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같지 않은 음악을 이젠 모두 집어치워 버려야 해. 우리가 너희들 모두의 귀를 확실하게 바꿔줄게. 기다려! 진짜인 우리가 돌아와∼ 진짜를 보여줄게. (중략) 힘들고 지쳐 외로워도 너희들을 위해∼ 진정한 힙합을 위해!」
형형색색으로 물들인 머리에 헐렁한 힙합바지를 입고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TV앞에 모인 시청자들을 향해 거친 손짓으로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고 외치는 드렁큰 타이거. 20대 초반의 재미교포 2세인 이들이 힙합의 진수를 보여주겠다며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가사를 괴상한 춤과 함께 빠르게 쏟아냈을 때 대다수 기성세대들은 낯설고 약간은 불쾌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길거리에 나서면 여기저기서 허리끈을
길게 늘어뜨린 힙합바지에 커다란 배낭을 멘 청소년들이 삼삼오오 모여 힙합댄스 실력을 견주고 있는 모습이 결코 새로운 풍경이 아니다.
지난 19일 오후 3시. 서울 방배동 카페골목에 위치한 피플크루 힙합스쿨에는 평일 낮인데도 불구하고 10대 청소년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인근 초등학교에 다니는 김성혁군(가명·12)도 이들 중 하나다.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책가방을 든 채 바로 이곳으로 달려왔다. 이유는 단 하나. 최근 또래집단에서 유행하고 있는 힙합댄스를 배우기 위해서다.
『힙합댄스가 공부보다 좋아요. 노래도 부르고 랩도 하고 춤도 추고…. 너무 멋져요. 힙합음악하는 형들처럼 되는 게 꿈이에요.』
사실 김군이 처음 힙합스쿨을 찾은 것은 혼자만의 의지가 아니었다. 힙합음악에
빠져있는 아들을 보다 못한 김군의 어머니가 차라리 가수로 성공하라며 직접 등록을 해줬다는 것. 김군은 힙합음악을 계속할 수 있는 예체능계에 진학할 계획이다.
이 힙합스쿨의 운영자이기도 한 아이비엔터테인먼트 김윤성 실장(35)은 『힙합음
악을 배우고자 하는 청소년들의 욕구가 폭발적이다』며 『엄마 손을 이끌고 온 초등학생은 물론, 중고등학생, 대학생 동아리, 인터넷 동호회 활동을 하는 직장인까지 힙합스쿨을 찾는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폭발적 인기에 힘입어 힙합 랩과 춤을 가르치는 정식 학원들이 지난해부터 하나둘 생겨나고 있고 자생적으로 움직이는 비공식 스쿨을 포함하면 전국적으로 힙합음악 교육기관은 50여개 될 것이라는 게 김 실장의 설명이다.
더욱이 최근에는 건강을 위한 에어로빅 학원에서도 힙합댄스가 정규과목에 올라와 있을 정도니 힙합을 즐기는 인구는 숫자로 표현하기 어렵다.
이뿐만 아니다.
인터넷과 PC통신에는 수백개에 달하는 힙합동호회가 활동하고 있고 힙합음악의 역사나 구현방법, 좋아하는 힙합가수들을 소개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사이트들은 수천개다. 문화축제·시민행사·대학축제 등에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힙합경연대회는 빼놓을 수 없는 단골메뉴가 된지 오래다.
그렇다면 도대체 젊은이들은 무엇때문에 힙합음악에 열광하는 것일까.
천리안 힙합동호회 캠프그루브(http://user.chollian.net/∼zshiphop)의 시솝 이은경씨(26)는 『힙합은 자유와 반항의 음악』이라며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대중적 음악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인터넷에서 개인홈페이지를 힙합정보사이트로 운영하고 있는 신동민군(18)은 『힙합음악은 10대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힙합뮤지션들의 카리스마는 또래집단들을 매료시킨다』고 말한다.
그러나 힙합문화에 대한 오용론도 만만치 않다. 멀리 타국으로 끌려온 흑인들의 저항정신을 오히려 상업적으로 악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음악평론가 이기원씨(34)는 『더이상 힙합은 흑인들의 전유물도, 소수 음악마니아들의 것도 아니다』며 『대중문화의 한 흐름으로 자리잡는 과정에서 자유와 반항의 이미지는 퇴색된 채 상업요소와 외형의 화려함만 지나치게 강조됐다』고 비판했다.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힙합스쿨이 자리잡아가는 것도 정식 가수로 데뷔할 수 있는 연계고리를 찾는 젊은이들의 요구와 유망한 신인들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주최측의 계산(?)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라며 『청소년들을 너무 무분별하게 끌어들이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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