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에는 디지털 핵심기술을 확보한 한국기업이 세계 시장을 이끌어갈 겁니다.』
지난해 한국을 대표하는 디지털 CEO로 선정된 구자홍 LG전자 부회장(54)은 요즘 세계 시장을 누비며 「디지털 LG」를 홍보하고 「디지털 경영」을 전파하느라 눈코뜰새 없이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덕분에 「디지털 전도사」라는 닉네임까지 얻은 구 부회장. 그는 얼마전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열린 국제심포지엄에서 기조 연설을 통해 『디지털 시대를 맞아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발전에 기여하는 기업이 될 것』이라며 유창한 영어로 디지털 LG의 비전과 포부를 당당히 밝혔다.
구 부회장의 요즘 최대 관심사는 물론 디지털이다. 90년대 초부터 착실하게 디지털 시대에 대비해 온 LG전자는 지난해 7월 「디지털 LG」라는 비전을 선포했다. 구 부회장은 이 날 회사의 비전을 새롭게 정립하고 사업구조를 재편하는 등 디지털 기업으로의 대변신을 추진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구 부회장은 『정보의 유통이 광속에 가까울 정도로 빠르고 1 대 1의 관계가 다 대 다의 관계로 급속히 옮겨가며 모든 게임의 룰이 바뀔 정도로 변화가 심한 시기』라고 「디지털 시대」를 정의했다. 그는 또 이러한 변화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며 앞으로 가속도가 붙으면서 수십 년간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시기에 가장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산업은 바로 전자산업이며 거대한 변화의 실체를 융합(fusion)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디지털 시대에는 소비자들의 욕구도 달라진다. 따라서 이 시대에 기업은 고객지향·상호협력·시장대응력·제품리더십 등 네 가지 항목을 가치창출의 원천으로 삼아야 한다고 구 부회장은 역설했다.
구 부회장은 LG전자를 세계적인 디지털 리더 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냈다. LG전자와 LG정보통신의 합병이 바로 그것. 구 부회장은 지난 6월 양사의 합병을 공식 발표하면서 『디지털 기술 발전에 따른 전자·정보통신 분야의 환경 변화에 전략적으로 대응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기업가치를 제고하기 위해 합병을 결정했다』며 합병의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또 『합병법인은 디지털TV를 중심으로 한 홈 네트워크 분야와 이동통신단말기 및 IMT2000을 중심으로 한 모바일 네트워크 분야를 집중 육성하고 특히 정보통신부문을 세계 넘버1으로 만들겠다』는 강한 자신감을 나타냈다.
구 부회장은 합병법인의 출범을 계기로 본격적인 디지털 경영을 펼쳐 나갈 방침이다. 그는 디지털 경영의 핵심역량, 즉 LG전자가 디지털 시대의 리더가 되기 위해 꼭 갖춰야 할 필요능력으로 마케팅·테크놀로지·디자인·네트워킹 등 네 가지를 꼽았다. LG전자가 지닌 디지털 역량을 집중적으로 키우는 한편 선진기업의 기술과 역량을 전략적 제휴를 통해 공유함으로써 세계 디지털 시장을 개척해 나가겠다는 게 구 부회장의 경영방침이다.
양사의 합병은 디지털 LG라는 21세기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당연한 수순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닌 만큼 합병 과정도 순조롭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구 부회장은 별다른 잡음없이 자신의 뜻대로 합병문제를 깔끔하게 처리했다.
LG전자는 예정했던 대로 지난 1일 합병법인으로 새출범했다. 매출 16조원, 자산 11조9400억원, 자본금 8700억원 규모의 초대형 전자·정보통신 기업을 이끌게 된 구 부회장은 과연 어떤 인물일까.
73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평사원으로 출발해 지금의 자리에 오른 그에 대한 주위의 평가는 기대 이상이다. 재벌가문 출신이면서 전문경영인 이상으로 탁월한 경영능력을 발휘한다는 뜻이 아니다. 무려 27년 동안 LG에 몸담고 있으면서 10년 가까이 LG전자의 대표이사를 맡아 온 그에 대해서 새삼 경영인으로서의 자질을 논한다는 것은 사족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굳이 경영인으로서의 구 부회장을 평가한다면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감성을 지닌 경영자』라고 주위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구 부회장은 평소 즐기는 멜빵 차림에 재킷을 벗고 와이셔츠 차림으로 직원들에게 경영 현황을 직접 설명하곤 한다. 그래서인지 멜빵은 이제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그는 이러한 자유스러운 경영마인드를 바탕으로 국내 대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지난 3월부터 전 임직원의 복장 자율화를 실시했다.
구 부회장은 LG전자내에 스타 못지않게 폭넓은 팬층을 확보해 놓고 있다. 임원들은 물론이고 신세대 직원들도 그를 좋아한다. 늘 신세대 편에 서서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구 부회장은 지난 겨울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홍대 앞 카페에서 밤을 새워가며 N세대들과 대화를 나눴으며 지난 5월에는 디자인연구소 내에 대학생으로 구성된 N캠프 출범식에 참석해 DDR를 함께 즐기기도 했다.
임원들 가운데에도 구 부회장의 열성팬들이 적지 않다. 수려한 외모와 부드러운 인상, 세련된 외모 때문만은 아니다. 다이내믹한 성격을 지닌 그는 한마디로 만능 스포츠맨. 이븐파 수준의 골프실력과 아마 5단 수준의 바둑실력을 보유한 그는 임원들과 틈틈이 골프와 바둑을 함께 즐기며 허물없이 지낸다. 그러면서도 인사에서만큼은 냉정하다 싶을 정도로 철저하다. 열정을 가진 성실한 인물을 중용하고 정도에 어긋난 거짓 행동과 의식 부족을 과감히 배척한다는 원칙을 고수해오고 있다.
『나의 성공 뒤에는 묵묵히 자신을 따라주고 가정을 지켜준 아내가 있었다』는 말을 어느 장소에서 건 스스럼 없이 할 정도로 구 부회장은 기업의 디지털경영에 앞서 가정의 디지털 경영에도 성공한 보기 드문 최고경영자다. 부인 지순혜씨와의 사이에 1남1녀의 자녀를 두고 있으며 자식농사까지 잘 지었다는 주위의 부러운 시샘 또한 적지 않다.
【김종윤기자 jykim@etnews.co.kr】
<약력>
△46년 경남 진주 출생 △65년 서울 경기고등학교 졸업 △73년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졸업 △73∼87년 반도상사 근무 △85년 철탑산업훈장 △87년 LG전자(구 금성사) 입사 △91년 LG전자 대표이사 부사장 △95년 금탑산업훈장 △95년 LG전자 대표이사 사장 △99년 1월∼현재 LG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한국디스플레이 연구조합 이사장, 전경련 산업디자인특별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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