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IT시장을 향해 들소처럼 달려들었던 외국통신사업자들이 최근 주춤거리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1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제회선, 해저케이블 및 백본 사업 등을 목적으로 국내에 진출한 외국통신사업자들이 최근 전세계적인 경기불황과 한국내 IT투자격감, 공급과잉에 따른 수익악화 등의 복병을 만나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는 ‘한국행 러시’가 별다른 실익 없이 끝날 수 있다는 경고와 함께 세계통신환경에서 한국 IP네트워크시장의 장기적 성장성을 시험받는 과정으로서의 의미를 동시에 안고 있어 주목된다.
◇어떤 상황인가=얼마전까지 한국지사 개설을 서두르던 모업체는 돌연 사업추진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본사차원의 주가폭락과 유동성 위기가 직접적 원인이 됐지만 한국시장에 대한 투자중단의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사업축소의 의미를 강하게 띤 임원·직원 감축도 요즘 외국통신업체에 흔히 나타나는 일이다. 전체직원의 절반 가량을 감원한 곳도 있고 조만간 대대적인 감원계획을 갖고 있는 업체도 많다.
별정통신,기간통신사업부문의 국내 사업권을 획득하려는 움직임도 최근 얼어붙다시피 했다. 별정통신 1개, 기간통신 1개 사업자만 만들어졌을 뿐 대다수 업체들은 향후 한국시장 추이에 주목하며 관망세를 보이고 있다.
외국계 인터넷데이터센터(IDC) 사업의 부진에 동반하듯 외국통신사업자의 네트워크센터(텔레하우스) 구축 및 이에 대한 투자도 급감하고 있는 상태다.
◇왜 어려운가=대부분 외국통신업체 관계자들은 현 상황을 공급과잉으로 규정하고 있다. 네트워크서비스, 국제회선분야에서만 10개 이상의 외국사업자가 한국에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업체수도 업체수지만 각 업체가 보유하고 있는 국제회선의 수나 용량도 수요를 크게 웃돌고 있는 상황이다.
한 외국업체 한국지사장은 “실제 수요보다 훨씬 높게 형성돼 있는 회선공급량은 단순한 단가하락을 의미하는 것을 넘어서 투자된 회선구축비용의 회임기간의 장기화를 의미한다”며 “이는 요즘과 같은 경기침체 속에선 사업압박의 근거가 된다”고 토로했다.
최근들어 크게 위축된 한국벤처기업의 해외진출 상황도 이들 외국사업자들의 어려움을 부채질하고 있다.
다른 업체 지사장은 “외국통신사업자의 타깃마켓이 한국기업들이 해외로 진출할 때 물류센터·공장·지사 등을 만들면서 생겨나는 것인데 최근엔 그 사례가 격감했다”며 “이런 현상이 단기간에 끝날 일이 아니라는 점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어떻게 될 것인가=표면적인 양상으로는 외국통신사업자 본사차원에서 타 사업자와의 인수합병(M&A)을 통한 몸집키우기와 비용축소 노력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올들어 벌써 이콴트와 글로벌원이 합쳐져 전세계적으로 한몸이 됐다.
대부분 외국사업자들은 시기적 어려움을 타고 더욱 활발한 M&A움직임이 일어날 것이고 이를 통한 경쟁력 회복이 궁극적 침체탈출의 대안이 될 수밖에 없음을 확신하고 있다.
또다른 지사장은 “외국사업자들 대다수가 적자행진을 하고 있으며 누가 버티느냐가 당면한 최대과제가 되고 있다”며 “주식시장을 통한 대규모 자금유입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고 비용절감효과를 얻을 수 있다면 경쟁업체와의 합병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난관에 처한 외국통신사업자의 움직임은 한국적 요인보다 세계적 요인에서 강하게 영향을 받고 있다. 한국의 통신시장이 세계통신시장에서 따로 떨어진 섬이 아닌 만큼 세계경제의 장기불황과 외국통신업체의 집단적 난국이 미칠 영향을 면밀히 점검하고 그에 따른 대책을 세우는 것이 급선무로 떠오르고 있다.
<이진호기자 jho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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