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경 1조3000억원에 이르는 IMT2000 출연금의 정부부처간 배분은 끝났지만 통신업계는 여전히 못 미더운 눈치다. 그 돈이 제대로 나뉘어진 것인지에 대해서도 이론이 많지만 앞으로 부처간 돈쓰기 과정에서 벌어질지도 모를 이런저런 논란을 걱정하고 있다. 사업자들로서는 주주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그야말로 ‘피 같은 돈’을 납부했기에 기왕이면 그 돈이 한국 IT산업을 살리는 ‘피’로 쓰이길 바라지만 그간 정부부처들이 보여준 행태로 미루어 우려를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IMT2000 출연금을 둘러싼 정부부처간 줄다리기는 마치 부동산 개발로 졸부가 된 아버지의 재산을 두고 다툼을 벌이는 형제들의 모습으로 비쳐졌다. 한마디로 국민에게 출연금은 곧 눈먼 돈이고 먼저 끌어다 쓰는 사람이 임자라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이미 여론의 질타를 받은 바 있지만 IT에 조금만 관련있는 부처라면 모두 나서서 출연금을 나누어 달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출연금을 정보통신 연구개발에 쏟아부어야 할 정통부야 황당했겠지만 산자부·문광부·과기부까지 가세해 “몇천억원은 우리 부서 프로젝트에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금이라도 더 받아내고 싶은 각 부처는 감정대립까지 빚었고 급기야는 경제장관회의를 통해 출연금 배분규모가 결정됐다. 물론 각 부처의 최초 요구액에서는 한참 후퇴한 수준이지만 그래도 문광부의 디지털 콘텐츠 연구개발에 500억원, 산자부 제조업 IT화에 1000억원 등 골고루 돌아갔다.
정부가 국자자원인 통신주파수를 민간에 할당해 주는 대가로 받아내는 출연금은 그것이 국민의 재산인 만큼 용도와 운영근거를 법으로 엄격히 규정하고 있다. 이번 IMT2000 출연금 역시 정보화촉진기본법을 통해 연구개발(R&D)용이라는 조건을 달아 민간사업자로부터 거두어들였다. 여기서 R&D란 정보통신분야 기술개발 및 인력 양성, 표준화 등을 의미한다.
사실 정통부의 힘은 일반 예산과는 별도로 확보할 수 있는 이같은 출연금과 그 집행과정에서 축적된 정책 노하우에서 비롯된다. 다행인 것은 지금까지는 매우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라는 점이다. 여론조사마다 국민의 정부가 가장 잘한 일 1위에 오르는 것이 정보화 및 IT 기술개발인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벤처 육성의 동력도 다름아닌 정통부의 정책과 자금이었다. 출연금을 그야말로 국민이 위탁한 ‘혈세’로 보고 국가 IT경쟁력 강화에 제대로 사용했기에 가능했다는 설명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정이 좀 다르다. 한꺼번에 들어온 돈의 규모도 사상 최대일 뿐 아니라 여타 정부부처들도 이 돈을 끌어다 쓰게 됐다. 기업들에는 가뜩이나 정부자금이라면 눈먼 돈으로 각인된 판에 또다시 무조건 퍼주기식 돈 잔치가 벌어질까 염려하는 것은 기자만이 아니다. 국민은 이미 공적자금이라는 미명 아래 자신의 세금이 아무 소득도 없이 ‘뿌려지는 것’을 지겹게 보아왔다.
정통부는 정통부대로 그간의 기조를 유지해야 하고 산자부·문광부 등은 명확한 정책목표를 갖고 투명하게 집행해야 한다. 행여 입지 확대나 전시성 이벤트에 낭비해서는 곤란하다. 출연금은 눈먼 돈이 아니고 그래서 이제부터는 언론과 정부의 해당 기관들이 감시의 눈을 부릅떠야 한다.
< 이택기자 etyt@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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