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커런트]광대역인터넷시대의 콘텐츠

느린 속도 때문에 「인(忍)터넷」으로 불릴 만큼 사람을 짜증나게 하던 인터넷에 속도가 붙고 있다. 「인터넷에 더 이상 모래시계는 없다」라는 한 인터넷서비스업체(ISP)의 광고 문구처럼 일반 가정에서도 수십MB 용량의 동영상 파일을 쉽게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인터넷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인터넷의 고속화는 기존 전화모뎀 위주의 접속 방식에서 벗어나 케이블모뎀, 디지털가입자회선(DSL)서비스 같은 다양한 광대역(broadband)인터넷서비스가 널리 보급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 같은 광대역인터넷서비스의 대중화는 인터넷의 내용물인 콘텐츠에도 많은 변화를 요구하게 되었다. 예전처럼 홈페이지 방문자를 붙잡기 위해 전송시간이 오래 걸리는 동영상을 배제하고 텍스트 위주의 사이트를 제작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다양한 멀티미디어 콘텐츠 개발을 통해 적극적으로 네티즌들을 유혹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됐다.

포레스터리서치(http://www.forrester.com)와 공동으로 기획하는 「EC커런트」 열네번째 이야기는 광대역인터넷서비스의 대중화로 달라지는 콘텐츠에 대해서 미국을 중심으로 알아본다. 편집자

광대역인터넷시대의 콘텐츠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 우선 광대역인터넷의 정의를 내린다면 「PC의 전원이 켜 있을 때 계속 인터넷에 접속되어 있으며 전송속도는 항상 200Kbps 이상을 유지하는 것」으로 포레스터리서치는 규정하고 있다.

현재 미국은 이러한 광대역인터넷서비스가 놀라운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DSL서비스 부문에서 수위를 달리고 있는 SBC커뮤니케이션스는 일주일 평균 1만7000건의 설치 접수를 받고 있으며 대부분의 DSL업체들이 하루 평균 4000명의 신규 가입자를 얻고 있다.

이러한 추세라면 DSL과 케이블모뎀서비스를 포함한 미국의 광대역인터넷 가입자 수는 올해안으로 500만 가구를 넘고 2005년에는 5000만 가구에 이를 전망이다. 표1참조

하지만 이같은 광대역인터넷서비스의 급속한 확산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인터넷업체들은 멀티미디어 콘테츠 도입을 주저하고 있다. AOL이나 ESPN 같은 업체들은 자신들의 사이트에 아직 용량이 크고 전송시간이 오래 걸리는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많이 담지는 않고 있다. 이들 업체는 광대역인터넷서비스가 더 확산된 후에 자신의 사이트를 멀티미디어 중심으로 개편할 계획이다.

사실 멀티미디어 콘텐츠는 홈페이지 운영비용의 증대를 불러온다. 광대역인터넷서비스에 적합한 멀티미디어의 인코딩 비용은 동영상 클립 하나당 400달러 가량의 추가 비용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CNN의 경우 아카마이, i빔 같은 콘텐츠전송서비스업체에 동영상 클립의 스트리밍 비용을 지불하는 것을 포함해 50만달러를 콘텐츠 예산으로 할당해 놓고 있다.

또 수익성이 적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콘텐츠제공업체 디지털엔터테인먼트네트워크는 연간 6000만달러라는 막대한 지출을 했지만 정작 콘텐츠 판매를 통한 수입은 37만달러에 그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여져 결국 문을 닫았다.

그리고 일반 콘텐츠에 비해 로딩 시간이 배로 걸리는 멀티미디어 콘텐츠는 자칫하면 자사 홈페이지 방문자의 수를 급감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업체로서는 그 도입에 있어 신중할 수밖에 없다. 아직 전화모뎀을 통한 접속자가 많은 상황에서 섣불리 홈페이지를 광대역인터넷서비스 이용자 위주로 바꾼다면 자칫 「소탐대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무시할 수만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앞에서 언급됐듯이 광대역인터넷서비스 가입자들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고 점점 더 많은 네티즌들이 보다 화려하고 다양한 콘텐츠를 원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터넷업체들은 하루 빨리 광대역인터넷서비스에 적합한 콘텐츠를 확보해 고객들을 유혹해야 한다.

더구나 광대역인터넷 시대에는 인터넷에 접속하는 수단이 기존의 PC중심에서 TV, 게임기, 오디오 등 여러 단말기도 다변화된다. 따라서 이에 적합한 콘텐츠를 확보하고 적절한 전략을 세우는 것이 치열한 인터넷시장에서 살아남는 데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로 꼽히고 있다.

◇광대역인터넷 확산에 따른 변화

네티즌들은 점점 더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선호하게 될 것이다. 먼저 음악에 대한 이용자들의 관심이 크게 늘어나 2002년에는 약 500만명이 인터넷을 통해 음악을 내려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인터넷업체들에도 많은 변화가 따를 것으로 보인다. 포레스터는 멀티미디어를 포함한 다양한 콘텐츠 도입에 따라 모든 분야의 콘텐츠를 다루는 포털사이트는 힘을 잃을 것으로 전망한다. 뉴스, 스포츠중계, 교육 등 보다 세분화된 형태로 사이트가 운영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광대역인터넷 확산에 따른 가장 큰 변화는 콘텐츠에 따라 인터넷 접속기기가 달라진다는 점일 것이다.

「EC커런트」 여덟번째 이야기(인터넷접속기기 다양화시대의 전자상거래)에서 다뤘던 것처럼 많은 가정에서 세트톱박스를 장착한 양방향TV, 고속모뎀을 내장한 게임기, 인터넷을 통해 음악파일을 자유롭게 내려받을 수 있는 오디오 등 2가지 이상의 단말기를 이용해 인터넷에 접속할 것이다.

포레스터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03년에는 1740만 가구, 2005년에는 4180만 가구가 인터넷 접속을 위해 PC와 함께 다른 인터넷단말기를 동시에 이용할 전망이다. 표2참조

그중에서도 인터넷접속기기의 새로운 중심축으로 떠오를 TV와 여전히 인터넷 접속기기로 많은 사랑을 받을 PC는 각각 인터넷 이용행태의 새로운 유형을 만들 것으로 보인다.

우선 TV는 인터넷 콘텐츠에서 오락적인(엔터테인먼트) 측면을 담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람들은 영화, 뮤직비디오, 쇼프로그램 같은 보고 즐기는 콘텐츠를 더 이상 PC로 감상하지 않을 것이다. PC 앞에서 의자에 앉아 마치 공부를 하는 자세로 여가를 즐기기 원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이 같은 수요 증가에 따라 2003년에는 세트톱박스를 내장한 TV의 보급대수가 2000만대를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PC는 보다 실제적이고 양방향의 작업을 하는 데 쓰일 것이다. 2003년에 3800만대가 광대역인터넷 접속에 사용될 것으로 보이는 PC는 회사 네트워크 접속을 통한 온라인 재택 근무나 상대방과의 지속적인 의견교환(혹은 데이터 교환)을 요하는 일을 맡을 것이다.

또한 PC는 소프트웨어 구매 및 업그레이드에 있어서도 많은 역할을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이용자가 워드프로세서의 새로운 버전을 구매하길 원하거나 프랑스어 사전 같은 특정 구성요소 설치를 원한다면 광대역인터넷에 접속해 필요한 프로그램을 내려받는 것으로 이를 해결할 수 있다.

이밖에 2003년께 1600만대가 보급될 게임기도 광대역인터넷 접속의 한 축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게임기가 인터넷 접속 기능을 갖춤에 따라 이용자들은 가정에서 손쉽게 친구 또는 먼 나라의 이름 모를 게이머와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된다.

접속기기 다변화 외에 광대역인터넷의 활성화로 나타날 또다른 변화는 홈네트워킹의 확산이다. 2003년 홈네트워크를 구축한 가정은 모두 700만 가구에 이를 전망이다. TV, PC, 게임기 등을 하나의 네트워크 환경으로 묶어주는 홈네트워크는 PC로 내려받은 콘텐츠를 TV나 게임기 등 다른 단말기로도 손쉽게 즐길 수 있게 해줄 것이다.

◇광대역인터넷시대의 전략

△콘텐츠제공업체(CP)와 광대역 인터넷서비스제공업체(ISP)는 상호간에 긴밀한 협력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NBC, ESPN 같은 업체들은 자사의 프로그램이 ISP들이 제공하는 VOD서비스에 포함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마찬가지로 SBC와 버라이존 등은 보다 풍부한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해 CP들과 제휴해야 한다.

△포털업체들은 새로운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통해 즐기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PC가 아닌 TV에 의존하게 되면서 야후 같은 업체들은 화려한 멀티미디어보다는 더욱 빠르고 간편한 검색 기능을 지원하는 데 치중하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

△홈페이지 운영자들은 관련 소프트웨어 지원에 신경써야 한다. 다양한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게 되면 사이트 방문자들은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실행프로그램을 필요로 하게 된다. 따라서 DLJ다이렉트 같은 경제전문사이트는 보다 구체적인 포트폴리오 분석을 가능케 하는 소프트웨어를, 내셔널지오그래픽처럼 많은 동영상과 이미지를 제공하는 사이트는 동영상·그래픽용 소프트웨어를 완비해야 한다. 이 경우 어떠한 실행프로그램을 채택하느냐는 방문자들의 사이트 이용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자신이 해당 사이트에서 콘텐츠를 즐기기 위해 필요한 프로그램을 갖고 있는지 아니면 새로 내려받아야 하는지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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