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예산 5%시대의 연구개발 평가

  김영환 과학기술부 장관

 

 평가(評價)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선악(善惡)과 미추(美醜) 등에 대하여 평평함(平)을 논(言)하고 그 가치를 정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평가의 한자어에 말(言)이 있는 것으로 보아 평가제도에 제기되는 다양한 목소리와 상반된 견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다.

 국민의 정부는 국가연구개발 예산을 꾸준히 확대시켜 올해의 경우 정부예산 대비 4.4% 수준인 4조1000억원으로 증액하였고 내년에는 예산의 5%를 투자할 계획이다.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이후 국가경제가 어려운 가운데에도 지속적으로 연구개발투자를 증대한 것은 과학기술진흥을 통한 국가발전이라는 정부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지만 동시에 관련부처와 과학기술계에는 증액된 예산을 한푼의 낭비없이 효율적으로 운영해야 하는 과제가 더욱 커지고 있다.

 현재 정부가 수행하는 주요한 연구개발평가제도는 크게 다음의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개별부처가 수행하고 있는 연구사업의 운영성과에 대한 평가다. 각 부처가 자신의 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시행하는 각종 국가연구개발사업의 정책목표 달성 정도, 사업간 중복 여부 등을 평가하는 것으로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매년 20개 부처를 대상으로 추진하는 ‘국가연구개발사업 조사분석평가제도’가 이에 해당한다.

 둘째, 위의 국가연구개발사업을 구성하는 세부적인 연구과제의 기획·선정·중간진도관리 및 결과에 관한 프로젝트 평가다. 이는 실제로 연구를 수행하는 현장의 연구자들과 직접 관련된 평가제도로 대학·연구소·산업을 망라한 광범위한 전문가들이 과제의 신청자로 또는 평가위원으로 참여하게 된다. 주요 연구개발 부처는 산하에 전문관리기구를 두어 평가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셋째, 정부출연연구소의 연구 및 경영성과를 평가하는 연구기관 평가다. 출연연구소의 역할과 위상정립 및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연구문화의 정착을 목표로 과학기술계 3개의 연구회에서 평가업무를 담당한다.

 이와 같이 국가과학기술위원회, 개별 부처, 기관들이 필요성에 따라 독자적인 평가시스템을 수립하고 실행함으로 인하여 일부에서는 평가의 목적과 대상이 혼재하고 일선 연구자의 행정부담이 가중되며 평가정보가 효율적으로 활용되지 못한다는 지적을 하기도 한다.

 연구개발예산 5%시대를 맞이하여 정부는 이러한 일부의 지적을 경청하고 납세자에 대한 책무(accountability)를 실현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먼저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수행하는 평가업무는 국가적으로 필요한 기술개발 분야 및 미래 주력산업을 선정하고 이러한 국가기술개발의 장기계획(master plan)에 준거하여 부처별 연구개발사업의 활동을 조정하고 연구개발 주체별 역할과 위상을 설정해 주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지금까지 각 부처 연구개발 프로그램의 운영성과에 대한 상대평가가 부처간에 논란이 되었으나 좀더 장기적으로는 조사·분석 활동을 강화하여 국가 전체적인 차원에서 자원배분의 우선순위와 방향을 정립하여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사회·경제적 환경변화에 따라 발생하는 주요 이슈에 대한 중점평가 및 정책중심의 평가를 주기적(예 3년)으로 실시하는 방안이 있다.

 다음으로 연구 프로젝트 평가는 형식적인 평가보다는 내용적이고 성과지향적인 평가를 통하여 다음 단계의 연구개발사업 운영에 필요한 실제적인 지침을 제공하여야 한다.

 우리의 경우 평가에 참여할 수 있는 전문가집단이 선진국에 비하여 규모가 작다는 제약이 있지만, 그동안 이를 보완하고 공정성·객관성·전문성을 갖춘 평가제도를 구축하기 위해 지속적인 개선과 성과를 이루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무수히 많은 과제에 대한 과도한 평가작업이 오히려 평가의 심도를 저해하지는 않은가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온정주의적인 평가문화를 극복하고 더욱 엄정한 평가제도를 정착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 신중하게 과제탈락률을 확대하거나 외국인 전문가를 활용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평가제도는 단지 연구성과의 기술적인 측정만이 아니라 제한된 사회적인 자원을 배분하는 권력과정이다. 엄정하고 생산적인 평가제도를 운영하기 위하여 정부는 필요한 노력을 강화하여야 하지만 평가과정에 참여하는 전문가 집단의 협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모두의 공동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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