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는 한마디로 디지털의 시대다.
디지털은 모든 것을 혁명적으로 바꿔놓고 있다. 그것이 산업이든 문화든 예외는 없다. 디지털의 폭풍 앞에 맞선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됐다.
디지털은 달아나야 할 공포의 대상도, 버려야할 짐도 아니다. 오히려 디지털은 장인의 손을 통해 화려하게 재창조되는 예술품과도 같이 인류에게 무한한 창조의 가능성과 자유로움을 안겨줄 것이다.
디지털의 등장은 그동안 일부 계층의 전유물이다시피 했던 문화를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공유할 수 있는 인프라를 제공해 주고 있다.
새로운 디지털 문화는 과거 산업사회에서 만들어지고 유통됐던 대량생산·대량소
비의 대중문화가 아니다. 디지털은 스타 시스템으로 대표되는 대중문화의 문제점들을 극복하면서 못생긴 사람, 키 작은 사람도 당당히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개성과 창조의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지금 보여지는 디지털 문화의 단초들은 앞으로 전개될 혁명적인 변화에 비한다면 지금까지의 변화는 겨우 시작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디지털 문화는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0과 1의 조합으로 이뤄진 단순한 비트의 세계다. 그러나 이 단순함 속에는 무한한 창조력이 숨겨져 있기 때문에 그 힘은 엄청날 수밖에 없다.
또 디지털은 수평적인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아날로그 문화가 수직적인 권위주의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면 디지털 문화는 수평적 자유주의를 그 모태로 하고 있다.
처음 복사기와 팩시밀리가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이 놀라운 발명품을 능가할 제품은 다시 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격찬했다.
복사기와 팩시밀리는 아날로그 문명의 위대한 승리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복사기가 등장함으로써 종전에는 불가능했던 완전복제가 가능해졌으며 지구의 끝에서 끝으로 순식간에 서류와 그림 등을 전송하는 일도 쉽게 이뤄졌다.
그러나 지금 등장하고 있는 디지털 기기들은 과거 아날로그 기기들이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정도로 속도와 공간의 제약으로부터 인류를 자유롭게 만들어준다.
온라인을 통한 복제는 지구 어디에서, 언제나 순식간에 이뤄질 수 있게 됐으며 책과 그림뿐 아니라 복잡한 설계도면의 복제도 가능해졌다.
디지털 문화와 아날로그 문화는 생산과 유통 그리고 소비라는 전통적인 산업구조를 뿌리째 바꿔 놓고 있다.
아날로그 문화는 생산과 유통, 그리고 소비가 각각의 영역으로 나눠져 존재한다. 소비자는 창작을 통한 생산에 참여하기 힘든 구조였다. 생산은 문화 전문가라 할 수 있는 작가·화가·음악가 등이 전담해 왔다.
그리고 이들 전문가가 창조한 문화상품을 출판사·화랑·영화사·음반사 등에서 유통해 소비자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해왔다. 이러한 수직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문화구조는 디지털의 등장으로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는 생산과 유통·소비의 경계가 사라진다. 생산자가 유통하고 또 직접 구매한다.
단적인 예가 저적권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MP3 음악파일이다. MP3는 누구나 쉽게 창작할 수 있고 인터넷을 통해 직접 유통되며 수많은 MP3 사이트에 올라있는 음악파일을 직접 가져다 들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현했다.
MP3뿐 아니라 디지털 문화는 모두 이와 같은 특성을 갖고 있다.
이처럼 디지털 문화는 그 동안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것들을 우리에게 안겨 줄 것이지만 장밋빛 미래 속에 어두운 그림자도 함께 존재하고 있다.
디지털 문화는 기존의 아날로그 문화와 충돌이 불가피하다. 일부에서는 아날로그 문화와 디지털 문화가 상반된 개념이 아니라 서로를 보완하고 공존할 수 있는 개념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새로운 매체가 등장한다고 해서 기존 매체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현재의 인식 수준과 제도적·법적인 틀은 과거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새로운 디지털 문화의 패러다임에 맞는 사회 의식구조의 변화와 제도
와 법의 정비가 시급한 실정이다.
디지털 문화는 사회·경제학적으로 황금빛 미래와 함께 어두운 그림자를 동반하
고 있다. 산업사회가 가족 공동체를 해체해 핵가족이라는 새로운 존재형식을 만들어냈듯이 디지털로 대변되는 정보화사회는 그나마 핵가족 단위로 유지돼 왔던 가정을 완전 개개인의 고립된 것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는 우려의 소리도 나오고 있다.
또 사이버상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섹스로 인간성이 더욱 황폐해 질 것이라는 전망도 제시되고 있다.
디지털 문화의 역기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먼저 디지털 문화는 사람들의 의식구조를 즉흥적이고 폭력적이며 쾌락적으로 몰
고 갈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이같은 논리는 디지털 문화의 가장 강력한 매개체인 인테넷을 통해 유통되는 대부분의 문화상품이 게임과 포르노사이트 등이라는 데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이에 대해 검열과 폐쇄적인 대응보다는 폭력과 섹스를 판단할 수 있는 교육적 바탕을 먼저 마련해야 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이 문제는 디지털 문화가 성숙하면서 보다 다양한 콘텐츠가 등장하면 자연히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또 디지털이 문화의 평등을 보장하는 것 같지만 실제적으로는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격차를 더욱 크게 벌려놓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또 정보의 홍수 속에 매몰될 수도 있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수많은 역기능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문화가 21세기를 뒤바꾸어 놓을 것이라는 데는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이 없다.
디지털 문화는 수많은 부정적인 요소들을 개선해 나가면서 21세기의 새로운 인간상과 사회상, 그리고 역사를 만들어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김병억기자 be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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