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전자 유동성 위기 극복하나

현대전자가 배수의 진을 치고 나왔다. 박종섭 현대전자 사장은 13일 기자회견을 통해 『이번 정부와 채권단의 지원은 최대한도로 이뤄진 것이며 우리도 마지막으로 생각하고 자구노력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현대전자는 일단 급한 불은 껐다고 보고 있으나 업계와 금융계는 아직도 현대전자의 앞날이 험난하다고 보고 있다.

◇지원에 힘 얻은 현대전자=현대전자에 올해 만기 도래하는 차입금은 5조6700억원이다. 현대전자는 당초 △회사채 차환발행 2조9100억원 △가용현금 2조350억원 △신디케이트론 이월분 4000억원에 2000억원 추가 조달 △자산매각 1조원 △해외자금 유치 4000억원 등 총 6조9450억원을 조달해 해결하려 했다. 그렇지만 신디케이트론 미비, 채권단의 D/A 한도 축소로 인해 올들어 유동성 위기를 겪었다.

지난주에는 미국 현지법인이 부채를 갚지 못해 도산위기에 몰리기까지했다. 그러다가 정부와 채권단의 긴급지원으로 미국 현지법인 구제는 물론 자금수급에 일단 숨통을 텄다. 아직은 미지수나 박종섭 사장이 올 상반기까지 10억달러 규모의 해외자본을 유치하는 계획이 성사되면 현대전자는 유동성 위기에서 한걸음 비켜나게 된다.

◇넘어야 할 산들 =문제는 현대전자의 이러한 계획이 D램 시장의 조기 활성화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업계에 따르면 현대전자는 올들어 지난달까지 매출이 지난해 11, 12월과 비교해 30% 이상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 수입원인 D램 가격이 급락해 일부 품목의 경우 원가 밑으로 떨어져 1분기 영업이익이 1350억원(대우증권 분석)에 그칠 전망이다. 2분기부터 사정이 나아진다고 해도 올해 영업이익 규모는 1조원을 간신히 웃돌아 현대전자가 목표로 한 2조원 달성은 힘들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2분기부터 시황이 나아진다는 전망도 연말께로 수정되는 등 날로 불투명해지고 있다. 자산매각도 여의치 않다.

현대전자는 유가증권 및 사옥·수처리 시설 등 비영업 자산을 매각해 상반기에 4000억원, 하반기에 6000억원을 조달할 계획이다. 그러나 현대전자는 모 외국기업에 매각키로 한 수처리시설도 최근 가격문제로 난항을 겪는 등 자산매각 작업 전반이 부진하다. 매각 자체도 쉽지 않지만 매각한다고 해도 상대방이 현대전자의 약점을 갖고 값을 깎아내리려 할 게 뻔하다. 자산매각을 통한 1조원 조달은 현실적으로 절반도 성사시키기 힘들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이번에 채권단의 지원으로 현금 유동성은 나아졌지만 영업이익과 자산매각에서 생긴 구멍으로 현대전자는 올해 내내 빠듯한 살림살이가 불가피하다.

◇출자전환의 가능성 =이러한 상황을 들어 업계 및 금융권에서는 현대전자의 차입금을 자본으로 전환하는 게 유일한 방법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이러한 소문이 증권가에 나돌았다. 이에 대해 박종섭 사장은 『채권단 또는 관계기관으로부터 출자전환을 요청받은 적도 없으며 검토하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이는 사실상 법정관리인 출자전환과 같은 상황에 이르지 않도록 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풀이된다.

하지만 최근 반도체 시황이 날로 악화되고 있으며 통신 및 LCD사업 매각과 같은 자구계획도 현대전자의 현금 유동성 확보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 않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태가 2분기에도 지속될 경우 현대전자는 가장 원치 않는 시나리오인 출자전환이나 반도체 부문 매각을 심각히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전자는 상반기 중 10억달러의 외자유치 성사 여부에 따라 회생의 길을 찾을 수도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박종섭 사장 일문일답>

- 현대전자의 방식은 빚을 내 빚을 갚는 형태라는 지적이 높다.

▲ 올해 1조5000억원 정도 모자라지만 D/A 등 자금일부 상환으로 현금이 들어오고 있고 해외자금도 조달할 수 있어 무난하다. 금융권의 지원은 단기적으로 큰 도움이 된다.

- 작년에는 D램 가격을 4달러로 전망했다. 미국 현지법인 상황을 보면 동맥경화 상태가 아닌가.

▲ 2분기 전망을 3.3달러에서 2.6달러로 낮춰잡았다. 3분기부터는 가격이 오를 것이다. 미국법인 문제는 일시적인 자금경색으로 생겼다. 그러나 금융권의 지원으로 시간도 벌었고 회생도 가능하다.

- 경영권 문제는 어떻게 되나.

▲ 선진국은 이사회를 통해 경영한다. 아마 경영권 행사는 이사회를 중심으로 투자 및 제품 결정에 참여하는 정도일 것이다.

- 현대전자는 신규투자가 미미한데.

▲ 지난해 1조9000억원을 투자했고 LG합병 부문은 이미 투자된 것으로 본다. 따라서 이를 바탕으로 신기술 개발에 주력할 생각이다. 12인치 시대는 적어도 1년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다.

- 감산 가능성은.

▲ 가격이 떨어질 때마다 나오나 최근 D램 재고가 소멸되고 있어 아직은 시기상조다. 실질적인 감산효과를 낼 수 있도록 제품다변화를 추진할 생각이다.

- 반도체라인을 LG에 되팔 생각은 없나.

▲ LG도 관심과 여력이 된다면 고려대상은 될 수 있으나 지금은 반도체 부문을 성공시키는 것이 목표다. 현재로선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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