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대 오른 통신시장>(1)경쟁의 실종

◆정보통신부가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국내 통신시장을 3개의 종합통신사업자 정립체제로 유도하겠다는 방침을 공식화, 새로운 경쟁정책 방향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부의 시각에 따라 국내 통신산업의 큰 그림은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수술대에 오른 통신시장의 경쟁 현황 및 문제점, 전망, 바람직한 정책적 대안을 5회에 걸쳐 긴급 점검한다. 편집자◆

『이대로 가다간 문을 닫을 수밖에 없습니다.』(초고속인터넷서비스업체 사장) 『매일 은행 마감시간에 쫓겨 부도위기를 넘기는 하루살이 인생입니다.』(회선임대사업자 대표) 『도저히 경쟁이 안됩니다. 기껏 시장을 개척, 선점효과를 기대했지만 기존 거대기업이 들어오면서 싹쓸이를 당했습니다.』(시내시외전화사업체 사장) 『1, 2위 사업자가 비동기로 가는 판에 동기 IMT2000을 선택하라는 것은 죽으란 말이나 다름없습니다.』(IMT2000 추진업체 대표)

경쟁이 실종됐다. 시장경제의 핵이라 할 경쟁체제가 한때 가장 활성화된 분야로 취급됐던 통신시장이 짧은 경쟁시대를 마감하고 독과점 체제로 급격히 회귀하고 있다. 40개가 넘는 기간통신사업자 수가 10개 미만으로 줄어들었고 이동전화 등 그나마 외형적 경쟁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역무마저 도저히 경쟁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극한적 시장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다급해진 정부가 제3의 종합통신사업자를 육성, 새로운 경쟁환경을 창출하겠다고 청와대에 보고했지만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대부분이 부정적이다. 이미 알맹이는 한국통신과 SK텔레콤이 모두 챙긴 후인데 설사 자금력과 기술력을 확보한 제3의 사업자가 등장하고 정부의 지원까지 받는다 해도 부실덩어리인 후발주자들을 끌어모아 시장경쟁력을 갖추기란 이미 불가능한 상황에 몰려 있다는 분석이다.

통신 3강체제 정립으로 경쟁구도를 끌고 가겠다는 것이 정부 복안이지만 업계에서는 3강이 아닌 2강1약이 될 것이라고 분석한다.

◇문제는 정부의 의지=데이콤 설립을 신호탄으로 정부가 지난 10여년간 일관되게 추진해온 경쟁활성화 정책이 「시장의 심판」을 통해 원점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정부는 심각한 상황으로 인식한다. 물론 정부는 경쟁정책의 수립, 추진과정에서 시장 환경이 급속도로 변화해 이같은 결과를 초래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위기에 직면한 후발주자들은 오늘의 현실을 정부가 자초했다고 비판한다. 경쟁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정부가 취해야 할 조치, 예컨대 시장진입장벽 제거는 고사하고 공정경쟁을 겨냥한 「심판의 역할」마저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후발주자들은 기득권을 갖고 있는 한국통신이 망을 전면 개방하고 접속료 산정 등에서도 배려가 있어야만 경쟁이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물론 기득권 포기를 의미하는 이같은 조치를 한국통신 스스로 단행하기란 쉽지 않아 결국 정부가 제도적으로 이를 보장해야 하고 현장에서 이행 여부를 철저히 관리감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정부가 정책적으로는 경쟁체제를 존속시켰지만 실제 상황에서는 기득권 사업자의 우월적 지위 이용을 제어하지 못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이동전화 역시 SK텔레콤의 신세기통신 합병을 허용했고 삐삐나 무선데이터 등 서비스 성격이 비슷해 이동전화에 흡수 일보 직전인 역무들에 대한 대책도 미흡했다는 지적이다.

◇수술 불가피한 현실=정부의 발표대로라면 한국통신과 SK텔레콤을 제외한 대부분의 후발주자들은 대규모 적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망사업자의 경우 엄청난 예산을 쏟아부어야 하기 때문에 1조원에 가까운 자본금으로도 모자라 1조원 이상의 부채를 지고 있다.

이들은 초고속인터넷을 비롯, 사업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망 및 설비투자가 불가피해 마이너스인줄 알면서도 투자비를 조달해야 한다.

덕택에 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기업들이 지분매각, 해외투자 등을 유치하기 위해 발벗고 나서지만 자금시장의 평가는 통신사업을 거대한 「부실덩어리(?)」로 낙인찍고 있어 탈출구가 없다. 이대로 가다가는 한국경제 전체의 짐이 될 판이다. 어떤 식으로든 수술이 불가피하다.

◇제3사업자는 1약=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 제3사업자를 등장시켜 통신시장 구조조정을 유도키로 했다.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특히 동기식 IMT2000을 매개로 이를 실현한다는 구체적 모티브도 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어떤 제3사업자가 등장하더라도 한국통신과 SK텔레콤의 양강 구도에 끼어들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결국은 2강1약 체제로 간다는 논리다. 제3사업자로 끌어들일 대상이 시장점유율, 적자규모, 전망 등에서 「패잔병」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통신시장 환경이 변하면 정책도 변해야 한다. 정부가 경쟁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밝힌 것은 그래서 더욱 주목된다.

<이택기자 etyt@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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