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남북정상회담과 남북이산가족의 교환방문을 계기로 우리나라 경제·사회에 「북한 신드롬」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과거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북한이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마치 남북통일이 눈앞에 다가온 것과 같은 착각이 일어날 정도다.
그러나 국내 기업들은 이같은 열띤 사회 분위기에 편승하기보다 원활한 남북 정보기술(IT) 교류를 위해 북한에 대한 시각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남북간 정치적·사회적 통합을 일구는 데 결정적인 기반이 될 경제통합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남쪽 입장에서 추진하는 일방향적인 대북 IT교류에서 탈피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같은 상황은 자칫하면 북한이 체제수호에 위협을 느끼게 함으로써 일과성 내지는 거품현상으로 끝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남북통일에 앞서 우리가 남북 IT교류 사업을 성공적으로 펼치기 위해서는 북한의 정확한 정보화 수준과 격차를 파악하고 이를 건너뛸 수 있는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
북한의 정보화·표준화 등에 대한 단절의 벽을 넘지 못하면 한반도에는 분騈?또 다른 상징인 「IT 휴전선」이 영구히 존속될 수밖에 없다.
최근 남한 기업들 사이에 대북사업 열기가 고조되면서 북한을 방문한 기업인들의 설명회나 간담회가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얘기를 주의깊게 들어보면 대부분 대북관련 인터넷사이트에 이미 소개된 내용이라는 점이다. 일례로 신의주는 정보통신기술, 평양은 가전산업에 대한 투자가 유망하다는 식이다.
북한의 체제 성격상 정보채널이 극히 제한적이고 그 정보채널 역시 전적으로 북한내 일부 인력에 의존하는 상황이어서 남북 IT교류에 대한 논의가 다양하게 이뤄지고는 있지만 현실과 동떨어지거나 과장된 측면이 있을 수밖에 없다.
박영일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장은 『북한을 한두번 다녀온 것만으로 북한을 모두 아는 것처럼 행세하는 일부 기업인들이 문제』라며 『이들의 말만 믿고 교류와 동시에 막대한 이익을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등 북한에 대한 인식 부족에서 오는 문제점이 심각하다』고 밝혔다.
따라서 북한에 대한 정보부족에 따른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선 사회·경제·문화 등 각 분야에서 이뤄지고 있는 남북 교류들을 중장기적인 차원에서 분명한 비전과 목표를 갖고 진행해야 할 필요가 있다.
유완영 아이엠알아이 회장은 『단순히 북한에 대한 포용정책이 돼서는 안되며 순수한 경제협력을 통해 실질적으로 양방에 이익이 돼야지 어느 한쪽만이 이익을 보는 관계는 오래 지속될 수 없다』고 밝혔다.
특히 대북사업에서 초기단계인 2∼3년내 이윤을 남길 수 있는 사업은 거의 없기 때문에 북한의 열악한 인프라 등을 고려할 경우 단기적 성과를 기대하기보다는 장기적으로 준비하고 접근하는 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또 본격적인 IT교류를 위해서는 북한의 IT분야에 대한 실상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지경영 ETRI 네트워크경제팀장은 『남북한간의 정보화 격차가 어느 정도인지,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어떤 투자가 선행돼야 하는지, 북한의 정보화 수준을 남한과 동등한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비용과 시간이 얼마나 소요되는지 등 정확한 실태 파악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일례로 ICANN이 지정한 북한관련 인터넷 도메인은 「http://www.….pk」로 돼있지만 현재까지 등록된 북한관련 도메인은 한 곳도 없다. 이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이산가족을 상봉하는 계획을 구상하는 등 「뜬구름 잡는」식의 IT교류를 논의하고 있는 실정이다.
북한이 우수한 IT인력을 5만명 가량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이들이 어떤 노하우와 기술력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확인된 바가 없다. 다만 막연하게 「우수하다」는 식의 평가만을 하고 있을 뿐이다.
남북한간 정보인식 단절의 벽을 넘기 위해선 인력교류부터 이뤄져야 한다. 많은 자금과 시간이 소요되는 통신시설 지원보다는 가장 이른 시일내에 실현이 가능한 것부터 차곡차곡 실시해야 한다.
남한 IT 전문인력이 수요에 비해 그 수가 부족한 만큼 북한과 무비자협정을 맺은 중국 등 인접한 제3국을 활용한다면 인력을 활용하는 데 별 문제가 없다. 비록 북한인력의 기술수준이 남한에 비해 다소 떨어지는 점은 있지만 재교육을 통해 인력협력이 가능한 단순편집·입력 등 분야부터 접근하자는 주장이다.
또 남한과 북한이 정보 공동체를 형성해야 한다. 한글자모순서, 컴퓨터 처리를 위한 코드, 컴퓨터 자판배열 등 남북한이 서로 다른 이들 표준을 통일시킴으로써 55년간의 분단에 따른 언어의 이질감을 해소하고 남북통합을 한발 앞당길 수 있다.
물론 장기적으로 볼 때 통신시설 지원은 북한에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통신시설 지원의 경우 재원조달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대공산권 반출을 묶어두는 바세나르 협정이 발목을 잡고 있다.
바세나르 협정이 규정하고 있는 컴퓨터·통신장비·레이저센서 외에 우리 정부도 남북대치 상황을 고려해 제어계측기기 등 품목을 대북전략 물자 반출에 관한 규정를 갖고 있어 제도적으로 대북사업과 관련 IT교류를 확대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IT교류를 통해 일시적인 성과를 기대하기보다는 민·관공동체 구축이라는 거시적 목표아래 인식의 전환과 인력교류·정보공동체 형성 등을 통해서 북한을 21세기 지식사회를 함께 이끌어 나갈 진정한 동반자로 여겨야 한다는 지적이다.
<안수민기자 smah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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