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시스템을 갖추면 좋다는 것을 누가 모릅니까. 그러나 요즘 같이 자금난이 심각한 상황에서 생산설비 늘리는 것도 버거운데 정보시스템에 투자할 여력이 있겠습니까.』
수정디바이스 제조업체인 A사의 김 사장은 과연 중소 제조업체 가운데 제대로 된 정보시스템을 갖춘 곳이 몇이나 되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중소기업이 정보시스템에 투자하는 일이 쉽지 않다고 지적한다.
매출액 100억원 이하의 중소규모 업체들이 컴퓨터를 업무에 활용하는 것은 PC상에서 운용되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표계산 SW인 엑셀을 이용해 재고를 관리하는 정도가 고작.
그나마 매출액 200억∼300억원의 비교적 규모가 큰 중소기업들은 최근 들어 조금씩 중소기업용 ERP 등을 도입하기 시작하는 추세다.
전자부품 B2B사이트를 운영하는 아이티프로콤의 정재득 사장은 『대부분의 중소기업이 아직까지 정보시스템을 도입하지 않고 주먹구구식 경영에만 의존하고 있다』며 『경영자가 회사의 자산 규모가 정확히 얼마인지도 모르고 재고 파악이 안된 업무 담당자는 재고를 나두고 새로 구매에 나서는 웃지 못할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말한다.
또 정 사장은 『이같은 불투명한 경영구조는 곧바로 경영손실로 이어져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며 『최근 다양한 제품이 선보이고 있는 저가형 ERP만 도입해도 기본적인 업무처리는 가능하기 때문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산업화에서 정보화로 넘어가는 시장 환경에서 국내 부품업체들은 주먹구구식 경영에만 매달리고 있는 데 따르는 문제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재고·자재·생산·판매 등 대부분의 업무를 최고경영자의 직관에 의존하고 있는 국내 부품업체를 찾아가 보면 십중팔구는 쓰지 않는 재고를 창고에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업계에서는 세트업체와 부품업체들이 떠안고 있는 불용·잉여재고의 규모가 연간 1조원을 넘어서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또 정보화가 되지 않다 보니 정확한 재고규모가 파악이 안되고 이같은 점을 악용해 기업 내부자의 재고 빼돌리기나 차떼기식 잉여·불용재고 처리가 이뤄질 개연성도 높은 상황이다. 이같은 불투명한 경영은 곧바로 원가에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게 된다.
중요한 경쟁요소로 부각하고 있는 적기출하가 이뤄지지 못한다는 것도 문제다. 더욱이 전자부품의 경우 최근 들어 국내 기업들이 대만·중국 등과 가격만으로는 경쟁이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기 때문에 이들과의 차별화를 위해서는 품질과 함께 적기출하가 더욱 강조되고 있다.
정재득 사장은 『중소부품 업체들이 대기업이나 해외 거래처를 뚫기 위해서는 제품의 품질과 가격 이외에도 적기공급이 가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찌감치 정보시스템을 도입한 기업들은 해당분야에서 선두업체로 자리매김, 적지 않은 혜택을 누리고 있으며 새로운 정보기술을 받아들이는 데도 적극적이다.
자동차용 커넥터업체인 한국단자공업은 이달 새로 구축한 오라클의 ERP시스템을 기존 시스템에 연동시켜 가동에 들어갔으며 내년초에는 아예 기존 시스템을 철거할 계획이다. 이 회사가 새 ERP를 도입하게 된 것은 통신부품으로 사업을 다각화하면서 경영지원시스템·의사결정지원시스템 등의 기능을 강화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 회사의 이원준 이사는 『기존 시스템의 경우 필요한 정보를 출력하기 위해서는 전산실에 의리해 일일이 프로그램을 작성해야만 했지만 새 시스템은 현업 담당자가 원하는 형태로 즉석에서 가공된 자료를 뽑아볼 수 있다』며 『정보시스템 도입이 당장 매출증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인력 등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에 기업의 경쟁력을 배가시켜준다』고 설명한다.
필름콘덴서업체인 필코전자 역시 IBM의 AS400을 기반으로 생산·재고·경리·회계 등의 전반 업무를 처리하고 있으며 내년에는 AS400 대신 최신 기종의 서버와 함께 ERP를 도입할 계획이다.
수정디바이스업체인 써니전자도 전산실을 중심으로 자체 개발한 생산·영업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자체적으로 ERP 프로그램을 개발, 자재분야를 강화한다는 목표다.
중소 부품업체들이 정보화가 기업활동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되는 줄 알면서도 쉽게 나서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금 문제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정부의 정책적인 배려와 실질적인 지원이 아쉽다고 입을 모은다. A사의 김 사장은 『만일 정부에서 ERP를 도입하는 기업에 세제상의 혜택 등과 같은 인센티브를 부여한다면 ERP를 도입할 것』이라고 말한다.
또 중소기업 내에 정보화를 추진할 만한 인력이 거의 없기 때문에 중소 부품업체들이 섣불리 정보시스템 도입에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이에 따라 국가적인 차원에서 중소기업 실무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정보화 교육 등이 수시로 이뤄져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정재득 사장은 『정보화는 기업이 경쟁력을 갖추는 데 필요한 기본 인프라기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전문인력을 양성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밖에 최고경영자들에게 정보시스템을 도입하면 반드시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인식시켜 마인드를 재고하는 것도 필요하다. 현재 국내 중소 부품업체들의 정보화 수준은 대부분 아직까지 단순 홈페이지 운영, 단독형 PC를 기반으로 한 표계산 소프트웨어의 활용 정도에 머물고 있다. 이들은 앞으로 기본적인 정보시스템을 도입하는 것 이외에도 인트라넷 및 그룹웨어, 전자상거래 수많은 넘어야 할 산을 눈앞에 두고 있는 셈이다.
<황도연기자 dyhw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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