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정보화 경쟁력은 얼마나 되나.’
얼마전 유선 인프라 부문 확충에 힘입어 국내 인터넷 인구비율이 수위그룹에 올랐다 하여 호들갑을 떤 때가 있었다. 유선 인프라 구축이 곧 정보화의 지표로 인용되면서 세계 정상급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으니 국가 정보화 경쟁력 또한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선 게 아니냐는 것이다. 더구나 인터넷을 이용하는 인구비율 역시 높으니 정보화강국 대열에 들어선 것이 틀림없다는 확신에 찬 신념(?)을 스스럼없이 전파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물론 유선 인프라 구축이 상대적으로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있는 것만은 사실인 듯하다. ITU(International Telecommunication Union)가 지난 2월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PC보급·인터넷호스트·인터넷이용자·전화회선·이동전화가입자·TV보급·케이블TV가입자 등의 항목을 중심으로 국가별 정보화수준을 평가한 결과 한국은 지난해 17위에 랭크됐다.
절대적인 기준치로만 보면 비교적 상위권에 랭크돼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는 100점 만점으로 계산할 때 1위인 미국의 98점에 훨씬 못미친 75점에 불과하다. 같은 아시아권인 싱가포르·대만·홍콩·일본 등은 10위권에 올라있으며 인근의 호주 역시 9위를 꿰어차며 정보화 선진국 반열에 올라있다. 물론 저만치 앞서있는 노르웨이·스웨덴·핀란드·덴마크·스위스 등 유럽국가와는 더욱 비교가 안된다.
특히 대만의 순위 상승은 괄목할 만하다. 대만은 지난 96년까지 22위에 머물렀으나 99년에는 13위, 2000년에는 12위로 올라서 불과 4년 만에 10계단이나 뛰어올랐다. 이같은 상승세는 통신부문이 지난 97년 25위에서 지난해 5위로 급상승한 것을 비롯해 인터넷·컴퓨터·방송 부문의 지속적인 투자에 기인한 것이다.
중국 역시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98년 46위에 머물렀던 중국은 99년 45위로 1단계 올라선 것에 그치고는 있지만 PC·인터넷이용자·전화회선 지표에서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중국의 인구통계적 특성을 감안하면 단기간내 순위가 급상승하기는 어렵겠지만 인구와 경제규모로 볼 때 무서운 성장세를 탈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지식정보 강국을 목표로 하는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나라는 지난 98년 21위에서 99년 19위, 2000년엔 17위로 소폭 상승한 데 그쳤다. 물론 시각에 따라서는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지만 우리와 비슷한 순위에 랭크됐던 대만이 10단계나 뛰어오른 것과 비교하면 그 ‘상승세’라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정보화 인프라는 어느 정도 깔렸다지만 이를 이용하고 활용할 수 있는 저변에 대해서는 비교우위를 자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같은 상황은 부문별 정보화수준으로 들어가 보면 자명해진다. PC보급대수를 기준으로 한 컴퓨터 부문 정보화수준의 경우 지난해 인구 100명당 PC보유 대수에서 우리나라는 겨우 19대에 그쳤다. 반면 미국은 59대로 95년 이후 줄곧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스웨덴·스위스·노르웨이 등이 뒤를 잇고 있다.
아시아권에서는 홍콩이 13위, 일본이 17위, 대만이 21위를 차지했다. 우리나라는 50개국 평균 보유대수인 20대에도 못미쳐 대만보다 뒤진 23위에 머물렀다. 물론 수치 자체에 대한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상위권 수준에는 여전히 못미친다.
전체 PC보유 대수 역시 미국이 1억6000만대로 50개 국가 전체의 38%를 보유해 최다 보유국 명패를 갖고 있으며 일본과 독일을 합하면 이들 3개 국가가 전체 PC보유 대수의 53%를 차지하고 있다. 또 중국·영국·프랑스 등 보유 순위 4∼10위의 7개 국가가 나머지 PC 중 절반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인 900만대 수준으로 9위를 기록했다. 물론 한국의 경우 4년간 PC판매 누계치를 PC 보유대수로 추계했다는 점에서 실제 보유대수와 다를 수 있다. 오히려 한국전산원이 추산한 1500만대 수준이 더 설득력을 얻는 수치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는 해도 수치가 조금 올라가는 것을 제외하면 큰 흐름에선 대동소이하다.
통신부문은 95년 18위에서 99년 7위로 성장하는 듯하다 지난해에는 다시 13위로 하락했다. 통신부문은 유무선 통신규모를 나타내는 전화회선과 이동전화 가입자 수가 지표가 된다. 이동전화 부문은 보급률이 급증해 지난해에는 많은 국가에서 보편화됐으며 개인통신이라는 특성에 따라 이미 일반전화 보급률을 넘어서고 있다.
따라서 통신부문 수위인 노르웨이나 스위스·덴마크·스웨덴·대만 등과 그리 큰 차이는 없다. 오히려 미국(14위)·일본(17위)을 제친 것에 점수를 줘야 할 판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인구 100명당 전화회선에서 58회선으로 9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동전화 가입자 수에서도 18위를 차지해 미국·일본보다 앞선 수치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초고속통신망 1, 2단계 사업에 힘입은 바 크지만 반대로 무선통신망 부문서는 국가간 평균화가 급속하게 진행된 데 따른 것이다. 물론 하락세 자체는 우리나라 수준의 하락이 아니라 다른 여타 국가들의 성장세가 가팔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인터넷 부문서 선진국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98년 미국의 36% 수준에 불과했던 것이 99년에는 62%로 급성장했으며 지난해에는 81% 수준을 웃돌았다. 순위에서도 인터넷 이용자로 보면 우리나라는 노르웨이·스웨덴·캐나다·핀란드 등에 이어 9위권에 올라있다.
그러나 홍콩(10위)·싱가포르(12위)·대만(13위) 등 같은 아시아권이 순위를 높여가는 형국이기 때문에 한국만 유독 인터넷 인구가 많은 것으로 평가하기에는 이른 감이 없지 않다. 특히 인터넷의 양적 팽창을 나타내는 인터넷 호스트의 경우를 보면 더욱 그렇다. 즉 인터넷에 연결돼 있으면서 이름이 네임서버에 등록돼 있는 컴퓨터로 들어가보면 그렇게 호들갑을 떨 정도는 아니라는 얘기다.
지난해 인구 1000명당 인터넷 호스트 수는 미국이 293대로 98년 이후 줄곧 1위를 지키고 있다. 그 뒤를 이어 핀란드·네덜란드·노르웨이·뉴질랜드가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대만이 11위, 싱가포르 12위, 일본 14위, 홍콩이 15위로 중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대만은 97년 27위에서 이후 연도별로 20위, 18위, 15위, 11위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95년보다 1단계 향상된 28위를 마크하고 있으나 여전히 20위권 밖으로 밀려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159%)·아르헨티나 등이 95년부터 2000년까지 연평균 높은 증가율을 보이면서 치고 올라오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대만과 일본이 각각 110%, 76%의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평균 증가율 수준인 67%에 그치고 있다.
방송부문의 정보화수준 역시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TV 보급대수와 케이블TV 가입자 지표로 분석한 순위에서 한국은 23위에 랭크됐다. 미국이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뒤를 이어 캐나다·네덜란드·일본·벨기에가 순위에 올라있다. 대만도 7위에 랭크돼 있다.
한마디로 ‘정보화에서만은 앞서 나가자’는 구호를 외치고는 있지만 이 부문에서도 쉽지 않다는 결론이 나온다. 미국을 비롯한 유럽국가들이 저만치 앞서가고 있고 아시아국가들 또한 일부 분야에서는 한국을 앞서고 있을 정도다. 더구나 엄청난 내수시장을 앞세운 중국의 추격세가 만만치 않다. 이제는 산업부문별 정보화지수를 꼼꼼히 점검하고 국가차원의 종합적인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 그래서 더욱 설득력이 있다.
<박승정기자 sjpark@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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