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구두선 뿐인 디자인경영

◆정경원 한국디자인진흥원장 ceo@kidp.or.kr

일전에 휴대폰을 수출하는 모 회사의 사장을 만났더니 “결론적으로 디자인이 심각한 문제다. 해외전시회에 가보니 우리 것은 올드패션”이라면서, 앞으로 디자인 개발을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태산이라는 것이었다.

 또 상품의 경쟁력이 약해 고민하는 다른 업체의 사장을 만나 디자인 애로사항을 들은 적이 있다. 새로 디자인했는데 왜 잘 팔리지 않는지 모르겠다는 하소연이었다. 실상을 알아보니 개발비용을 아끼려고 기존 디자인을 부분 수정하는 데 그쳤기 때문이었다.

 이제 디자인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산업현장이나 벤처기업의 최고경영자도 이구동성으로 디자인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구두선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아직도 기업들은 디자인에 드는 돈이 경쟁력을 보장하는 투자라기보다는 비용이라는 의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산업 전반에 걸쳐 디자인이 중요하지만 특히 IT산업에서는 디자인 싸움이 치열하다. 상품의 라이프사이클이 짧아지고 전자상거래가 확산되어 원클릭으로 구매하는 상황에서는 디자인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앞으로 디지털 디자인 분야, 즉 e디자인 분야에서 누가 우위를 차지하느냐가 21세기에 승부를 가를 것이다.

 그런데 기업이 정작 전략적으로 세계 최고를 만들 디자인에 대한 개발에는 소홀하고, 디자인을 약간 개선하거나 경쟁자의 디자인을 모방하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문제가 크다. 디자인은 기업의 사활을 결정짓는 기업의 전략적인 요소라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즉 ‘디자인 경영’의 실천이 필요한 것이다.

 먼저 최고경영자가 독창적인 디자인 개발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그러나 관심을 가진다고 해서 디자인의 세세한 면까지 지나친 간섭은 금물이다. 디자인은 고도로 창의적인 작업이므로 전문가들에게 맡겨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디자인 부서가 기획이나 기술 등 타 부문과 동등한 위치에서 협력할 수 있는 디자인개발시스템 구성이 필수적이다. 좋은 디자인을 위해서 생산라인도 바꾸는 등 부수적인 여러 조건이 충족되자면 다른 부문과의 원활한 협조체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스템이 갖추어지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디자인이 있다고 해도 결국은 실현되지 못한다.

 우수 디자이너의 확보도 관건이다. 디자인은 두뇌산업이므로 그 수준이 결국 디자이너에 의하여 좌우되기 때문이다. 특히 브랜드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디자이너의 육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디자인 선진국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브랜드 뒤에는 예외없이 유명 디자이너가 있다. 좀더 효율적으로 디자인할 수 있도록 첨단 디지털 디자인 장비를 갖추고 디자이너들이 마음껏 아이디어를 제시할 수 있는 창의적인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기에는 턱없이 짧은 개발기간과 비좁은 작업공간 등 독창성이 경시되는 분위기에서는 참신한 아이디어는 물론 세계적인 수준의 디자인이 나오기가 어렵다.

 한 일본 자동차회사의 디자인 경영 성공사례를 보자. 이 회사는 미국내 고급 자동차시장에 도전하기 위해 디자인팀을 1년간 초호화 세계여행을 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안목이 높아진 디자이너들은 가장 조용한 엔진, 가장 안락한 의자, 가장 편안한 계기반을 갖춘 자동차를 디자인해 냈다. 그 결과 미국 고급 자동차시장에서 가장 단기간에 세계 고급자동차 대열에 합류하는 신기록을 수립했다.

 ‘디자인 경영’을 실천하는 기업에서는 디자이너의 역할도 두드러지게 된다. 디자이너는 거시적으로 기업의 이미지 메이커로서 역할을 한다. 기업의 이미지, 브랜드와 상품의 이미지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지에 주력하며 무엇보다도 개별 제품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해 준다. 또한 고객이 상품을 고르거나 어떤 서비스를 선택하게 될 때 기준으로 삼는 ‘매력’의 포인트를 만들어준다. 디자이너는 특히 미래 고객의 욕구를 예측하여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함으로써 문화까지 리드하는 역할을 발휘할 수 있다.

 이처럼 기업이 ‘디자인 경영’을 실천하며 사내, 국내외를 막론하고 역량을 결집하여 전략적으로 접근할 때 세계적인 수준의 디자인이 탄생할 수 있다. 최근 국가적으로도 ‘디자인 경영’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정부에서 디자인 경영을 잘하는 기업에 ‘디자인경영대상’을 수여하고 있다. 또한 디자이너가 경영의 전면에 나서고 있고 디자이너가 이끄는 디자인 벤처기업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제 디자인 경영의 실천이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새로운 처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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