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존스 지음/ 김희백·김재희 옮김/ 김영사 펴냄/ 1만4800원
‘수학을 잘하는 유전자’나 ‘외국어를 빨리 습득하는 유전자’는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지난 2월 인간게놈지도가 완성되면서 인간 유전자를 둘러싼 궁금증은 그 어느때보다 증폭되고 있다. 학계에선 인간 본성을 놓고 ‘유전자결정론이다’ ‘사회문화결정론이다’하는 해묵은 논쟁도 다시 가열되고 있다.
하지만 일반인에게 유전공학은 아직 용어조차 생소한 전문적인 영역으로 남아있다. 책이나 신문에서 유전자 관련 소식을 접하기라도 하면 지레 겁부터 먹기가 일쑤다.
‘유전자 언어’는 그런 전문지식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주는 유전학 입문서다.
런던 대학 교수인 스티브 존스가 지은 이 책은 저자가 영국 BBC 라디오를 통해 강의한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대중강연의 내용을 담고 있는 만큼 쉬운 용어와 친숙한 비유로 그 어느 입문서보다 쉽고 재밌게 풀어쓴 게 이 책의 특징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유전학은 무엇인가’라는 원초적인 질문에 대해 ‘유전학은 하나의 언어’라고 정의한다.
언어가 대대손손 물려 내려오는 동안 언어공동체의 역사와 정서를 모두 간직하듯 유전학도 그런 궤적을 밟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유전자를 하나의 단어에 비유하고 단어가 변해 새로운 언어가 정착하듯 유전자가 변해 전혀 색다른 생물이 등장한다고 진단한다.
이 책은 저자의 이같은 비유를 바탕으로 인간 유전자의 구성, 유전자 변화에서 볼 수 있는 돌연변이와 성의 역할, 유전자 풀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자연선택 요인 등에 관해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유전학을 거시적이고 통찰적인 차원에서 먼저 접근한 뒤 구체적인 사례를 짚어가는 식이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100년전 살인사건, 합스부르크 왕가의 내력, 다윈의 일상 등과 같은 역사적 에피소드를 사례로 들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이 책은 이런 점에서 생물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도 막힘없이 읽어 내려갈 수 있다.
이 책 말미에서는 인간게놈지도가 야기할 낙관론과 비관론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예컨대 게놈지도의 완성으로 인류 질병에 대한 원인규명과 치료의 새지평이 열리고 있는 반면 우생학의 오류에 따른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인류의 출현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저자는 인간게놈 연구 결과로 빚어질 수 있는 윤리적 문제를 구체적 사례를 들어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정체성이나 삶의 가치를 논하는 일은 생물학자의 몫이 아니라는 입장을 취한다. 이런 문제는 소수 생물학자가 아닌 인류 전체가 머리를 맞대지 않고서는 쉽게 제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윤리적 문제에 대해 인류가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일반인도 이젠 유전학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을 갖춰야 할 때라고 주장한다.
<장지영기자 jyaj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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