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교류와 경협이 급류를 타고 있다. 8월 15일 온 나라와 세계를 감격의 분위기에 휩싸이게 했던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비롯해 2차 남북 장관급 회담, 비전향 장기수 63명 북송, 경의선 연결 합의, 현대그룹 개성 서해안공단 경제특구 개발 합의 등 실로 많은 획기적인 행사와 사업들이 현기증이 날 정도로 빠르게 추진되고 있다. 또 이달만 하더라도 국방장관 회담, 북한의 경제사절단 남한 방문, 경의선 철도 복원공사 기공, 백두산-한라산 교차관광, 북한 경제시찰단 서울 방문 등 6·15남북공동선언을 가시화하는 후속회담과 사업들이 줄지어 예정되어 있거나 제의된 상태다.
지난 6월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아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마치 봇물이 터진 듯 일어나고 있어 이들 사업과 행사를 추진하는 정부당국 관계자들은 말할 것 없고 이를 지켜보는 국민도 숨가쁠 지경이다. 반세기 동안 막혔던 봇물이 터지는 과정에서 이 정도의 속도는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어느 것 하나 남북화해와 평화공존, 동질성 회복 그리고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사업의 일환이 아닌 것이 없고 또 모든 것이 중차대하고 시급을 요하는 사안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서두른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더욱이 북한 측은 어떤 일관된 정책과 종합정책에 의해 그쪽 필요에 따라 남한과 접촉하고 있는 반면 우리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는 인상을 준다.
이제는 차분히 남북한의 공영을 위한 호혜적인 교류와 경제협력에 힘을 기울일 때가 아닌가 한다. 이런 점에서 이번 2차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양측이 투자보장, 이중과세 방지 등 경협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로 합의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 하겠다. 이같은 협정이 체결되면 남한 기업들의 대북투자가 본격적으로 활성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업들이 개별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다 보면 과당경쟁이나 중복투자 등 여러 가지 비효율적인 현상과 부작용이 일어날 것은 뻔한 일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최근 민관이 참여하는 자문회의를 구성할 것을 강조하고 경제단체들도 남북경협을 자율적으로 조정하는 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한 것 또한 적절한 조치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남북한 경제산업 분야 교류·협력에 대한 종합적인 정책이나 계획은 미흡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것은 기업 및 사회 각계각층으로부터 광범위하게 수렴된 의견에 바탕을 두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선 순위에 따라 체계적으로 교류·협력사업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물론 경제산업활동에 있어서 가장 시급한 것은 북한의 철도·도로·전력·통신·항만·산업인프라를 확충하는 문제라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흔히 이러한 가시적 사회간접자본(SOC)에 치중한 나머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중요한 현실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남북경협에 있어서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문제가 또 하나 있다. 바로 남북의 이질화된 산업표준기술용어가 그것이다. 산업기술용어도 물리적 시설만큼 중요한 인프라라 할 수 있다. 한 분석자료에 따르면 북한의 국규기술표준 1000여종 중 남측과 전혀 다르게 표기하는 기술용어가 1200여개나 된다고 한다. 이들 용어는 관련분야 전문가들조차 무슨 뜻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할 정도라고 하니 이의 표준화 작업 역시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이 선행되어야 진정한 의미의 남북경협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협력사업을 추진하는 데 있어 양측 기술진이나 기업인들이 전문기술분야에서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효율성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전자·컴퓨터 분야 전문가를 포함한 15명 규모의 북한 경제시찰단이 이번주에 서울을 방문할 예정이라는 보도다. 구체적인 일정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국경제인연합회를 비롯한 경제단체들을 방문, 경제계 인사들과 남북경협 활성화 방안에 관한 의견을 교환하고 주요 산업시설을 돌아볼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양측이 서로 폭넓고 깊이 있는 협의를 통해 공영의 길을 모색하는 데 힘을 모은다면 이것이 남북 경제교류·협력을 활성화하기 위한 또 하나의 획기적 계기가 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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