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에 있어서 기업 투명성은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기업의 투명성이란 기업의 각종 활동이 여과없이 공개되고 이것이 매출, 순익 등 다양한 회계 및 수치지표에서 그대로 반영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벤처에 기업 투명성이 중요한 이유는 기술력과 아이디어, 잠재성으로 인정받는 벤처 속성상 투명성이 기업 평가의 근간을 이루기 때문이다.
벤처가 투명하지 못한 순간 벤처를 올바로 평가하고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사라지게 돼 벤처를 바라보는 시각에 큰 혼란이 생기고 나아가 벤처의 존재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업 투명성은 벤처의 존립 근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
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시장 선점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같은 투명성보다는 각종 지표를 과장하거나 편법적인 기준을 적용해 자사의 외형을 확대·포장하는 사례가 심심찮게 드러나고 있다. 이같은 부풀리기 전략은 페이지뷰 수치에서부터 회원수, 가입자, 매출액에 이르기까지 기업을 평가할 수 있는 각종 항목에서 이뤄지고 있다.
150만명의 온라인 구매회원을 확보했다고 발표한 삼성쇼핑몰. 그러나 실제 이 쇼핑몰에서 구매 이력을 가진 고객은 3분의 1수준인 50만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240여만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고 밝힌 한솔CSN 역시 온라인 구매경험이 있는 구매자는 60%에 불과하며 다른 쇼핑몰들도 실구매자는 전체 회원수의 절
반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유력 인터넷 포털사이트인 D사가 밝힌 상반기 전자상거래 매출액은 약 10억
원. 그러나 이 금액은 D사의 사이트를 통해 이뤄진 쇼핑몰 제품의 총 거래금액일 뿐 D사의 실제 수익과는 거리가 멀다. D사는 쇼핑몰 업체인 L사와의 제휴로 EC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만큼 D사는 L사로부터 거래 수수료 8%를 받는 사업모델이라는 점에서 엄밀하게 따지면 실제 매출은 1억원이 채 안된다.
D사뿐만 아니라 쇼핑몰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일부 업체들이 수수료를 받는 사업
모델임에도 불구하고 자사 사이트에서 거래되고 있는 상품 판매액 전체를 매출로 잡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또한 쇼핑몰이나 포털사이트의 경우에도 광고 매출액 중 대행사에 주는 광고대행 수수료까지 매출에 포함시키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매출액 늘려잡기가 일반적인 관행으로 자리잡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이같은 모습은 상장기업 및 코스닥 등록기업이 아닐 경우에는 더욱 극심
하게 드러난다.
일부 업체는 자사의 웹사이트 회원수를 자사가 M&A하거나 전략제휴한 업체의 웹서비스 회원수까지 포함시키거나 페이지뷰 역시 이같은 산정방식으로 계산하는
경우도 많아 혼선이 일고 있다.
매출액을 과장해 발표하는 사례도 다반사다. 지식관리(KM) 및 시스템통합(SI)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L사의 경우 지난해 250억원으로 대외적으로 밝히고 있으나 실제 매출은 절반에도 못미치는 110억원대 수준인 것으로 확인됐다. 또 많은 업체들이 장기 프로젝트 중 1단계 프로젝트만을 수주하고서 전체 프로젝트 금액을 매출액으로 발표하거나 이들 실적을 해마다 중복계산하는 방식으로 외형 성장을 과시하고 있다. 최근 사명을 바꾸면서 ASP사업에 집중 투자하고 있는 M사의 경우는 아예 모 업체와 짜고 프로젝트를 수주한 것처럼 가장해 매출을 늘려 잡는 등 편법적인 행위를 일삼는 벤처도 생겨나고 있다.
사업 계획서에서부터 화려한 수식어로 자사를 포장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최근 ASP사업을 개시한 I사의 경우 올해 안으로 500개 회원사를 확보, 2∼3년내로 5만개의 회원사를 확보할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으나 이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업체는 아직 1개의 회원사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이러한 지적에 대해 벤처업체들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온라인업체들은 『국내 백화점들도 입점업체들의 판매대금을 몽땅 매출로 계산하고 있으며 오프라인 미디어 역시 광고대행 수수료를 매출로 잡고 있는 상황에서 인터넷 벤처에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할 이유가 뭐냐』고 항변하고 있다. 또 광고대행 수수료 등을 매출로 산정하는 것이나 독자적인 기준을 적용해 회원수를 발표하는 것 자체가 비난받을 사안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업계 전문가들의 시각은 다르다. 벤처만은 뭔가 달라도 달라야 한다는 것. 재벌 대기업들이 외형 불리기에 급급하다 부실을 초래하고 더 나아가 국가경제 전체에 거품을 양산한 선례를 따라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더욱이 오프라인에서 이중계산되고 부풀려진 경제가 온라인 벤처들을 거쳐 또 한번 부풀려진다면 더 큰 혼란을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 뜻있는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같은 벤처를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시각은 더욱 냉랭하다. 새로운 경제주체로 떠오르고 있는 벤처기업마저 이러한 구태를 답습할 경우 기존 재벌기업과 뭐가 다르냐는 것. 벤처 창업을 꿈꾸고 있는 대학생 김모씨(26)는 『벤처를 미래의 희망으로 말하는 것은 로비와 자금력이 아닌 기술과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투명성 때문이 아니냐』며 『벤처기업마저 수치 놀음이나 서류 장난에 길들여진다면 심각한 문제』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국내 벤처는 아니지만 야후코리아의 경우 올 상반기에 발표한 매출액에서 광고대행 수수료를 제외하고 매출을 다시 산정하는 작업을 벌여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따라서 벤처 내부에서라도 새로운 기준을 적용해 기업 평가 기준과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내야 한다는 문제제기가 일어나고 있다. 특히 대다수의 업체들이 「경쟁업체가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외형에 집착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만큼 벤처 재정립이 광범위하게 논의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벤처의 각종 기업 지표를 투명하게 할 수 있는 실질적인 평가기준을 함께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조인혜기자 ihch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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