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문화 대혁명> 떠오르는 직업, 사라지는 직업

디지털 시대의 주역으로 신계급이 등장하고 있다. 일명 「실리콘칼라」. 첨단 정보통신 기술의 요체로 꼽히는 반도체의 주원료인 실리콘(silicon)에서 따온 말이다.

20세기 사회중추이자 핵심세력이던 화이트칼라가 서류를 만지작거리거나 열심히 기계를 만지작거리는 순수 이성에 의지한 반면 실리콘칼라는 감성과 직감, 정보기술로 무장한 복합형 두뇌인력으로 통칭된다. 디지털시대가 낳은 이들 신계급은 자금, 노동, 자연자원 등 아무런 생산요소가 주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일각에서는 이들 새로운 엘리트층을 첨단산업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금융, 문화, 예술산업 등으로 확대시켜 골드칼라라고 부르기도 한다. 독창적이고 창조적인 유연성이 마치 황금과도 같은 빛을 발하고 있다는 뜻에서다.

실리콘칼라 혹은 골드칼라가 주류로 떠오르는 것은 21세기 디지털시대는 지식기반 산업이 각광받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21세기 경쟁력의 주체는 기술과 정보를 바탕으로 한 지식으로 통용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전문가들은 급변하는 시대에 각광받을 유망직종으로 지식정보화에 기반한 첨단직종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이 꼽는 유망직종을 분야별로 보면 △제조유통업의 경우 생명공학 기술

자, 환경공학 기술자, 항공우주공학 기술자, 원자력공학 기술자, 전기공학 기술자, 머천다이저 △산업지원 서비스에서는 경영컨설턴트, 감정평가 전문가, 다국적기업 가치평가 전문가, 시장조사분석가, 캐릭터 디자이너, 개인이미지 컨설턴트 △보건의료 유망직업으로는 물리치료사, 사회보험 전문가, 노인복지사, 스포츠 마사지사, 심리치료사, 음악치료사, 직업능력개발 훈련가, 수질관리사 △금융분야에서는 외환딜러, 펀드매니저, 투자분석가, 금융설계사, 국제회계 금융전문가, 금융상품 개발전문가 △정보통신 유망직업에는 전자통신공학 전문가, 시스템엔지니어, 컴퓨터 프로그래머, 컴퓨터 보안전문가, 게임프로듀서, 네트워크 전문가, 웹마스터, 컴퓨터 바이러스 치료사 등이다.

예전에는 들어보기조차 힘들었던 식이요법 전문가, 심리치료사, 수질관리사, 애니메이터, 비디오아트작가 등도 유망직업으로 꼽혀 이색적이다.

특히 인터넷 중심의 e비즈니스 환경이 신조류로 밀려오면서 사이버 관련직업의 출현이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네트워크 환경을 기획하고 설계하는 광대역 설계자는 물론이고 가상공간상의 공연이나 퍼포먼스의 세트를 디자인하는 가상세트 디자이너, 쇼핑몰이나 사이버 중개업 등 마케팅을 맡는 웹 프로모션 프로듀서, 웹을 이용해 고객의 여행 일정을 기획·관리해주는 컴프시어지(computer와 concierge의 합성어)가 21세기 직업으로 각광받을 것으로 전망되는 등 인터넷과 관련한 직종은 정보통신 내에서도 특화된 영역을 형성하며 힘이 실리는 추세다.

이밖에 윈도 운용체계(OS)의 대항세력으로 대두되고 있는 리눅스 관련 전문가도

고연봉 전문가 집단을 형성하고 있다. 네티즌간에 새로운 문화를 낳고 있는 게임도 신규직종을 대거 쏟아내고 있는데 게임프로듀서, 게임프로그래머, 프로게이머, 게임 시나리오 전문가, 애니메이션 전문가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미국 직업관계 전문출판사인 JIST웍스가 20대 유망직업을 선정, 발표한 자료에서도 최근의 지식정보화 추세에 걸맞게 컴퓨터 정보통신 직종이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따르면 시스템분석가, 컴퓨터엔지니어, 컴퓨터과학자, 컴퓨터 프로그래

머, 전기전자엔지니어 등이 수위권에 올랐고 엔지니어, 자연과학전공자, 물리학자 등이 유망직업으로 선정됐다. 이외 증권 금융세일즈, 마케팅 광고매니저, 금융매니저, 사회사업자 등이 뽑혔고 국내에서는 아직 확산되지 않은 서비스매니저 등이 신규직업으로 떠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반면 존속을 위협받는 직업도 있다. 자동화가 적용될 수 있는 모든 직업이 여기

에 해당한다. 이미 18, 19세기부터 일용 노동자들이 자동화가 진행됨에 따라 다른 직종을 찾았듯이 통신이나 센서기술, 디지털기술의 발전속도가 빨라지면서 21세기에도 많은 직업들이 사라질 것이다.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직업은 단순 키펀처나 사무보조원. 디지털기기들이 속속 등장하고 사무자동화가 급속히 진전됨에 따라 전문직종이 아닌 이들 직업은 빠른 속도로 퇴보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외 운전사도 위태롭다. 내비게이션 시스템과 제어장치 센서가 발전하면서 목적지까지 자동으로 운행해 주는 자동차가 등장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업계 전문가에 따르면 앞으로 선보일 자동차는 사람의 음성을 인식할 수 있어 목적지를 말하기만 하면 목적지까지 데려다 줄 것이고, 도로 곳곳에 차 운행을 감지하고 판단하는 센서도 설치돼 안전운행이 가능토록 지원할 것으로 보인다.

운전사뿐 아니라 공장관리자, 중장비·기계관리자 등도 자동화의 희생양이 될 것

으로 예상된다.

전문직종인 세무사나 회계사, 은행원도 디지털 세계에서 위협받는 직업 중 하나다. 사이버상에서 자동으로 은행 업무가 가능해지기 때문에 은행원의 역할은 대폭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동안 은행원은 화이트칼라의 대명사로 「잘 나가던」 직종이었으나 디지털시대에는 사라지는 직업 1순위에 놓여있는 셈. 더욱이 앞으로는 현금 대신 전자화폐가 활발하게 사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일반 자영업자라도 모든 소득과 지출은 디지털로 처리, 외부에 고스란히 노출되면서 세무사나 회계사 영역이 줄어들 전망이다.

이밖에 서비스 업종에서도 많은 회사와 개인들이 디지털의 희생양이 될 것이다.

이미 인터넷의 많은 사이트에서 개인별 관심분야나 인적 사항을 기재해 놓으면 지능형 검색엔진이 이를 조립, 개인의 구미에 맞는 서비스를 알아서 제공해 주고 있다. 이에 따라 배우자 알선으로 짭짤한 소득을 올렸던 중매장이나 단순한 여행 프로그램만 제공하는 여행사들도 서서히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지식정보화 사회로 특징지어지는 디지털시대는 기존의 산업화시대에 진행되던 점진적인 변화와는 차원이 다르다. 기술의 발전속도가 빨라지면서 상품의 라이프사이클이 단축되고 있는가 하면 산업화 시대와는 다른 생산판매조직을 요구하고 있다. 직업도 전문화, 세분화가 심화되면서 라이프사이클이 단축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지식정보화시대와 함께 IMF 경제위기를 겪으며 「평생직장은 사라지고 평생직업만 남는다」는 교훈을 뼈저리게 통감한 바 있다. 직장인의 직업관과 채용, 근무방식 등이 모조리 바뀐 것은 물론이다.

정규직 채용은 사라지고 계약직 채용이 기본이 돼 버렸다. 지난해 하반기 임금근로자 가운데 일용, 임시직 근로자가 절반을 넘어섰다는 각종 보고서들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대기업의 공개채용이 사라진 지는 이미 오래며, 대신 인터넷을 통한 수시채용과 경력직 채용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결국 빠른 시대변화에 앞서 지식과 정보로 무장한 지식근로자만이 디지털시대의 주역이 될 수 있고, 이를 통해 국가경쟁력도 확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도 디지털시대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전자오락과 만화영화(애

니메이션) 분야 등 첨단 관련 산업 국가기술자격을 내년에 대거 신설, 유망직업활성화에 일조할 방침이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은 멀티미디어 전문가, 게임시나리오 전문가, 애니메이션 전문가 등 국가자격을 내년에 신설키로 했다. 이는 정보통신, 컴퓨터, 영상산업 등 급변하는 첨단산업의 인력수요에 맞는 전문인력을 배출하기 위해서는 관련분야의 자격신설이 절실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어서 일면 다행으로 여겨지고 있다.

<정은아기자 eaj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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