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인 더 뉴스>동부전자 한신혁 사장

 ‘사우디아라비아 사막의 모래바람을 가르던 건설 전문가에서 첨단 반도체기업 경영자로.’

 지난 25일 비메모리 반도체 첫 상업생산을 시작한 동부전자 한신혁 사장(56)은 충북 음성의 반도체 공장(Fab)에서 만들어지는 웨이퍼를 보며 벅찬 감회에 빠진다.

 100년 대계를 위해 반도체사업을 해보자던 그룹 김준기 회장의 뜻을 받들어 사업 준비를 시작한 지 만 7년. 공장을 완공도 못한 채 IMF를 겪고 사업 중단의 위기까지 직면했던 그로서는 지난 일들을 생각하면 이번 첫 상업생산이 남다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필사즉생의 각오였습니다. 나라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위태로웠고 사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직원들을 내보내야 했지만 중도 하차를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룹의 미래를 위해서는 반드시 첨단산업으로 다각화할 필요가 있었고 그것이 제 임무였으니까요.”

 사실 한 사장은 반도체 전문가는 아니다. 오히려 지난 70년대 우리나라에 ‘중동붐’을 일으킨 중동 건설현장의 주역이었다고 하는 것이 더 걸맞다.

 74년 동부그룹에 입사해 75년부터 동부건설의 일원으로 11년간 사우디아라비아의 사막에서 밤잠을 설치며 세계 속의 한국을 건설하기 위해 청춘을 불살랐다.

 당시 동부그룹의 성장 배경이 된 해외 건설사업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86년 동부그룹 경영조정본부장으로 다시 한국에 들어와 동부산업 상무, 동부정보기술 초대 사장 등을 거쳤다.

 그야말로 ‘동부맨’으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왔다. 이젠 동부의 미래인 반도체사업을 진두지휘한다. 그러나 중책을 맡은 기쁨도 잠시. 예기치 않은 고난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IMF사태가 터질 줄 누가 생각했겠습니까. 그때만 해도 차입경영과 지급보증으로 대부분의 기업이 자금을 융통하던 시절이었는데 사방으로 자금줄이 막힐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한 사장이 그룹의 힘을 뒷받침으로 지난 97년 동부전자를 설립할 때만 해도 반도체 D램을 생산할 계획이었다. 84년 몬산토와 반도체 소재 기업인 코실(LG실트론의 전신)을 합작 설립, 국내 처음으로 웨이퍼를 양산한 경험이 있는 동부그룹으로서는 부가가치가 높은 D램 제조를 통해 새로운 세기에 대비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예기치도 않던 IMF로 투자가 중단되고 IBM과의 협력이 무산되면서 더이상 사업을 추진할 수 없는 위기에 봉착한 것. 300명이던 직원을 70명으로 줄이고 공장을 짓던 것도 중단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한 사장은 반도체사업을 포기하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망망대해 같은 사막의 건설현장에서 쌓은 경험으로 벼랑 같은 위기 뒤에도 반드시 탈출구가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새로운 아이템이 필요했습니다. 직원들을 내보내면서 다시 불러들이겠다고 한 만큼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새 사업을 찾는 데 남은 직원들과 밤낮없이 머리를 맞댔습니다.”

 그래서 찾은 게 바로 반도체 수탁생산(파운드리)사업. D램사업이 체산성 악화로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휘말린 반면 반도체 설계업체(Fabless)들의 증가와 대형 반도체업체들의 외주 제작 확대로 급부상하고 있는 파운드리로 방향을 급선회한 것이다.

 최근에는 전세계적으로 파운드리 수요가 달리는 상황이어서 D램보다는 훨씬 빠르고 안정적으로 시장 진입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더욱이 파운드리사업은 메모리사업에 집중돼 있는 우리나라의 반도체산업 구조를 비메모리로 다각화하고 중소 설계업체들을 육성해 반도체 선진국가로 성장하는 데 징검다리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지금도 한 사장은 사업 모델을 바꾸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위기가 오히려 기회가 됐다는 평가다.

 그간의 과정에서 가장 뼈저리게 얻은 교훈이 ‘기업의 투명성 확보와 임직원간의 신뢰감’이라고 말하는 그는 앞으로도 이 교훈을 실천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들어온 자금을 모두 투자유치 형태의 자본금으로 납입하고 부채를 최소화한 것도 모두 기업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또 이를 바탕으로 내년 말에는 나스닥에 직상장한다는 계획을 직원들과 함께 세웠다.

 어려운 과정에서도 회사를 등지지 않은 직원들에게는 스톡옵션 등을 통해 보답할 계획이다. 이보다 중요한 것은 신뢰감을 갖고 최대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마당을 마련해주겠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에게 “이젠 좀 건강에도 신경쓰고 여유있게 지내도 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그는 이제 막 생산에 들어가 그럴 여유가 없다고 말한다.

 “양산을 시작한 만큼 철저한 품질관리로 고객에게 최고의 기업으로 인정받는 것이 목표”라는 그는 주주이자 주고객인 도시바 외에도 고객을 다양화하고 추가투자를 유치해 생산능력을 늘리는 등 할 일이 수두룩하다.

 일요일에는 꼭 가족과 함께 교회에 가고 등산을 즐긴다는 그는 직원을 가족처럼 생각하는 친근한 경영자로 남고 싶다고 끝을 맺었다.

<정지연 jyjung@etnews.co.kr>

<약력>

 △45년 서울 출신 △경복고·서울대 경영학과 △67년 산업은행 △74년 동부종합상사 △75년 동부건설 상무 △86년 동부그룹 경영조정본부장 △86년 동부산업 상무 △87년 동부산업 전무 △88년 동부산업 부사장 △91년 동부그룹 종합조정실장 △94년 동부산업 사장 △97년 동부정보기술 사장 △97년 동부전자 사장(현) △가족 김부자씨(56)외 1남 1녀 △취미 등산·바둑 △종교 기독교 △주량 소주 1병 △혈액형 O형 △기업관 주주와 사회와 종업원에 기여하는 기업 △인생관 성실하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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