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IT를 준비한다>신흥국가의 선택

 포스트IT시대는 아직까지 주요 선진국들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특정분야 IT기술을 바탕으로 포스트IT시대에 한몫을 할 나라도 적지 않다. 소프트웨어와 인터넷·보안 분야에서 탄탄한 입지를 갖고 있는 이스라엘과 인도, 그리고 무섭게 발전하고 있는 중국과 동남아 일부국가들은 새로운 시대에서도 자신들의 영역을 다져 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들이 갖고 있는 무기는 양질의 기술인력과 관련 산업 인프라다.



 ◇이스라엘=IT분야에서 이스라엘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업체들을 갖고 있다. 보컬텍을 중심으로 오디오코드·델타스리컴 3사의 경우 인터넷 회선을 통해 음성신호를 송수신할 수 있도록 하는 VoIP(Voice over Internet Protocol) 핵심기술을 개발해 최근 전세계 인터넷전화서비스시장까지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또 미라빌리스는 인터넷 개발 초기인 지난 96년 ‘ICQ’라는 메신저서비스 하나로 IT업계 신데렐라가 됐다. 군대 동기생 4명이 창업한 미라빌리스는 기술병과에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정보 커뮤니케이션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현재 전세계 1억여명이 이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는데, 창업자 4명은 지난해 미국 AOL에 이 회사를 4억700만달러에 팔아 돈방석에 앉았다.

 이처럼 IT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이스라엘의 가장 큰 재산은 고급 기술인력에 있다. 이스라엘은 엔지니어가 인구 1만명당 135명(미국 85명)으로 세계 최고수준이다. 지난 80년대 중반 이스라엘 공군 전투기 개발계획인 ‘레비 프로젝트’가 무산됨에 따라 방위산업체에 종사했던 대규모 엔지니어들이 민간부문으로 흘러들어온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전세계에 있는 유대인(디아스포라)의 끈끈한 유대와 90년대초 구 소련의 붕괴로 러시아의 유대인 과학자 등 80여만명이 대거 이민을 온 것도 한몫했다.

 방위산업에서 파생된 기술로는 소프트웨어, 데이터보안, 무선통신, 방화벽, 이미지 프로세싱, 인식 및 추적기술 등으로 이스라엘 업체들이 최근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같이 우수한 첨단기술인력을 활용하기 위해 세계 최고 IT기업들은 이스라엘에 연구개발(R&D)센터를 두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 기술인력의 70%를 공급하고 있는 테크니온 공대가 위치한 카르멜 산 밑자락의 마탐 단지에는 IBM·인텔·모토로라 등의 R&D센터가 입주해 있다.

 이스라엘의 벤처기업은 3620개(99년 기준)에 이른다. 이 중 미국 나스닥에 진출한 기업 수만 77개(미국에서 창업한 기업 포함시 120여개)로 미국과 캐나다(126개)에 이어 나스닥 등록업체로서는 세계 3위다.

 IT강국 이스라엘은 이제 생명공학(BT)분야로 관심을 돌리고 있다. 이스라엘 경제인들은 “지난 10년이 이스라엘이 IT거인으로 성장하는 시기였다면 다가오는 10년은 BT의 강자로 발돋움하는 기간”이라고 말한다.

 이스라엘 과학자의 35%가 BT분야에 종사하고 총 학문 연구기금의 40∼45%가 이 분야에 쓰이는 등 튼튼한 기초를 갖고 있다. 이스라엘 생명공학위원회에 따르면 1990년 3700만달러에 불과했던 이 분야 수출이 지난해 7억3000만달러로 늘어났다.

 위와 장을 따라 내려가면서 질병을 진단하는 캡슐형 비디오카메라, 장비나 물품 위에 뿌리면 장기보관용 포장피막이 형성되는 스프레이 등 기발한 틈새기술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는 ‘BT강국 이스라엘’의 저력을 느낄 수 있다.

 

 ◇중국=13억 인구가 살고 있는 중국 기술력도 최근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고 있다. 지난 봄 미국 전투기가 이라크 상공에서 피격당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미국 정부는 이라크의 자체기술로는 첨단 방공시스템 구축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이라크를 협조해준 업체로 중국의 한 정보통신기업을 지목한 적도 있다.

바로 중국 선전 기술개발공단에 자리잡고 있는 화웨이(華爲)기술 유한회사다.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노키아·에릭슨·모토로라 등 유명한 다국적기업들이 중국에 대거진출해 디지털교환기와 이동통신설비 대부분의 시장을 점령할 때도 화웨이는 선진기술의 도입과 소화를 통해 자체기술을 축적하고 꾸준히 국산화를 추진해 왔다.

중국이 최근 제3세대(G) 이동통신에서 독자적인 표준 TD-SCDMA(시간분할-동기코드분할다중접속)를 고집하고 있는 것에서도 중국기업들이 이미 정보기술(IT)분야에서 높은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중국은 또 전통적으로 기초과학 및 이를 응용한 우주항공 등의 차세대 기술분야에서도 세계 최고수준의 기술력을 자랑해 왔다. 유인 우주선 발사를 목전에 두고 있는 중국은 최근 원거리 관측이 가능한 자원탐사위성을 발사해 전세계를 놀라게 했다. 자국 기술로 제작된 ‘중국자원2호’ 위성은 앞으로 태양과 같은 궤도를 돌며 국토조사, 도시계획, 작물 수확량 추산, 재해예측, 공간과학실험 등 각종 데이터를 보내올 예정이다.

 ◇인도=그러나 제3세계 국가가 모두 이스라엘과 중국의 모델을 따를 수는 없다. 국가마다 기술수준과 경제력 등에서 큰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최근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강국으로 떠오르고 있는 인도의 고민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대부분의 국민이 고가의 PC를 구입할 형편이 못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터넷은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인도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결코 포스트IT시대에 동참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최근 전 국민이 사용할 수 있는 값싼 컴퓨터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바로 ‘심퓨터(SIMputer)’ 프로젝트다.

 심퓨터는 Simple, Inexpensive, Multilingual computer의 머리글자에서 따왔다. 이를 그대로 옮기면 사용하기 간단하고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여러 언어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를 의미한다.

 인도는 이 사업을 범국민운동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비영리법인(심퓨터트러스트 http://www.simputer.org)까지 설립하는 등 지극정성을 쏟고 있다. 또 운용체계 개발도 교육용 소프트웨어 업체로 유명한 앙코르소프트웨어(http://www.encoresoftware.com)에 맡겼다.

 그러나 오는 11월부터 약 200달러에 판매할 예정인 심퓨터의 성능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보는 PC보다 개인정보단말기(PDA)에 더 가깝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인도 정부가 단순히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정보단말기(심퓨터)를 보급한다고 해서 정보화를 크게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직 드물다.

 

 ◇싱가포르·말레이시아=싱가포르의 경우에도 일찍부터 초고속정보기반을 구축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98년 전국을 하나로 묶는 고속광케이블망 ‘싱가포르 원’을 완성한 데 이어 지난해부터 10개년 신경제정책에 해당하는 ‘인포컴 21’을 입안해 소득과 교육 수준을 따지지 않고 국민 각층에 컴퓨터와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싱가포르는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 아시아태평양지역을 잇는 전자상거래 중심국가로 발전시킨다는 중장기계획까지 마련해 두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IT진흥책도 ‘멀티미디어 슈퍼코리더(MSC)’에 집약돼 있다. MSC에서는 수도인 콸라룸푸르를 포함해 동서 15㎞, 남북 50㎞의 지역에 대용량 광케이블을 부설, 전자정부 및 인터넷을 이용한 교육·의료·다목적 IC카드의 이용 등을 추진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또 외국 하이테크기업의 유치를 목적으로 ‘MSC 스테이터스’란 자격을 제정, 스테이터스를 취득한 기업에는 법인세 면제 및 외자 전액출자, 외국인 고용 자유화 등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 자격을 취득한 기업의 수가 이미 324개에 달한다.

 ◇제3세계=제3세계에서 컴퓨터 보급에 주력하고 있는 국가들은 그래도 행복한 편이다. 전문가들은 포스트IT시대에 선진국과 제3세계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줄어들기는 커녕 오히려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최근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들이 정보기술(IT)의 뒤를 이을 생명공학(BT)·나노기술(NT) 등을 개발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지만 아직 이 대열에 뛰어들지 못하는 국가가 의외로 많기 때문이다.

 바로 검은 대륙 아프리카는 물론 파키스탄·방글라데시 등 서남아시아와 남미 등에 살고 있는 제3세계 국가들이다.

 최근 정보격차문제를 특집으로 다룬 영국의 BBC방송(http://www.bbc.co.uk)은 “아직도 전 인구의 80% 이상이 문맹과 절대빈곤에서 허덕이고 있는 상황에서 포스트IT시대에 대비하자는 논의는 제3세계 지역 사람들에게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현재 IT 보급 및 활용을 나타내는 몇가지 통계수치만 살펴보더라도 이러한 상황을 극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유엔개발계획(UNDP http://www.undp.org)에 따르면 전세계 60억 인구 중 15%에 불과한 선진국이 인터넷 사용 인구의 88%를 점하고 있다. 이에 비해 전세계 인구의 약 20%가 몰려 있는 서남아시아에서 인터넷을 사용하는 비중은 아직 1%를 넘지 못한다. 검은 대륙 아프리카의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7억4000여만명이 살고 있는 아프리카에 보급된 전화회선을 모두 합쳐도 1400만여회선에 그치고 있다. 이는 미국 뉴욕이나 일본 도쿄의 한 개 도시에 보급돼 있는 전화회선 수에도 못미치는 실적이다.

 <서기선기자 kssu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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