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인 더 뉴스>허승 소비자보호원장

한국소비자보호원 원장 허승

『소비자는 항상 열세에 있습니다. 정부에 대해서도, 사업자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항상 열세에 놓여 있습니다. 소비자의 열세를 극복하는 것이 소보원의 과제입니다.』

열세. 한국소비자보호원(http : //www.cpb.or.kr) 허승 원장(65)은 「소비자의 열세」라는 말을 즐겨 쓴다. 언제나 소비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활동하며 정책을 구상해야 하는 소보원의 수장이기 때문인지 모른다.

허 원장은 『소비자는 항상 제품의 가격과 품질, 광고와 홍보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불리한 상황, 불리한 위치에 있다』며 거듭 피해를 입을 소지가 많다

고 강조한다.

따라서 『소보원의 가장 중요한 목표와 활동은 피해를 입은 소비자가 보상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그 구조적인 틀을 만들어 소비자의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바로 소비자 보호』라는 게 허 원장의 지론이다.

허 원장의 말처럼 소보원의 역할은 기업과 상품에 대한 부단한 감시, 즉 소보원내 시험검사소와 사이버소비자센터 등의 시험과 조사활동을 통해 소비자의 피해를 구제하고 예방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소보원은 국내 민·관 단체를 통틀어 소비자 보호를 목적으로 한 가장 큰 단체다. 때문에 하나하나의 활동상황이 소비자와 기업에 큰 영향을 미친다. 수장인 원장에 대한 임명권도 대통령이 행사하고 정부 관련기관으로부터 독립된 기능과 권한을 갖고 있다.

실제로 소보원은 소보원이 가진 독립된 기능과 권한의 근거를 소비자에 두고 소비자 보호를 위해 많은 일을 해왔다.

대표적으로 피해구제가 어려워 당할 수밖에 없었던 은행의 예금, 보험 등 금융상품과 관련된 불공정 약관의 시정, 허위·과장 광고 개선 등의 성과를 이뤘고 시험검사소를 운영하며 각종 제조품에 대한 시험결과와 안전실태를 조사, 발표함으로써 소비자의 피해 예방은 물론 국내 상거래 관습상 익숙지 않은 리콜 문제에

대해서도 인식을 달리하도록 만들어 왔다.

2002년 7월부터 제조물 책임법을 시행하도록 만든 것은 가장 두드러진 성과로 볼 수 있다. 제조물 책임법은 제품의 이상 유무를 그동안 피해를 입은 소비자가 증명해야 했던 것에서 기업이 해명 책임을 지도록 한 것으로 「소비자 주권시대」의 한 획을 긋는 중요한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한 직접적인 소비자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확보를 목적으로 병원, 학교, 소방서, 경찰서 등을 통해 소비자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여러 가지 요소를 주기적으로 모니터하며 제도 개선업무를 꾸준히 수행하고 있다.

특히 허 원장의 취임 이후 2년 동안은 소보원의 위상이 한 단계 높아진 시기로

평가받고 있다. 허 원장은 소비자보호의 사각지대로 일컬어진 금융, 의료, 법률 등 전문서비스 분야를 소보원의 활동 영역으로 확보함으로써 실질적인 소비자 보호가 가능하게 만들었다.

허 원장은 스스로 「소보원의 제2 개원이자 제2의 창설」이라고 표현하며 남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그는 『금융은 금융감독원, 의료는 보건복지부, 법률은 지방 변호사회에서 각각 맡고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 소비자의 이익을 위해 앞장설 수 없었던 게 현실이었다』며 『날로 피해가 늘어나고 복잡해지는 이러한 전문 서비스 분야를 소보원이 맡게 됨으로써 소비자 입장에서 실질적인 피해구제가 가능하게 됐다』고 밝혔

다.

사이버소비자센터, 소보원 홈페이지에 전자상거래 가이드인 e-컨슈머 등을 신설해 인터넷 관련 소비자 피해에 발빠르게 대응하고 급증하는 전자상거래에 전문적으로 대응한 점도 주목할 만한 성과다.

허 원장은 이제 임기 1년을 남기고 그동안 추진해온 정책의 성과를 점검하고 체계화시키는 일들을 구상하고 있다.

대외적으로 소비자 보호가 곧바로 기업의 이익과 직결된다는, 소비자와 기업간의 상호 배타적이 아닌 보완적인 관계를 소보원이 중재자의 입장에서 구체화시켜 나가고, 대내적으로 소보원내 여성과 젊은 후배의 활동 폭을 확대시키는 데

주력할 생각이다.

그는 『소비자 지향적인 기업활동은 넓게 보면 제품의 품질향상과 경쟁력을 촉진시켜 기업이 세계를 무대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것이기에 큰 의미가 있다』고 밝히며 소비자 보호를 위한 소보원의 활동이 곧바로 기업의 이익과 연

결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음달 서울에서 개최될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III)도 허 원장이 주시하고 있는 행사. 이번 회의에는 「소비자 보호분야의 네트워킹과 협력」이라는 주제로 소비자 문제가 주요 과제로 다뤄질 예정이어서 소보원의 국제교류에 좋은 기회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와 관련, 소보원은 EU본부를 방문해 상호 협력방안을 논의하고 한·일소비자정책포럼 개최, 중국소비자협회와의 교류 및 네트워크 구축 등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소보원내 업무를 더욱 전문화하고 국제화 시대에 발맞춰 해외 교류를 늘리며 소수의 소비자 피해에까지 구제 영역을 확대하기 위한 정책들이 마음만 가지고 될 일은 아니다.

허 원장은 『96년 120억원 수준의 소보원 예산이 IMF시기를 거치며 축소됐다가 최근에야 겨우 비슷한 수준으로 회복된 실정』이라며 『21세기 소비자주권시대에 정부의 대응과 의지가 부족해 갑갑한 것도 사실』이라고 정부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소보원의 업무와 정책에 관한 딱딱한 얘기가 오갔지만 허 원장은 시종 웃음을 잃지 않았다. 어릴적 짓궂은 개구쟁이를 연상시키는 미소는 외무부에서 20년 가까이 외교 업무를 맡으면서 생긴 습관적이고 형식적인 미소일 수도 있지만 꾸밈없이 솔직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그의 성품이 겉으로 드러난 결과로 보였다.

소보원의 제품 시험결과 발표가 한 건 올리기 식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 억울

하다며 퉁명스런 표정을 짓다가도 곧바로 급격한 변화의 시대에 소보원의 역할이 충분하지 못했다며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또한 소보원은 정부기관이기에 소비자의 대표기관이랄 수 있는 국회의 눈치를 안볼 수 없고 관련 부처와 어느 정도 타협해야 하는 사안이 있을 수 있다는 정치적 이해관계도 솔직하게 밝혔다.

『소비자, 기업, 정부 모두 원활하게 돌아가려면 여러 면에서 사고의 수준을 높여야 합니다. 다가올 북한내 소비자 문제도 생각해야 하는 등 앞날을 예측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언론도 소비자 보호의 책임이 큰 만큼 힘을 모아 소비자주권

시대를 열어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허 원장의 마지막 당부의 말에 소비자 열세의 시대가 아닌 소비자가 우세한 시대, 소비자 주권 시대가 성큼 다가선 느낌이다.

【임동식기자 dslim@etnews.co.kr】

<약력>

△1935년 전남 장성 출생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1982년 주미대사관 참사관 △1986년 외무부 국제경제국장 △1992년 외무부 제2차관보 △1993년 주 제네바 대표부 대사 △1996년 국제경제통상담당 대사 △1997년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겸임교수 △1998년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 위원장 △현 한국소비자보호원 원장, 물가안정위원회 위원, 소비자정책심의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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