터넷으로 세계 각가지의 컴퓨터를 연결해 초대용량의 슈퍼컴퓨터처럼 활용할 수 있는 ‘그리드(GRID)’ 기술이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왔기 때문이다. 정보통신부는 지난 5월 국가 그리드 기본 계획을 수립하고 2002년부터 5년간 핵심 기술 개발에 435억원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이의 일환으로 최근 ‘국가그리드 포럼 준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이에 앞서 미국·유럽 등 선진국은 일찌감치 차세대 선도 기술 사업의 하나로 그리드를 꼽고 산·학·연 공동으로 기반 기술 확보에 적극 나서는 상황이다.

 진공관의 음극과 양극 중간에서 전류의 흐름을 제어하는 ‘격자(格子)’에서 유래한 그리드는 인터넷 확산의 기폭제가 되었던 월드와이드웹과 차세대 인터넷을 연결해 주는 징검다리다. 지난 98년 미국 시카고 대학 이안 포스터 컴퓨터공학과 교수가 창시했으며 한 번에 한 곳에만 연결할 수 있는 웹과 달리 신경 조직처럼 작동하는 인터넷 망 구조를 말한다. 그리드는 컴퓨터에 특정 프로그램을 설치해 세계 곳곳의 컴퓨터·데이터베이스(DB)·첨단장비를 연결, PC로 원격 조종할 수 있다는 원리에서 출발했다. 한마디로 전 세계 컴퓨터를 인터넷으로 연결해 마치 가상 슈퍼컴퓨터처럼 쓰자는 개념이다.

 가상 슈퍼컴퓨팅의 핵심은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수억대의 PC와 첨단장비를 하나로 묶어 제어한다는 것. 이렇게 완성된 가상 슈퍼컴퓨터는 지금의 슈퍼컴보다 수천∼수만배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유휴 자원을 이용해 비용을 크게 줄이면서도 대량의 데이터를 뚝딱 처리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연결 방식 또한 기존 웹과 판이하다. 지금의 인터넷은 모든 정보를 담는 서버에서 인터넷 이용자가 필요한 정보를 받아 보는 수직 구조로 이뤄져 있다. 이 사이트에서 저 사이트로 쉽게 옮겨 다니며 여러 정보를 수집할 수는 있지만 동시에 여러 사이트와 연결해 정보를 주고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리드는 인터넷 이용자가 다른 이용자들과 수평적으로 직접 연결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동시에 여러 곳에 연결할 수 있다. 인근 지역의 동료와 연결한 어느 인터넷 이용자가 동시에 지구 반대쪽 컴퓨터에 연결,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컴퓨터에서 찾은 정보를 여러 사람이 동시에 보면서 한 사람의 설명을 듣거나 함께 설계 도면을 그리는 일도 가능해진다. 아울러 한 컴퓨터가 곳곳에 흩어져 있는 컴퓨터를 원격 조종해 복잡한 계산을 쪼개서 시킨 뒤에 다시 합쳐 결과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일례로 그리드가 상용화되면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가 자신의 연구실에 앉아 PC로 포항공대의 광입자 가속기를 작동해 얻은 각종 수치를 대전 대덕단지의 슈퍼컴퓨터로 보내 연산하고 그 결과를 다시 PC로 받아 보며 연구할 수 있다.

 그리드는 궁극적으로 4A를 목표로 추진되고 있다. 4A란 지능화된(Advanced) 네트워크, 고성능(Advanced) 컴퓨터 및 장비, 첨단(Advanced) 애플리케이션, 고급(Advanced) 과학기술 등이 그것이다. 지능화된 네트워크는 광케이블·IPv6를 비롯해 고성능 미들웨어와 인공지능 브라우저가 포함되는 개념이다.

 그리드 개발에 관심이 높은 것은 첨단 기초과학 연구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정보기술·생명공학·환경공학·미세공학 등 첨단 산업 분야는 물론 반도체·자동차·철강·기계 등 기존 산업에 그리드를 응용하면 파급 효과가 엄청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드를 활용한 비즈니스 모델도 경쟁적으로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에서도 벌써부터 현실감 있고 구동 속도가 빠른 그리드 기반의 온라인 게임, 과학 연구를 위한 오픈 넷 사업 등 그리드 활용 계획이 나오고 있다. 그리드의 상용화가 본격화하면 이러한 움직임은 좀 더 가속화할 것이다.

 그리드는 이처럼 IT뿐만 아니라 BT·NT·ET 등 신 산업과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어 ‘새로운 IT의 사회간접자본’이라 불린다. 전문가들은 웹이 IT의 ‘맛’을 보여줬다면 그리드는 ‘비전’을 보여줄 것이라고 호언하고 있다. 실제로 그리드가 완성되면 기존 IT환경에서는 어려웠던 고속연산과 대량의 데이터 처리가 가능해 BT·ET·NT 분야를 획기적으로 끌어 올릴 수 있다.

 그러나 그리드가 상용화되더라도 현재의 웹(WWW)과 그리드는 상당기간 공존할 것으로 예상된다. 고퍼, FTP 등 인터넷 초기 서비스가 웹이 등장하면서 웹 기반으로 수렴된 것과 마찬가지로 웹도 좀더 진화한 그리드 기반에서 업그레이드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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