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삼국지 아시아 IT대로망>7회-박막(薄膜)대전[상]

사회학의 연구방법론의 하나로 「쓰레기학」이라고 있다. 쓰레기를 통해 그 지역의 사회상을 유추해 내는 방법론이다.

90년대 중반까지 삼성전자와 LG전자의 LCD사업부(LG필립스LCD)가 파견한 일본주재원들은 바로 쓰레기를 뒤지는 사회학자들과 다를 바 없었다.

연구대상은 샤프, 도시바 등 일본의 액정표시장치(LCD)업체들. 하루 온종일 공장 주변을 돌며 쓰레기를 들춰 보는 게 이들의 일과였다.

내로라하는 대학을 나와, 그것도 한국의 간판 기업에 근무하는 이들은 이국땅에서 쓰레기나 줍는 신세가 한탄스러웠다. 그렇지만 이따금씩 쓰레기더미속에서 어떤 장비로 어떤 공정을 쓰는지 일러주는 설계도면이나 폐품을 찾으면 뛸듯이 기뻤다.

「한국의 LCD신화」는 바로 보이지 않는데서 고생한 이들의 노력덕분에 이뤄졌다.

사실 초창기 한국의 LCD산업이 오늘날처럼 발전하리라고 믿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신화의 주역인 삼성이나 LG 역시 처음엔 반신반의였다. 사업담당자들은 막대한 투자에 대한 성과가 곧바로 나타나지 않아 좌불안석이었다.

일본의 LCD산업은 막강했다. 한국의 엘리트들을 「양아치」로 만들 정도로 기술 장벽도 높았다.

단적인 사례 하나. 오리온전기는 일본 도시바와 제휴해 저가형 STN LCD사업을 추진했다. 도시바에서 쓰는 생산라인을 그대로 들여왔다.

그런데 도시바에서 파견한 사람들이 떠나자 수율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운영 노하우를 전해주지 않아서다. 이후 오리온전기는 한참동안 고생했다.

일본업체들은 지난 73년 샤프가 LCD를 처음 상용화한 이후 20년 넘게 세계 LCD시장을 지배했다.

D램 반도체시장을 한국에 빼앗긴 기억이 생생하던 때여서 박막트랜지스터(TFT) LCD시장도 전철을 밟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높았다.

특히 일본업체들은 90년대 들어 새로 등장한 TFT LCD 기술의 이전에는 극히 민감했다.

TFT LCD에 대한 투자를 계획한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전자 등은 액정 공정기술은 물론 장비, 재료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다.

선발주자인 일본업체와의 제휴가 절실했다. 그렇지만 내미는 손마다 허공속에 맴돌았다.

막상 협력해도 일본 업체들은 정작 기술 이전에는 딴전만 피웠다.

삼성과 LG는 독자적으로 기술을 개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 제품을 사다가 뜯고 재조립하면서 기술을 연구해 기술 격차를 좁혀나갔다.

드디어 국내업체들도 노트PC용 10.4인치 제품을 개발, 95년에 시장에 본격 뛰어들었다.

일본업체들은 이를 용서할 수 없었다. 샤프는 삼성전자 등의 10.4인치 시장 진출로 공급 과잉이 우려되자 미리 준비해 놓은 11.3인치 제품을 서둘러 시장에 내놓았다.

어렵사리 개발해 생산에 들어한 한국 업체들은 숨이 막혔다. 막대한 투자비도 건지지 못한 채 새로운 신규 투자에 들어가거나 사업을 포기해야 할 지경이었다. 진로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해야 했다.

신은 언제나 새로운 문을 열어둔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새로운 운용체계(OS)인 「윈도95」의 등장은 국내 업체들에게 「복음」이었다.

노트PC로 「윈도95」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종전보다 화면이 커야 유리했다. 국내업체들은 10.4인치나 11.3인치 모두 A4 크기의 문서를 한 화면에 담지 못한다는 점을 눈여겨 봤다. 삼성전자는 11.3인치 대신 12.1인치 제품에 맞는 양산라인에 투자키로 결정했다.

새로운 규격이라서 기술적인 어려움이 많았다. 더욱 큰 문제는 시장의 냉담한 반응이었다. PC업체 가운데 이제 시작한 한국업체의 새 규격을 채택하려는 모험가는 없었다.

삼성전자의 영업 담당자들은 델컴퓨터를 문턱이 닳도록 들락거렸으나 번번이 거절만 당했다.

삼성전자는 전략적으로 도시바를 끌어들였다. 도시바도 차세대 노트PC용으로는 12.1인치가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도시바 역시 독자적으로 TFT LCD사업을 펼치면서 샤프, NEC 등 선발업체와의 격차를 좁힐 필요가 있었다.

도시바가 채택하자 델컴퓨터도 삼성 제품을 쓰기로 했다.

12.1인치 제품이 나오자 폭발적으로 시장이 커졌다. 샤프는 비상이 걸렸다. 시장이 11.3인치가 건너 뛰려했기 때문이다. 서둘러 12.1인치 제품의 양산 투자에 들어갔으나 11.3인치는 샤프의 발목을 계속 붙잡았다. PC업체와의 계약 때문에 생산을 중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단 한번의 판단 착오로 20여년간 왕좌를 지킨 샤프는 그 아성에 금이가기 시작했다.

처음 승리를 맛 본 한국업체들의 공세는 더욱 거세어졌다.

12.1인치가 주종을 이루던 지난 98년 삼성과 LG는 13.3인치와 14.1인치에 주력했다. 올 들어서는 15인치 이상과 모니터용 제품에 집중하고 있다.

97년 경영난을 겪던 일본 전자업체들은 외환난에 직면한 한국업체들이 1조원에 육박하는 TFT LCD 양산라인 투자를 중단할 것으로 봤다. 심각한 착각이었다.

삼성, LG는 95년 반도체 호황기에 걷어들인 수익을 TFT LCD에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이때 투자는 98년 삼성전자가 1위, 99년 LG필립스가 2위로 떠오르게 한 힘이 됐다.

올해에도 삼성과 LG필립스는 일본업체가 4세대 라인에 투자하는 상황에서 이미 가동에 들어갔으며 5세대 라인도 착공했다. 예년과 달라진 것은 반도체가 아니라 TFT LCD사업에서 확보한 이익을 재투자한다는 점이다.

일정한 수율을 확보하면 투자가 곧 매출로 이어지는 TFT LCD사업의 특성상 2, 3년 뒤에도 한국업체의 독주는 정해진 수순이다. 일본 업체들도 여기서 멈출 수 없었다.

『어떻게 만든 왕국인데 한국에 그냥 내주란 말인가.』

일본 업체들도 비록 녹은 슬었지만 여전히 날은 예리한 검을 꺼내들었다. 그런데 일본업체들은 그 칼을 직접 쓰지 않고 대만업체에 줬다. 「내 대신 베라.」

대만업체들은 일본업체의 지도를 받으며 열심히 무공을 쌓았다. 새로운 세기를 앞두고 중원에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업체들은 잔뜩 긴장했다. 새로운 무사의 무공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땅을 갈라먹는 게 걱정됐다.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새로운 대만업체가 나오자마자 TFT LCD 가격이 폭락했다. 관객들은 세 무사의 혼탁한 대결을 맘껏 즐기려 했다.

하지만 아직 대만 무사의 무공은 일천했다. 일본업체들이 예전에 한국업체에 그러했듯이 칼만 주고 핵심 검법을 일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타격을 받으리라고 기대했던 한국업체들은 더욱 가격 공세를 펼치는 게 아닌가.

오히려 대만업체의 등장은 일본업체들에 고민을 안겨줬다. 가격 폭락하면서 예정했던 투자 계획도 늦춰야할 판이었다.

일본업체들은 작전을 다시 바꿨다. 서로 힘을 모아 내공을 기르기로 했다.

지난 여름 샤프, NEC, 후지쯔, 미쓰비시전기, 도시바 등은 패널 크기의 국제표준 등과 차세대기술을 개발하는 「연구회」를 설립키로 했다.

또 유리 등 핵심부품의 효율적인 공급을 위한 「공동 전송센터」도 설치키로 했다.

여기에는 통산성도 가세했다. 통산성은 공동 사업뿐만 아니라 LCD업체에 대한 보조금 지원 등 다양한 지원 계획을 내놓았다.

관민 합동사업은 이미 반도체 등에서 여럿 있었으나 LCD 분야에서는 처음이었다. 반도체라면 몰라도 적어도 LCD산업에서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지가 뚜렷하다.

이에 비해 한국은 승리에 도취돼 있는 듯하다. 사실 한국의 LCD산업은 이제 시작이다. 삼성전자와 LG필립스가 1, 2위를 차지하고 있으나 여전히 세계 시장 점유율은 일본이 앞선다.

기반도 취약하다. 삼성과 LG는 각각 계열사를 수직계열화해 핵심 부품의 조달체계를 갖췄으나 일본업체만큼 탄탄하지 않다.

장비 역시 국산화가 미진해 여전히 일본 장비를 사다 쓰고 있다.

제조기술은 세계 최고이나 원천기술은 아직 미흡하다. 그런데도 정책당국은 「돈을 많이 벌었는데 굳이 지원할 필요가 있겠느냐」라고 되묻는다. 올해 뉴프런티어 프로젝트에서 LCD관련 기술개발 과제는 탈락했다.

다행히 1, 2위 업체를 보유해 일본의 장비, 부품·소재업체들이 한국업체와 계속 거래하기를 원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관계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그래도 한국 LCD산업의 미래는 희망적이다. 이유는 단 하나다. 업체들의 「헝그리 정신」이 아직 살아있기 때문이다.

우리 연구원들은 기술 하나를 더 배우려고 일본 엔지니어와 먹지도 못하는 술을 억지로 마셨던 사람들이다. 쓰레기더미를 뒤졌던 사람들도 이제 중견 간부로 컸다.

이들은 시장상황이 더 나빠져도 우리만큼은 살아 남는다는 확신에 가득찼다.

세계 관객들은 한국업체의 헝그리정신과 일본업체의 일치 단결이 맞붙는 「제2차 박막대전」을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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